내 운명 그것이 알고 싶다.

작명 이야기

[스크랩] 개명 바람

일산백송 2014. 3. 11. 10:49

개명 바람

이름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의 관심은 유별나다.
이름으로 길흉화복을 따지는 성명학의 영향이 크다.
조선시대에는 대역죄인과 이름이 같으면 문중회의를 열어개명을 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종이에 이름을 적어 태우거나 땅에 묻는 풍습도 있었다.

유아 사망률이 50%가 넘는 시절이었다.
‘악명위복(惡名爲福) 천명장수(賤名長壽)’ 속설 때문에 나쁘고 천한 아명을 지어주는 것이 유행이었다.
조선 26대왕 고종은 어릴 때 ‘개똥’으로 불렸고, 황희 정승의 어릴 적 이름은 ‘도야지(돼지)’였다.

그러나 역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운명을 결정하는요소 중 이름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사주팔자와 풍수지리가 각각 35%이고 이름은 관상과 같은 15% 정도라고 한다.
(오현리 저, ‘좋은 이름 길라잡이’) 어차피 검증이 불가능하니 ‘믿거나 말거나’이다.

한 해 동안 개명을 신청하는 이가 16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개명 열풍이 불고 있다.
그제 대법원이 지난 20년간 개명을 허가한 12개 유형을 발표했다.
발음과 의미가 나쁘거나 놀림감이 되는 경우가 특히 많았다.

김희희, 서동개, 김치국, 김하녀, 지기미, 소총각, 조지나, 이아들나, 경운기, 구태놈, 하쌍연,
홍한심, 강호구, 송아지….
하나같이 듣는 이를 빵 터지게 하는 이름이다.
이름의 주인 얼굴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본인들은 오죽이나 괴로웠을까.
개명신청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20년 전만 해도 개명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법원이 범죄 악용 우려, 사회 혼란 등을 이유로 허가에 인색했다.
대법원이 1995년 초등학교 아동 개명허가 처리지침을 내리고
2005년 성명권을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한 내용으로 인정하는 판례를 내놓은 뒤에야
개명이 대중화되었다.

이름은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첫번째 정신적 선물이다.
누구나 갖는 ‘평생의 부적’이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자녀가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이름 탓에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부모가 심사숙고해 예쁘고 의미가 깊은 이름을 지어주어야 하는 이유다.

예수가 “귀한 자녀에게 재산과 논밭을 주느니 좋은 이름을 주어라”고 한 것이 이런 맥락이다.
좋은 이름을 갖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은 훌륭한 이름에 걸맞게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김환기 논설위원
2014-03-11 세계일보에서 옮겨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