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가 만났다는 역술인 이세민은 누구?...지인들이 밝히는 이세민의 실체
崔祐碩 月刊朝鮮 기자
조선닷컴 입력 : 2014.11.22 11:16 | 수정 : 2014.11.22 11:35
⊙ 朴正熙 전 대통령에게 ‘홀아비’ 될 四柱라 말한 뒤 청와대에서 내쫓겼다고 주장
⊙ 최고 수준의 남자 톱스타 A씨와 B씨, 유명 여자가수 C씨와 가까운 사이
⊙ “唐太宗 존경한다”며 자신의 본명 버리고 李世民이란 假名 사용
⊙ DJ 정부 시절 정치성향 단체 조직, 이희호 여사의 養子 주장하기도
⊙ 북한산 철학관 실소유주는 교도소 출소 이후 만난 여성
정윤회가 만났다는 역술인 이세민은 누구?...지인들이 밝히는 이세민의 실체
박 대통령의 비선(秘線) 접촉 의혹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8)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혐의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수봉)는 지난 10월 15일 해당 한학자를 소환, 야권이 의혹을 제기한 세월호 참사 당일 ‘의문의 7시간’ 사이에 정씨와 만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휴대전화 발신지 위치 추적을 통해서도 두 사람이 실제로 청와대와 상당히 떨어진 서울 강북의 모처에 함께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이씨는 검찰 조사에서 이날 북한산 형제봉 자락에 자리 잡은 자신의 철학관에서 정씨와 만나 좋은 마음과 좋은 음식 등 ‘생명학’에 대해 얘기를 나눴으며, 중간에 ‘세월호에서 승객들이 대부분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고 걱정을 계속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따라 적어도 세월호 사고 당일 박 대통령의 비선 접촉설은 사실무근으로 보인다.
앞서 《산케이신문》과 야권(野圈) 등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 발생을 최초 보고받은 4월 16일 오전 10시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오후 5시까지 ‘7시간 행방불명’ 의혹을 제기했다. 이 사이에 박 대통령이 비선으로 지목돼 온 정씨를 만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씨는 고(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였다. (정씨는 지난 5월 최태민 목사의 딸인 최순실씨와 이혼했다.) 최 목사는 과거 박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정씨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치활동을 시작한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실장’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측근으로 있었다.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검증청문회에서 정씨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1998년 달성 국회의원 보선에 출마했을 때 정윤회씨가 돕겠다고 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입법보좌관으로 채용했고 (2004년) 당 대표가 됐을 때 그만뒀다. (정윤회 본인은 한 언론인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2007년에 비서실장을 그만뒀다고 했다.)”
이런 이력 때문에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보이지 않는 손’ ‘그림자 실세’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정씨의 이름은 단골손님으로 등장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2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의 이름이 은밀하게 나돈 게 한두 번이 아니다. ‘7시간 의혹’의 중심에 정씨가 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세민은 假名
정씨가 아직도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심증은 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정윤회가 실세”라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정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 만난 역술인 겸 한학자 이씨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씨가 주변 사람을 상대로 “정홍원 국무총리가 내방할 예정이니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 “지만이(박 대통령의 동생 지만씨)도 나를 신처럼 떠받든다”는 얘기를 했다는 지인의 진술(《동아일보》 보도)이 있어 더욱 그렇다. 과연 이씨는 어떤 인물일까.
이씨는 이세민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이는 본명이 아니다. 이씨와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사람의 이야기다.
“제가 우연히 한 모임에서 이씨의 어릴 적 지인이란 분을 만났습니다. 이세민씨 이야기가 나와서 한참 하고 있는데 그분이 ‘사실 이세민이 본명이 아닙니다. 본명은 따로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이세민씨가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그때 이세민이 가명이라는 말이 생각나, 아는 검찰 후배에게 물어봤더니 세민이라는 이름은 가명이 맞다고 했어요.”
이 관계자에게 이세민이 가명이라는 사실을 전해준 이의 말이다.
“이세민씨와 어렸을 때 같은 동네(대구)에서 살아서 잘 압니다. 세민이라는 이름은 가명이 맞고 제가 듣기로는 이씨가 당태종(唐太宗)을 존경하는 마음에 이름을 똑같이 바꿨다고 합니다. 실제 이씨는 당태종 이름과 똑같이 세상 세, 백성 민을 씁니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598~649)은 고조 이연의 차남으로서 아버지를 도와 당 왕조를 세우고 대당제국을 건설한 인물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꼽힌다.
중학교 中退生이 대구의 神童?
이 관계자는 어린 시절 이씨를 신동(神童)으로 기억했다.
“그 자식이 어렸을 때 정말 개구쟁이였습니다. 그런데 보통 애가 아니었습니다. 머리가 엄청나게 좋았는데요. 일곱 살 때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달하는 등 어렸을 때부터 한학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워낙 똑똑하다 보니, 냉철하고 사리가 분명했습니다. 회초리 들고 다니면서 잘못하는 어른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니까요.”
어른들을 가르치다니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신호를 안 지키는 것을 봤다 하면 나이 불문하고 가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나무란 것이죠.”
어른들이 가만있나요.
“애가 그러니까 귀엽게 본 것 같습니다.”
역술인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뛰어난 천재였다면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하도 예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거나 하는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중학교 중퇴를 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씨를 보면 꼭 신분제의 벽 때문에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최치원 선생 같다고 했습니다.”
최치원(崔致遠·857~?)은 유교-불교-도교에 이르기까지 깊은 이해를 지녔던 학자이자 뛰어난 문장가였다. 하지만 높은 신분제의 벽에 가로막혀, 자신의 뜻을 현실정치에 펼쳐보이지 못했다. 그가 이룩한 학문과 문장의 경지는 높았으나, 난세(亂世)를 산 그의 삶은 그가 이룩한 높은 경지만큼 불행했다. 취재를 하면서 접촉한 이씨 지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이씨는 중학교 중퇴 학력을 가졌지만 해박한 한학 지식을 바탕으로 한 학술적 예언과 관찰력이 상당히 정확했다.
정윤회씨도 이러한 이씨의 능력에 끌렸을 가능성이 크다. 이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씨와의 오랜 관계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당초 박 후보에게 공천이 예상됐던) 경북 문경-예천 지역구가 아니라도 대구 달성군이면 볼 것도 없이 당선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조언하면서 시작된 인연은 16년 동안 계속됐다. 서로 바빠 한동안 뜸하다가 최근엔 정씨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고 있다.”
“10대 때 박정희 전 대통령 사주 봤다”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대구에서 유명한 역술인 겸 한학자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팔공산 근처에서 철학관을 운영하던 이씨에게 ‘전국구’로 발돋움할 기회가 찾아왔다. 70년대 초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을 만난 것이다. 이는 과거 MBC 간판 아나운서였던 방송계 원로 정경수(鄭炅洙) 전 아나운서(현 한국담배소비자협회 고문)가 2013년 펴낸 회고록 《만남》에 나오는 내용이다.
《만남》 141쪽을 보면 이렇게 쓰여 있다.
“박정희 대통령도 한때 그를 70년대 가볍게 만난 자리에서 집안의 불행한 사건을 예고 받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을 듣기 위해 정 고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이세민씨와 관련한 언론 인터뷰엔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며 거절했다. 그는 “이세민씨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계속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제야 허락했다. 11월 10일 그렇게 인터뷰는 성사됐다.
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고 했는데 이세민씨의 나이가 도대체 어떻게 됩니까.(비공식 루트에 따르면 이씨는 57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60 조금 안 될 겁니다.”
60세라고 가정하면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는 70년대 초에는 이씨가 10대(16~18세)인데요.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 말이니까, 거짓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한학에 조예가 깊어 사주 잘 보기로 유명했대요. 이것은 이씨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씨는 박정희 대통령 만났던 이야기를 어떻게 하던가요.
“정계 유명한 분들의 비서관을 통해 청와대에 한번 들어가 박정희 대통령을 뵈었는데(육영수 여사 서거 전) 홀아비 될 상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하더라고요. 결과론이지만 육영수 여사님의 서거를 맞힌 것이죠. 그리고 대통령도 큰 화를 입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사주풀이를 했대요. 분위기가 어땠겠습니까. 아주 난리가 났지요. 쫓겨나듯이 떠밀려 청와대에서 나왔대요. 그때 이후로 박정희 대통령 계실 때는 청와대에 못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이씨 이야기가 현실이 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죠.”
아무리 사주라 할지라도 그 당시에 그런 말을 하고도 아무 일 없었나요.
“박정희 대통령이 참 인간적인 분입니다. 제가 취재할 때 몇 번 봬서 잘 알아요. 그런 걸로 해코지하는 분은 아니죠.”
그 주변 측근들이 가만히 안 있었을 것 같은데요.
“박정희 대통령이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을 거예요.”
이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나 사주를 봐줬다는 이야기를 믿습니까.
“믿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이씨를 소개해 준 분이 정말 믿을 만한 분입니다. 이분은 제가 존경하는 유명한 언론인의 따님인데요. 목사였습니다. 그분을 그의 부친(정 고문이 존경한다는 언론인) 장례식에서 처음 봤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와서 ‘재미있는 곳이 있는데 놀러가자’고 하더군요. 놀랐어요. 갑자기 놀러가자고 하니까. 알았다고 하고 길을 나섰는데 어느 철학관에 들어가더라고요.”
그 철학관에 이세민씨가 있었군요.
“그렇죠. 이세민씨를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제가 2004년 7월에 이세민씨랑 같이 중국에 간 적이 있거든요. 그때 아주 놀랄 만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뭡니까.
“(이씨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당서기와 면담을 하는 자리에 같이 갔는데 그 근처에 ‘이세민 선생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더라고요. ‘이것 봐라. 진짜 유명한 사람인가’ 긴가민가하고 있는데 당서기가 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씨가 종이를 가져오라 그러더니 막 한자로 글을 쓰는 거예요. 딱 써서 당서기한테 주니까 갑자기 그가 무릎을 꿇고 감사하다는 겁니다. 깜짝 놀라서 통역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사서삼경에 나오는 구절, 공자와 논어의 시적인 표현, 중국 제자백가들의 명언을 인용해 그 당서기의 사주를 설명했다고 하더군요. 지방 당서기니까 우리로 치면 도지사 격인데 그런 사람이 무릎을 꿇을 정도니, 저로서는 이세민씨의 능력을 믿을 수밖에 없었죠.”
이씨가 정 고문의 사주도 봐줬습니까.
“봐줬지요.”
어땠습니까. 맞던가요.
“제 입장에서는 이씨가 봐준 제 사주가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지인들도 이씨에게 많이 소개시켜 주고 했거든요. 제 와이프까지요.”
톱스타와 이세민
이씨가 정 고문에게 믿음을 심어줬다고 하더라도 이씨의 주장을 전하는 정 고문의 이야기를 모두 믿을 수 있을까. 때문에 이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주를 봤다는 이야기도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족집게 사주로 유명세를 탄 이씨는 철학관을 팔공산 근처에서 대한민국 부(富)의 상징으로 꼽히는 청담동으로 옮겼다.
옮긴 시기에 대해서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 초반으로 기억하는 지인이 많았다. 이씨는 난타 강남전용관(우림 청담 씨어터) 건너편 하나은행 뒷골목에 있는 2층 양옥을 철학관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곳을 방문한 지인은 “양옥에 하얗게 페인트칠을 해서 깔끔해 보였다”고 했다. 지인 다수가 말한 바로는 이씨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이 앞다퉈 이씨의 청담동 철학관을 찾았다.
이씨와 알고 지내는 전직 유명 언론인의 이야기다.
“이세민씨가 하루는 저녁을 같이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물어보니, 강남에서도 아주 비싼 일식집에 예약했더라고요. 그곳에 가보니 글쎄 남자 톱스타 A씨, B씨, 유명한 여자가수 C씨가 와 있는 거예요. 깜짝 놀랐지요. 이씨가 저에게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소개를 해줬습니다. 그분들과 즐겁게 저녁식사를 했는데 비용이 꽤 나왔어요. 한 200만~300만원 정도 나온 것 같은데 전부 이씨가 계산을 하더군요. 그 이후 이씨와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는데 단 한 번도 남이 돈을 지불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얼마나 돈을 잘 버는지 매일 200만~300만원 정도 밥값, 술값으로 쓰더라고요.”
실제 돈을 잘 벌었습니까.
“제가 남의 주머니 사정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다만 대기업 대표들은 그의 정확한 판단과 카리스마에 상상 이상의 복채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또 비밀리에 기업 회장실로 초청해 기업의 미래나 사업 설계 등에 대한 조언을 들었는데 그 조언이 적중했을 때 큰 보수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은 정 고문의 회고록 《만남》에도 적혀 있다.
거물 정치인과의 인연
이씨는 정치권 인사 다수와도 안면을 트고 지냈다. 정의화(鄭義和) 국회의장과 한화갑(韓和甲) 전 의원은 이씨와 안면이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정 의장은 “국회 부의장 시절 역술인 이씨를 처음 봤고, 그가 얘기하는 군자(君子) 운동에 공감해 두 번 정도 만났다. 얼마 전 일본에 출장 가기에 앞서 전화가 와서 통화하기도 했고, 문자메시지로 좋은 글귀를 써서 보내주기에 종종 받고 있다”고 했다. 정 의장은 지난 10월 26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이부키 분메이(伊吹文明) 일본 중의원 의장의 공식 초청을 받아 일본 순방에 나선 바 있다. 다만 정 의장은 “잘 아는 사이라기보다는 이씨가 가끔 문자를 보내오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한 전 의원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이씨를 알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며 “이씨의 평창동 집에서 점심을 먹기도 했다. 이씨는 한학에 조예가 깊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아는 인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 의원 역시 “이씨가 사주를 봐준 적도, 봐달라고 한 적도 없다. 역술을 잘하는지는 모른다”고 선을 그었다.
박주선(朴柱宣)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이씨를 몇 차례 만났다고 인정했다.
정치인과 함께 이씨를 포함해 자주 식사자리를 가졌다는 이씨의 지인은 “하루는 이씨가 자기네 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해서 갔더니 당시 자민련 소속의 중진의원이 있었다”며 “아주 민감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정말 각별한 사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이씨가 2006년에 청주지검 충주지청에서 수사를 받았어요. (이씨가 사업가 유모씨에게 접근해 재판 관련 청탁을 해주겠다며 거액을 받은 혐의) 당시 이씨의 구속이 임박했는데 충주 지역 법조계에서는 여당 의원이 검찰을 압박해 수사를 막으려 했다는 얘기가 파다했습니다. 여당의 한 의원이 ‘광역단체장 선거에 출마하려는데, 내 멘토인 이씨를 잡아넣으려 한다’며 검찰 윗선에 강하게 항의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가까우면 이 정도까지 하겠습니까.”
‘채널 A’는 2014년 11월 1일 ‘역술인 수사 때 중진 정치인이 구명운동’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내용을 보도했다.
여권의 핵심관계자는 “이씨가 여권의 중진의원 생일파티에 초대받기도 했다”며 “여야를 막론하고 가까운 정치인이 많다”고 했다. 정경수 고문이 전한 바로는 이씨는 국회의원뿐만이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역대 대통령의 사주를 한 번씩은 다 봐줬다고 한다.
“제가 역술인 모임의 회장을 하라는 제안을 받을 만큼 역술인들과 친했는데 이씨가 역대 대통령 사주를 봐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말년이 안 좋다는 식으로 사주를 풀이했다고 합니다. 다른 분들의 사주 내용은 잘 모르겠고요.”
청와대에 들어가서 직접 (사주를) 본 것입니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찾아온 비서를 통해 본 것 같은데, 제가 직접 보지를 못했으니 확답을 해드릴 수가 없네요.”
이명박 대통령은 왜 안 본 것입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기독교 신자라서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만약 이 전 대통령이 보고 싶다고 했더라도 못 봤을 겁니다. 그때 이씨가 감옥에 있었거든요.”
사기 경력
이씨 지인을 만나 취재한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이씨는 자수성가한 수재형 역술인이다. 하지만 이같이 순수한 시선으로 바라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씨가 사기행각으로 조사를 받거나, 징역을 살았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이씨는 2000년 지금은 사라진 경찰청 조사과, 이른바 ‘사직동팀’의 수사 선상에 올랐다. 이희호(李姬鎬) 여사의 양아들이라 칭하며 각종 사업 이권 등을 빌미로 사기행각을 벌인 혐의가 있었던 까닭이다. 당시 이씨를 수사했던 사정 당국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씨가 이희호 여사와 알고 지낸 것은 맞고, 청와대를 드나든 출입기록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10월 3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DJ 정권 시절에는 신분증 없이도 청와대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의 이야기다.
“이씨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희호 여사가 대구 지역 표심을 걱정하자 조직을 만들어 DJ 선거를 도왔습니다. 당시 사람들을 만나면 ‘이희호 여사의 양아들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검찰은 이희호 여사의 이름을 팔아 사기행각을 벌인 이씨를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하는 데 그친다.
사기 혐의로 구속 송치한 사건을 벌금형으로 마무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에 당시 법조계에서는 정식 기소가 돼 재판을 받게 되면 이씨와 정치권 인사들의 관계가 공개돼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모종의 조치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2006년도에는 청주지검 충주지청으로부터 사건 청탁과 함께 4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알선수재)로 조사를 받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 중인 동거남이 반드시 법정구속되도록 해주고 배후에 있는 경찰관이 파면되도록 해달라”는 사업가 유모씨(여)의 부탁을 해결해 주기로 하고 정모씨(여)와 공모해 4억원을 받아 챙긴 사실이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이로 인해 이씨는 1년6개월의 징역을 살았다. 이와 관련 이씨는 징역을 마치고 출소한 직후 지인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이야기했다.
“나쁜 사람들이 저를 모함했습니다. 억울하지만 제가 다 책임지고 교도소 다녀왔습니다. 이제 불미스러운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을 대하며 복채를 받는 점쟁이가 아니라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인사들만을 50명 정도 선정해 집중관리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 말을 전해준 지인에게 이씨가 이야기한 집중관리에 대해 물었다. 그의 대답이다.
“특정 사람들만 카운슬링(counseling)하겠다는 이야기겠지요.”
이씨가 선정한 집중관리 대상에 포함된 한 인사는 “주기적으로 장문의 메일을 보내온다”고 했다. 어떤 내용이냐고 물으니 그는 “나라를 사랑하고 애국하자,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으로서 군자의 나라가 된다, 곧 통일의 시대가 온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고 했다.
이씨가 설립한 사단법인 흔적 없어
이씨는 2013년부터 철학관의 이름을 딴 사단법인 ‘I 문화센터’를 설립해 세계적인 영성 철학자 디팩 초프라의 초청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사업의 외연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I 문화센터’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 만들기 운동’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 만들기 운동’은 몸이 건강해야 정신이 건강해지고, 음식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짜게 먹지 말고, 저녁은 소식하는 것이다.
이씨는 ‘I 문화센터’ 총재 자격으로 2013년 3월 19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식재료는 고유한 맛과 영양을 지니고 있는데 현대인들은 과도한 양념으로 이를 잃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도 해치고 있다”며 “이번 행사에 참가한 석학들과 함께 각국의 음식을 바탕으로 사람의 몸에 이로운 ‘생명의 빛 음식’을 개발해 ‘생명의 빛 밥상 나르기 운동’ ‘생명의 빛 밥 푸기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이 운동들을 통해 배고픈 이들에게는 먹거리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겐 사랑과 위로를 나눠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씨의 최근 행보를 추적하기 위해 ‘I 문화센터’를 취재하던 중 미심쩍은 부분을 확인했다. ‘I 문화센터’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화번호도 없었고, 법인등기상에 적힌 첫 번째 ‘I 문화센터’의 주소로 찾아갔을 때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도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했다. 사진을 찍으려 하니 찍지 못하게 했다. 등기상 10월 27일 이전한 주소(서울 종로구 오피스텔)에도 ‘I 문화센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해당 오피스텔은 법인명의가 아니라 개인소유로 되어 있다”고 했다.
태백산에 있는 이세민씨
이씨 지인의 증언부터, 사단법인 문제까지 이씨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11월 11일 이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몇 번 더 해봤지만, 전원은 켜지지 않았다. 이에 자초지종을 자세히 문자로 적어 보냈다. 몇십 분 뒤 이씨로부터 답문이 왔다. 장문이었다. 그대로 옮긴다. 이씨가 지인들에게 보낸다는 문자 내용과 대동소이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존경하는 최우석 지도자님.
빛의 마음으로 천인지 삼본일체에서 제일 귀하신 군자가 되십시오.
생명의 빛
호흡명상으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하시고 생로병사를 해탈하소서.
빛의-호흡명상이란
호-감사의 사랑이고
흡-반성의 자비이며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함께하십시오.
늙지 않는 비결!
불로불사가 인간의 소망이라면 생로병사는 인간의 숙명! 영원히 늙지 않는 비결은 세상 어디에도 없겠지만, 마음이 몸보다 먼저 늙는 것만 경계해도 훨씬 더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음의 다섯 가지만 경계해도 우리는 천천히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박이후구(薄耳厚口)
귀가 얕아져서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입은 두터워져 자기 말만 쏟아내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둘째는 망집(妄執)
사소한 일에도 자기를 투사하여 고집을 피우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망집을 버리고 마음을 풀어놓으면 늙지 않습니다.
셋째는 중언부언(衆言浮言)
말하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 내용은 없고 말만 많아져 표현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욕심이 없으면 언어가 간결해지게 마련입니다.
넷째 백우무행(白憂無行)
백 가지 근심만 할 뿐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걱정이 생기면 몸을 움직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리하지 않으니 몸이 늙을 밖에요.
다섯째 고안(故安)
옛것에 기대어 안주하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과 낯선 것들에 대해 관대한 태도, 그리고 끝없는 호기심이 불로의 비책인 것입니다.
부디 이 다섯 가지를 경계하여 언제나 젊음을 유지하는 아름다운 벗이길 빕니다.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사랑합시다.
동서화합과 남북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진심으로 한민족 한가족 운동을 하여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인성교육과 군자운동을 하여서 군자의 나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청춘은 다시 오지 않으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생명의 빛 호흡명상이란 감사와 반성이랍니다.
빛의 호흡 명상으로 영성에 드소서.
저는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다음 기회에 한번 뵙고 이야기를 한번 나누고 싶네요. 월간조선에는 기사화를 하지 마세요.
늘 건강하십시오.
태백산에서-이세민 배상>
한번 보자는 이야기에 “언제 만났으면 좋겠느냐”는 문자를 보냈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이씨 북한산 자택 실소유주는 寡婦 재력가
앞서 언급했지만, 이씨가 정윤회씨를 만났다는 이씨 철학관의 실소유주는 재미교포 여성 P씨다. 정 고문에 따르면 P씨는 혼자 살고 있고, 2008~2009년 사이 출소 후 대구에 있었던 이씨를 만나 인연을 쌓았다. P씨는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져 있다.
키워드 | 정윤회 역술인, 청와대 비선라인 공방, 유명한 역술인, 정치인과 역술인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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