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나만의 화장실과 주방은 너무 큰 욕심일까
기사입력2017.12.03 오전 8:59
2016년 9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청년층의 주거현실을 꼬집기 위해 고시원을 재현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 김현아 의원실 제공
여덟 번째 이삿짐을 쌌다.
그래도 이번 이사에는 처음인 것이 많았다.
용달차를 불러 이사하는 것도 처음이고, 혼자만 쓸 수 있는 화장실이 딸린 방도 처음이다. 지난 일곱 번의 이사는 고물상에서 손수레를 빌려서 일일이 손으로 날랐다. 혼자 사는 단출한 살림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한 공공기관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고모씨(31)는 이삿짐을 나르며 손수레를 끌고 이사하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비오는 날 이사하느라 비닐 필름으로 이삿짐 덮어씌우고 이사하던 때도 있었고, 언덕 꼭대기에 있는 고시원으로 이사할 때는 친구와 둘이서 리어카를 끌어도 언덕 끝까지 못 올라가서 동네 아저씨가 도와주신 적도 있었죠.”
혼자 사는 객지살이 10여년 동안 살림살이는 용달을 불러야 할 정도로 늘었지만 사는 방 크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까지 살아왔던 언덕 꼭대기 고시원을 벗어난 것도 형편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동네가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고시원이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새로 이사한 다세대주택의 자취방 크기는 약 13㎡, 4평 크기다. 1인가구 최저주거기준 면적인 14㎡에 아슬아슬하게 못 미친다. 원룸 형태의 방 안에 부엌이라 하기도 민망한 싱크대가 있고, 싱크대 하수구를 같이 써야 하는 세탁기가 방 안에 있다.
화장실은 따로 있지만 좌변기에 앉으면 무릎이 벽에 맞닿을 정도로 작은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혼자서 화장실과 조리공간을 쓸 수 있는 곳으로 온 게 고씨에게는 감격스럽다. “대학 다닐 때나 알바해서 먹고 살 때는 목돈이 드는 보증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거든요. 지금 직장에 취직해서도 학자금대출 갚다보니 보증금 1000만원 모으는 데 3년 가까이 걸렸어요.” 고씨가 최저주거기준을 넘어서는 집에서 살게 될 날이 언제일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고씨는 고향인 전북 전주를 떠나 첫 서울 살림을 기숙사에서 시작했다. 대학 기숙사는 방값 자체는 대학가 주변 하숙집보다 쌌지만 좁은 것이 문제였다. 4인 1실로 네 명 모두가 침대 아래 책상이 있는 2층 침대를 쓰는 구조였다. 그러나 기숙사를 나와서 자취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좁은 것보다도 돈 때문이었다. 매번 기숙사 식당밥을 챙겨먹기 어려운데도 식대는 꼬박꼬박 내야 하니 돈도 아낄 겸 가까운 고시원으로 이사했다. 그것이 고씨의 첫 이사였고, 그 뒤로 일곱 번 이사를 더하는 동안 고씨는 반지하 셋방과 고시원을 번갈아가며 옮겼다.
고씨의 대학 후배인 김은범씨(28)의 이사 궤적도 고씨를 꼭 닮아 있다. 반지하와 옥탑방, 고시원을 전전하는 경로를 김씨도 그대로 뒤따랐다. 그러다 보니 옥탑방이건 지하방이건 어지간해서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놀라지도 않게 됐다. 그런 김씨조차 더 버티지 못하고 4개월 만에 나온 고시원 방은 좁아서 가장 작은 침대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방이었다. “침대 없이 바닥에서 자는 건 군대 생활관에서도 그랬으니까 적응할 수 있었는데, 새벽에 일 나가는 아저씨들의 복도 지나가는 발걸음 소리가 머리맡에서 울리니 그게 문제더라고요.” 김씨가 월 16만원짜리 방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월세도 월세지만 보증금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김씨에겐 정부나 지자체가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도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주변 시세보다 싼 임대료로 공급하긴 했지만, 가난한 청춘이 넘보기 힘든 액수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기존의 주택을 지자체에서 매입한 뒤 주거 취약계층에게 싼 가격에 임대하는 ‘매입임대’ 주택을 신청한 적이 있었다. 당시 김씨가 살고 있던 월셋방은 지하층 세입자들끼리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했다. 김씨는 동 주민센터에서 자신이 신청자격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신청서를 제출해 당첨까지 됐지만 입주는 포기해야 했다. 1400만원이 넘는 보증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부족한 주거비용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최저주거기준’의 현실은 생각 밖으로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다. 주택법 시행규칙에 나와 있는 최저주거기준을 충족하는 주택이란 전용 입식부엌과 전용 수세식화장실 및 목욕시설을 갖춘 일정 면적 이상의 주택이다. 1인가구는 총 주거면적이 14㎡ 이상, 2인가구는 26㎡ 이상이 되어야 하는 등 가구원 수에 따라 필요한 면적도 달라진다.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103만 가구는 전체 가구수의 5.4%에 해당하지만,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고시원과 쪽방 등 법적으로는 주택으로 분류되지 않는 주거공간에서 사는 거주자들을 더한 주거빈곤율은 12%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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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대학동의 골목길에 붙어 있는 고시원과 원룸 전단지 옆으로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비록 이러한 법적 최저주거기준에는 미달하지만 청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주거형태가 바로 ‘셰어하우스’(공유주택)다. 여러 명의 가구원이 사는 것을 상정해 만들어진 아파트나 단독주택 등을 1인가구 여럿이 모여 함께 빌려 사는 것이다. 협동조합 형태로 출자자를 모아 개인적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전세 임대료를 출자금으로 마련하는 형태가 있는가 하면, 민간기업이 새로운 주택임대사업으로 세입자를 모집하는 경우도 있다. 한 기업에서 운영하는 셰어하우스에 입주신청을 한 양희영씨(29)는 평균 경쟁률이 4대 1이라는 기업의 안내를 듣고 자신에게 입주 기회가 주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양씨가 셰어하우스에 눈을 돌린 이유는 복합적이다. 다른 곳의 셰어하우스에 먼저 들어간 친구가 ‘안전하다’고 한 추천에 양씨는 가장 솔깃했다. “하루는 친구가 집(셰어하우스)에 들어가는 길에 누가 따라오는 인기척이 나더래요. 들어와서 같이 사는 사람들한테 그 얘기를 하니까 다 같이 나가보자고 했다더라고요. 우르르 몰려 나가니까 구석에 숨어 있던 그 사람은 놀라서 도망가고, 그 뒤론 별일이 없었다고 하대요.” 여자 혼자 살 때의 불안함을 공감하는 양씨는 모르는 사람과도 부대껴 살아야 하는 불편함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전적으로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양씨가 셰어하우스 생활을 희망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금 양씨가 살고 있는 서울 구의동 원룸의 월세는 40만원이다. 전기와 수도, 가스 등 공과금과 관리비 등을 더한 주거비용으로 비교하면 셰어하우스로 옮겨도 더 늘어나는 부담은 없는 셈이다. 양씨는 “방 크기는 조금 작아져도 거실과 주방을 넓게 쓸 수 있고, 지금 쓰고 있는 낡은 가전제품을 교체하는 비용 대신 공용 가전을 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셰어하우스가 근래 수도권 등 인구가 밀집한 지역의 임대주택 문제 해법으로 급부상하고 있기는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현행법상의 개념과 셰어하우스의 현실이 따로 노는 데 있다. 건축법에서의 주택 구분이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등 소유 중심의 개념으로 한정돼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셰어하우스를 빌려주는 주택 소유주 입장에서 소유주를 한 명으로 하면 셰어하우스 임대에 필요한 면적이 넓기 때문에 호화주택으로 분류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규모에 제약이 없는 공동주택(소유주 여러 명)이라면 각 주택별로 구분등기를 해야 하므로 소유주가 다주택 보유자로 간주되어 세제상 불이익이 발생한다.
특히 셰어하우스를 공공임대 등의 사업으로 진행하기엔 공유주택이라는 방식 자체가 현행 최저주거기준과는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 때문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거실과 주방, 화장실 등 주택 안의 공유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취지의 셰어하우스는 현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주거형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최저주거기준에 맞춰 개인 또는 가구별로 화장실과 주방 등을 모두 개별 구비하는 것이 더욱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셰어하우스 임대전문 사회적 기업의 관계자는 “정부의 주거복지 로드맵에 셰어하우스 공급도 포함하겠다는 내용이 있으니 앞으로 제도를 정비하는 쪽으로 진행되리라 기대한다”면서도 “언제 어떤 식으로 바꾼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어 얼마가 지나 법이 바뀔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셰어하우스 공급을 늘리려면 건축 관련법상 주차장과 용적률, 용도혼합 등 부수되는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하므로 셰어하우스 보급이 그리 빠르게 진행되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거공간의 일부를 공용으로 사용한다는 셰어하우스의 취지는 사실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과거 문간방에 세를 놓던 시절부터, 하숙집과 고시원에 이르기까지 주방과 화장실 등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거형태는 가격 대비 효율을 극대화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건강상의 문제를 겪기 쉬운 고령층에는 이러한 공동의 주거공간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의외의 효과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셰어하우스에서 발견되는 공유의 원리가 일부 주거빈곤층에겐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여든세 살의 장일구 할아버지는 가족 없이 살아온 지가 20년을 넘었다. 서울 신계동 산동네에 살던 장씨 할아버지는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가까운 단칸방으로 옮겼다가 그마저 헐리면서 지금의 마포구 도화동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있는 동네의 특성상 지금 살고 있는 지하방도 언제 나가야 할지 모르는 형편이다. “뭐 내가 먼저 죽어서 시체로 나갈 수도 있겠지.” 장씨 할아버지는 살 만큼 살았다며 죽는 것조차 개의치 않는다고 웃어 보였다.
하지만 마냥 웃기엔 장씨 할아버지가 버티는 셋방의 냉골 바닥은 건강에도 좋지 않아 보였다. 특히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기 전인 11월 무렵이 그에겐 가장 힘든 계절이다. 차라리 한겨울이 되면 과거엔 연탄을, 지금은 소정의 난방비를 후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별다른 도움의 손길이 없기 때문이다.
주민센터에서 사회복지사가 방문하기도 하고 바로 옆방에 사는 이웃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홀로 보낸다. 그런 장씨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세상을 떠난 뒤 한참이 지나 발견되는 것이다. “집주인도 그렇고 이웃에게도 얼마나 폐 끼치는 일이여 그게. 그래서 내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봤어.” 장씨 할아버지가 궁리한 대책은 옆방 세입자도 같이 지나는 복도를 향해 난 쪽창에 끈을 매달아 두는 방법이었다. 자신이 힘을 잃고 쓰러지면 집에 있는 동안 묶어둔 끈이 창문을 잡아당겨 열리게 만든 것이었다. 옆방에 살고 있는 세입자 최모씨(61)는 “낮 동안은 우리 가족도 집을 비우니까 별 수가 없지만 저녁에 들어와서는 화장실 오가는 길에 할아버지 방 창문을 볼 수 있으니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 화장실을 쓰는 낡은 구옥의 구조가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예방하는 최소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동안 추진하게 될 주택정책이 집약된 주거복지 로드맵은 장씨 할아버지를 비롯해 노년층과 청년층 등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정책도 마련해 제시했다. 당장 지낼 곳을 잃은 세입자를 위한 긴급임대주택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급여 등의 방안 등이 포함된 데에는 전문가들도 필요성을 공감했다. 반면 노년층 또는 청년층을 위한 주거복지 차원의 셰어하우스 정책이나 ‘부담가능 주택(affordable housing)’과 같은 대책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특히 부담가능 주택은 셰어하우스의 공유방식과 맞물려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저렴주택으로도 불리는 부담가능 주택이란 저소득층을 비롯해 주거문제를 겪는 계층을 넓게 포괄하면서 각 계층의 경제적 수준에서 현실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가격 수준의 주택을 의미한다. 특히 합리적인 비용으로 질적인 측면에서도 향상된 주택을 제공해 이전보다 한층 강화된 주거복지를 제공한다는 개념이 들어가 있다. 고독사를 피하고 싶은 장씨 할아버지나 밤길 안전을 바라는 양씨의 경우처럼 보다 확장된 차원의 복지까지 여기에 결합시킬 수 있다. 토지+자유연구소의 전은호 시민자산화지원센터장은 국회에서 열린 저렴주택 토론회에서“주택정책의 목표가 공공임대나 공공분양의 양을 늘리는 데에서 질적인 수준을 높이는 데로 변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저렴주택(부담가능 주택)’의 질적인 기준도 구체적으로 다뤄야 할 때가 됐다”면서 “공동체 토지신탁이나 상호소유주택과 같은 해외의 사례를 참고해 정책의 목표와 가치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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