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단독] '현대판 머슴' 강요당한 대기업 명예회장의 운전기사
김라윤 입력 2017.11.25. 13:33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채, 1년 넘게 휴식 없는 머슴 생활 강요"
"눈이 부시다는 이유로, 초행길 내비게이션 작동금지 등 부당요구 일삼아"
"안전띠 매지 않고, 난간에 매달린 채 창문청소 강요"..대들었다고 '해고통보'
"사무실 내 성추행 등 도를 넘는 갑질, 피해자들 안전하게 구제할 법적 장치 시급"
유수 대기업들의 도를 넘는 갑질이 잇따르고 있다.
명백한 노동법 위반부터 폭행과 사무실 내 폭언, 동성 간 성추행에 이르기까지 인격침해가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
하지만 신고 후엔 곧바로 해고협박이나 왕따 등 보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짧은 기간 내에 피해자들을 안전하게 구제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장치 도입이 시급한 상황이다.
25일 고려제강(주) 명예회장의 전담 운전기사 정모(50)씨의 제보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해 8월 명예회장의 전담 운전기사로 채용됐지만 사실상 ‘현대판 머슴’ 노릇을 강요당해 왔다.
근로계약서 작성을 완료하지 않은 채 업무를 시작하게 된 정씨는 운전뿐만 아니라 회장 자택의 청소, 주방일은 물론 각종 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사실상 머슴 역할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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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의 일과는 오전 7시에 회장 자택에 들러 청소기를 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정씨는 “취직한 이후 1년4개월 동안 평균 휴일이 한 달 평균 한 두 번에 불과했다”며 “애초에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은 것이 문제로 이어진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씨와 전직(前職) 운전기사들의 제보에 의하면 이들은 ‘안전띠를 하지 않은 채 바깥 유리창 청소하기’ ‘내비게이션을 절대 켜지 않고 새벽 초행길 운전하기’ 등 자칫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엽기적인 요구에도 지속적으로 시달려 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씨가 제출한 동영상 및 녹취파일에는 이들이 좁은 발판에 올라서서, 난간에만 의지한 채 창문청소를 완료해야 했던 정황들이 등장한다. 정씨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다는 협박 때문에 위험을 감내해 왔다”며 명예회장 부인 김모(73)씨의 부당 지시사항 등을 밝혔다. 정씨는 현재 수면장애를 비롯한 각종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다.
지난 20일 정씨는 명예회장 부인의 지시에 대들었다는 이유로 곧바로 차 열쇠를 빼앗긴 채 별안간 해고통보를 당했다. 명백한 노동법 위반이지만 회사에서는 일주일 째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상황을 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씨는 현재 노동청과 신문고에 ‘부당해고’를 구제받기 위해 신고했지만 사내 반응은 싸늘하다. 정씨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자식들에게 부모가 가난하지만 떳떳하고 올바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한다는 책임감에서 신고했다”며 해고를 감수하더라도 부당함을 알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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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 K씨 모습.
실제로 운전기사들이 기업 내에서 대기 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제보자들 다수의 지적이다. 모 손해보험의 임원 전담 운전기사로 일해 온 K씨 역시 명예퇴직을 강요당하며 사무실 내 성추행, 폭언과 폭행에 지속적으로 시달려 왔다고 밝혔다. K씨는 “사무실 내 모두가 보는 곳에서 직장 상사가 자신의 성기를 다리에 비비는 등 성추행을 하고 인대가 파열될 때까지 폭행을 당했다”며 인격침해를 고발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K씨를 다른 직원들과 분리된 장소에 격리시키고, 벽을 바라보고 있게 하는 등 회사 내에서 일어난 성추행 등을 바깥으로 발설하지 않을 것만을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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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 K씨의 폭행 피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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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 K씨의 폭행 피해 모습.
김라윤 기자 ry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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