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 그것이 알고 싶다.

운명 이야기

[스크랩] 도계 박재완선생의 생전 인터뷰

일산백송 2015. 3. 26. 15:23

[스크랩] 도계 박재완선생의 생전 인터뷰

이 글은 1990년 4월 29일자 한국경제신문 서제한담(書齊閒談)이라는 코너에서
당시 강위석(姜偉錫)논설위원님이 근세의 한학자이며 정통 명리학(命理學)의 대가인
도계 박재완(陶溪 朴在玩)선생님과 대담한 내용입니다.

도계 박재완선생님은 1903년 대구에서 출생하셨고
10세 전에 면우 곽종석(免宇 郭鍾錫)선생님 연원(淵源)에 입문하여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이수(履修)하고
뜻한 바 있어, 19세에 중국에 건너 가 무송현(茂松縣) 탕해(湯海)의 왕보(王甫)선생의 문하에서 태을수(太乙數), 황극수(皇極數)와 명리학(命理學)을 연수(硏修)하셨습니다.
귀국 후에는 오대산, 속리산, 금강산 등지에서 학리연마에 정진하여
명리학의 태두(泰斗)의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1948년에 대전에 정착하여 명리학의 궁극(窮極)을 고구(考究)하는 한편 후진양성에 진력하다가
1992년 9월 29일 90세를 일기로 별세(別世)하셨습니다.
저서(著書)로는 명리요강(命理要綱), 명리사전(命理辭典), 정전역해(正傳易解)등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각각 天文學的 記號로 쓰여진 身分證을 하나씩 갖고 있다.
다름아닌 태어난 年月日時가 그것이다.
年月日時는 별 태양 달 지구의 天文學的 座標다.
天體空間과 宇宙時間을 연계시킨 좌표다.
한 사람이 태어날 때 이 天文學的 좌표가 어떠했는가가 그 사람의 身分證이 되는 것이다.
옛날부터 사람의 일생이 지나갈 軌道는 태어난 年月日時가 결정한다는 생각이 있어 왔다.
태어난 年月日時를 네기둥(四柱)이라고 부른다.
이 네 기둥은 각각 두 개의 글자로 표시하기 때문에 이를 합쳐서 여덟 글자(八字)라고도 부른다.
이 여덟 글자는 알고 보면 數字이다.
그래서 古代 동양인들은 天文에 따라 달력을 정하는 학문과 이 달력에 따라
사람의 運命이 결정된다는 假設에 입각한 일련의 學問을 「數學」이라 불렀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점 한가지를 들 수 있다.

우리가 天干이라고 부르는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의 10을 한 週期로 하는 數字와 地支라고 부르는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12를 한 週期로 하는 數字는 각각 陰陽五行상의 特性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西洋의 數字는 數 그것만을 의미하는데 비해(그러나 희랍의 피타고라스 같은 이는 

우주의 質料가 數字라고 생각하였고 각 숫자에 元素를 대응시키는 神秘主義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동양의 數字는 陰을 표시하는 數字, 陽을 표시하는 數字 水 火 金 木 土를 각기 표시하는 數字로 

구성되어 있다.

出生時를 天干地支로 표시한 數字인 「여덟글자」의 陰陽五行은 그것끼리 서로 조화되기도 하고(相生)
서로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相剋). 여기서 그 사람 일생의 吉凶禍福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命理學의 假設이다. 이러한 吉凶禍福의 條件을 解明하는 것이 命理學이 考究하는 대상이다.

記者는 우리나라의 命理學의 傳統을 잇고 있는 최후의 大家라는 陶溪 朴在玩선생을 만나기에 앞서
그의 제자인 易門關主人으로부터 대강 위와 같은 命理學 얘기를 들었다.
易門關主人이 사이에 들어 1년이 넘는 설득 과정이 있은 다음 陶溪선생이 비로소 이 대담에 응하여 주었다.

隱退를 하였다고는 하나 記者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간간이 問卜을 오는 손님들이 있는 것을 보아
陶溪선생은 결코 손님을 거절하는 분은 아니다.
아마도 신문이나 잡지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대단히 어색하게 여기는 분이라서
記者와의 면담을 썩 마음 내켜 하지 않았나 보다.
그러나 그는 우리 일행을 조용하면서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먼데서 오셨으니 우선 四柱부터 보지』이것이 그의 첫마디 였다.
記者는 生年月日時를 일러드렸다.
그는 올해 88세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돋보기도 쓰지 않았다. 가느다란 붓에 벼루로부터 먹을 찍어 기자의 四柱를 풀어 종이에 적는다.

「남의 기쁜 일은 기뻐하고
남의 슬픈 일은 슬퍼한다」

이런 뜻의 글을 漢字로 적고는 記者의 四柱가 퍽이나 좋다고 한다.
四柱가 조금만 바뀌었더라면 長官자리 하나는 할 수도 있었겠으나 그런 자리는 못하더라도
지금 四柱가 더 깨끗하다고 귀띔해 준다. 記者는 큰 칭찬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四柱 덕분에 비로소 그날 面談을 위한 최종 資格審査에 현장에서 합격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나중에 들게 되었다.


- 선생님이 命理學을 공부하게 되신 동기와 命理學이 무엇인지를 간단히 좀 설명해 주십시오.

▲ 陶溪선생=
나는 본래 농촌에서 生長했습니다.
그래서 열아홉 살 나던 4월17일 까지는 그저 뜻도 모르면서 四書三經을 읽고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 牧師님의 권유로 미국으로 가려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되어 중국으로 빠지게 되었어요.
거기서 五行을 아는 王甫라는 선생을 만나서 五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내가 五行을 배우겠다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네가 五行을 배운다 한들 옛날 范增(戰國時代 項羽를 도운 戰略家. 天文을 보고 劉邦이 天下를 통일할 인물임을 알고 그를 죽이려 기도했으나 失敗함)이만 못 할거고 그 후의 龐士元(中國三國時代 蜀漢의 謀臣 龐統)만큼 못할 텐데 배워서 뭣하겠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억지로 배워달라고 했지요. 그분으로부터 배운 것이 皇極數 太乙數 등의 數였습니다.

이런 수는 세상일을 환히 내다 볼 수 있다는 수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배워도 邵康節(宋나라 性理學者 詩人 天文易數의 大家 數理哲學者 皇極經世書를 저술)처럼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공부를 바꾸어 四柱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스무 살 때부터 스물두 살 때까지 중국의 四柱學說을 공부했습니다.
스물두 살에 조선으로 다시 돌아와서 전국을 돌면서 사람들의 잘되고 못 되는 것을 두루 살피며
경험을 하기 시작했어요.


- 사람의 吉凶禍福을 헤아리는 일에 대해서 좀 알기 쉽게 말씀해 주십시오.

▲ 陶溪선생=
吉凶禍福은 生年月日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꼭 알아야 할 일은 幻魂動覺이 4가지 요인이 生年月日 이외에도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幻은 쉽게 말하자면
한 날 한시에 태어났더라도 짐승이냐 사람이냐에 따라 吉凶禍福은 사람한테만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짐승에게는 사람의 吉凶禍福이 적용될 수가 없어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哲學의 主題가 됩니다.

魂은 祖上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 前身은 아버지이고 그 앞의 전신은 할아버지입니다. 이렇게 쭈욱 이어지지요.
그래서 그 祖上이 좋은 일을 했으면 그 자손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조상이 고약한 일만 많이 했는데 그 後孫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되겠지요.

그 다음이 動입니다.
한마디로 有國然後에 有民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倭政36년 동안 한국사람은 아무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8.15해방이 뚝 떨어지니까 長官 되는 사람이 쏟아져 나오고 國會議員이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이것이 動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세상에 태어나느냐가 중요하지요.

마지막이 覺입니다.
이것은 本人의 깨달음을 말합니다.
본인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합니다.
生年月日時가 똑 같으면 똑 같은 人生을 살게 되느냐 하면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四柱는 51만8천4백 가지에 다른 四柱가 있습니다.
60가지 甲子에 12가지 달을 곱하고 거기에다 60가지 日辰을 곱하고
또다시 12가지 時間을 곱해서 얻은 숫자입니다.
세계에는 똑 같은 四柱를 타고 난 사람이 한 四柱마다 평균 1만 명쯤 있습니다.
세계인구 50억을 五行의 가짓수로 나누면 그렇게 되지요.

이와 같이 똑 같은 四柱를 타고나더라도 각자의 運命이 달라지는 것은
앞에서 말한 幻魂動覺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幻魂動覺을 빼어 놓고는 哲學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헛소리가 되기가 십상이지요.
幻魂動覺이 좋으면 四柱가 좀 부족하더라도 이것을 씻어 줄 것이고
幻魂動覺이 나쁘면 사주가 좀 좋더라도 복을 받는 것이 줄어듭니다.


- 命理學의 學問的 내력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 陶溪선생=
옛날 伏羲(중국 고대 三皇五帝 가운데 맨 첫王)가 河圖에서 方位와 身體部位를 표시하는 數體系를 얻고 

周나라 文王이 洛書에서 點으로 표시하는 數體系를 만들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합하여 陰陽五行의 체계가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周易입니다.
그러나 요즘의 術客들이 흔히들 周易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周易은 진짜 학문이지요. 眞理와 善을 밝히는 학문입니다. 이것이 易學입니다.
다만 周易에도 군데군데 陰陽五行에 따라 吉凶禍福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의 術客들도 陰陽 두 글자와 五行을 말하고 있으니 그 근원은 周易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易學 그 자체는 아니지만 易學에서 分하여 나왔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 命理學과 道學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 陶溪선생=
道學을 내어버리고 觀相을 보아주어서도 四柱를 보아주어서도 醫術을 펴서도 안 됩니다.
道學을 떠난 五行은 僞經입니다.
예를 들어 四柱에 本妻를 버리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해서 이롭다 하더라도
五行하는 사람은 그것이 道德에 벗어난 일일 때는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이것은 술객의 心德에 달린 문제라고 하겠지요.


- 韓國의 命理學은 지금 어떤 형편에 있다고 보십니까?

▲ 陶溪선생=
지금 우리나라 命理學은 야단났습니다. 버렸어요.
6개월간 초급반, 1년간 고등반 이런 것으로는 命理學이 될 수가 없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漢文에 無識은 면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甲子年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67년간을 전공하고 있다고 보겠는데,
그래도 껍데기 밖에 모르고 핵심을 잡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그래도 좀 했다는 나 같은 사람도 오히려 부러지게 이야기 하지를 못합니다.
「글쎄요, 운이 좀 덜 좋으니까 분수를 지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이런 정도로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매우 야무진 소리를 더 합니다.
당장 교통사고를 당할 거라느니, 부부 이별할 수가 틀림 없다느니 말입니다.
術客들 사이에 서로 공부한 것을 두고 交歡하거나 하는 일도 없고 先後輩관계 같은 것도 없습니다.
교도소 징역쟁이들의 秩序만도 못하지요.

이런 얘기는 다 제쳐두고, 術書하는 사람들한테 꼭 얘기하여 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게 아니고 시간 얘깁니다.

지금부터 80년 전 大韓帝國 시절에는 11시 땅 치면 그때부터 午時初였습니다.
日本人이 우리나라를 뺏은 후 庚戌年 7월 25일부터 植民地 정책을 펴느라고
우리나라 시간을 30分 앞당겨 東京표준시간을 쓰게 되었지요.
倭政 36년, 軍政3년, 그 다음에 大韓民國이 樹立되고도 이 시간을 그냥 쓰다가
李大統領 그 양반이 시간을 왜 日本시간으로 쓸까 보냐고 야단을 치는 바람에
甲午年 음력으로 2월17일에 가서 다시 30분을 늦추었습니다.
그래서 도로 우리나라 度數와 딱 맞게 되었지요. 辛丑年까지 그래서 옳은 시간을 썼습니다.
그러다가 군사혁명이 나고 朴正熙 대통령시절 정부에서
그 해 음력 6월 29일 子時부터 다시 東京표준시간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11시가 지났다고 午時가 아닙니다.
이렇게 틀린 시간을 가지고야 五行이 맞을 수가 없지요.
게다가 서머타임을 실시한 적도 있어서 시간을 바로 잡기가 까다롭습니다.
四柱를 바로 보려면 첫째 시간부터 제대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 옛날 선생님이 처음 命理學을 공부하시던 시절의 이야기를 좀 들려주십시오.

▲ 陶溪선생=
제가 中國서 돌아와서 배운 선배는 서울 도염동 44번지에 살던 全在鶴이란 분입니다.
몸 전체가 새하얀 분이라서 全白人이라고도 불렀지요.
같이 서로 공부한 사람으로 權相龍, 全東津, 尹상돈 이런 분들이 있었습니다.
權相龍씨는 나보다 18세나 위였습니다만 나를 늘 접장, 접장하고 부르며 선생대우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았지요. 全東津씨도 己丑생이라서 나 보다는 나이가 많았지요. 

全東津씨는 나중에 平康郡守가 되었는데 郡守가 되다가 말고 6.25가 터지는 바람에 내려와서
다시 四柱를 보았지요. 學問이 아주 넉넉했지요.
윤상돈씨는 漢醫院이었는데 全東津씨한테 五行을 배운 사람입니다.
우리 넷 가운데 윤상돈씨가 제일 나았습니다.
나보다는 權相龍씨가 낫고 權相龍씨 보다는 全東津씨가 더 나았어요. 참 잘들 보았지요.
셋 다 나보다 먼저 죽었어요.


- 선생님이 가르친 정통 命理學의 後繼者는 누가 있습니까?

▲ 陶溪선생=
(옆에 앉은 易門關主人을 가리키며)이 老石 밖에는 없어요.
73년부터 3년 동안 내 옆에서 書士 노릇을 해주었습니다. 내가 책을 쓰는데도 도왔어요.
그 밖에 지금 공부하고 있는 사람은 약 10년째 내 옆에서 지내고 있는 趙씨라는 사람이 있어요.


- 선생님의 四柱보신 경험담 가운데서 몇 가지만 좀 얘기해주십시오.

(이 질문에 陶溪선생은 웃음만 머금고 좀체 대답이 없다.
듣기로는 우리나라 당대 名士들 가운데 陶溪선생에게 命運을 물어 본 사람은 대단히 많다고 했다.
易門關主人이 陶溪선생 밑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記錄했던 몇 가지 逸話를 들려준다.

어느 날 아침에 손님이 한 분 찾아와서 四柱를 봐달라고 했다.
陶溪선생은 다음과 같은 玉樓夢의 주인공 양창국의 詩를 써 주었다.

斜雨江口
碧龍倒江

그 손님은 탄성을 지르며 어떻게 對處할지 그 方途를 물었다.
그는 土建業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전날 부슬비 내리는 날씨에 그의 심부름을 가던 車가
錦江에 거꾸로 박혀 버렸던 것이다. 그 車는 푸른색 코로나였던 것이다.

빗긴 비 내리는 江에
푸른 龍이 넘어졌구나.

수년 전에 교통사고로 별세한 어떤 유명한 專門경영자의 그 때 身數는 「石氏問藥」으로 나왔다고 한다. 

四言獨步라는 책에 나오는 이 句節의 뜻은 碑石을 새기게 된다는 뜻, 즉 死亡의 뜻이라고 한다.
이런 얘기가 자꾸 이어져 나가자 그때서야 陶溪선생이 이야기를 하나 더 꺼낸다.)

▲ 陶溪선생=
젊었을 때 한번은 江陵의 어떤 여관에 들었는데 나를 시험해볼 생각으로
어떤 쌍둥이형제의 四柱를 누가 가지고 왔어요.
乙酉, 丙戌, 甲申, 辛未 이렇게 된 四柱였어요.
時間을 물어보니 쌍둥이 兄은 2시28분이고 동생은 2시31분에 태어났다는 것이었어요.
支藏干에 보면 先童은 未 가운데 己土가 들어 있고 後童은 같은 未이지만 丁火가 들어 있거든요.
형과 아우는 둘 다 貴한 자리에 오르겠으나 형은 喪妻를 하고 無子孫하며
아우는 夫婦偕老하고 3兄弟를 두었다고 答해 줬지요.
젊은 때는 이렇게 까지도 맞힌 일이 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兄의 이름은 李東昊라고 했고 아우는 李東旻이라고
둘 다 日本서 大學을 나오고 法官 노릇을 하는 분들이었어요.


- 여러 가지 말씀 감사합니다. 특별히 하시고 싶은 말씀이 계시다면.

▲ 陶溪선생=
두 가지가 딱 있습니다. 이것은 둘 다 나라가 할 일인데….
하나는 前科者를 社會가 받아서 活用하는 方法을 꼭 硏究해서 실천해 달라는 것입니다.
건강하고 재능 있는 人材로 키워서 살도록 해줘야지요.
둘째는 교육제도를 고쳐서 우리나라 사람이면 男女를 불문하고 모두 원하는 大學을 나올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입니다.
建物과 先生이 문제라고 할는지 모르나 건물은 굳이 커다란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닐 테고
대학을 졸업했으면 누구나 또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을 테니 先生도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