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 그것이 알고 싶다.

운명 이야기

[스크랩] 학선 선생님 인터뷰 글

일산백송 2015. 3. 26. 15:14

기문둔갑.사주의 명인

유 래 웅

 

역술의 범주에는 사주와 관상 그리고 성명학과 천문학 등이 포함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풍수지리도 역술의 한 분야로 꼽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술법이 있는 것이 바로 역술이지만 이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꼽을 수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어떤 분야건 한 술법에 수십년 이상을 몰두하여 역술계에 일가를 이루어야만 ‘대가(大家)’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이다.

명인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역술은 누구보다도 많은 임상체험을 해야 필중의 확률을 구사할 수 있고, 단편적인 측면보다는 종합적인 이해가 이루어져야 올바른 인생의 목표를 제시할 수 있기 떄문이다.

명리(命理)에서도 마찬가지. 운명이라는, 우리네 최대의 관심사를 알려주는 술객이라면 단지 인생을 예견한다는 차원을 넘어 인생에 대해서 관조하고 조언해 줄 삶의 두터운 켜를 필요로 하는 것 이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경기도 성남의 유래웅(柳來雄)이라는 술객은 여러 가지로 자격미달이었다.

그는 이제 볼혹을 넘겼을 뿐, 인생을 관조하고 조언하기에는 아직 젋다고 할 나이였다. 그가 역술을 펼치는 곳은 더구나 명리의 대선배들이 무겁게 포진하고 있는 서울에서 벗어난 주변 도시 성남의 한 구석이었다.

그와의 만남에는 이렇게 만만치 않은 장애물들이 산재해 있었다.

그러나 쟁쟁한 명리의 명인들을 굳이 재쳐두고 그를 만난 이유도 간단치만은 않았다. 그를 두고 역술의 전문가들은 ‘나이와는 비교 할 수 없는 실력’이라거나 ‘다른 명인을 필적하는 적중률’을 말하곤 했다. 명리의 대가인 홍몽선씨도 그를 추천했다.

 

너무 잘 맞추는 것도 문제(?)

 

편치만은 않은 마음으로 그를 찾았다. 미성(美聲)에 가까운 목소리는 몇 번 들었지만 나이보다도 젊어 보이는 그의 얼굴은 무척 맑아 보였다.

“다른 대가들도 많이 계신데 여기까지 찾아오시다니..”

편한 웃음을 지으며 그가 입을 열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사주를 믿어도 부작용이 클 겁니다. 적당히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섞여 있어야 어울리는 것이지요.

이병주씨의 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 축(丑)시에 낳으면 임금인데 인(寅)시에 낳아서 임금이 못 되었다는 대목이 나오듯이 그런 미묘한 작용이 있어야 세상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주에서 캐스팅 보트 역을 맡고 있는 시(時)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때 그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 무조건 사주를 믿는 것도 자신으로서는 반길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5.16 군사정변 후 박정희 정권은 미8군의 장병들이 일본 오키나와 기지를 출발하여 한국으로 올 때 시간 맞추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로 동경 표준시를 우리의 표준시로 만들어버린 것을 잘알고 있다.’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시간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며 우리의 시간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경 표준시나 섬머타임의 적용문제를 묻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한 수 앞선 답변을 들려 주었다.

역술인들이 제대로 된 시간을 찾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의 여늬 역술인과 달리 지나치게 민감한 사항에 대하서는 가급적 언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더욱 정확한 풀이를 하는 것이 역술인의 목표일 텐데 너무 잘 맞히는 것도 문제가 될 수있을까.

“20년 전만 해도 잘 맞히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정확했기 떄문에 생기는 부작용도 적지만은 않았습니다. 예민한 것은 피하기로 마음먹기 전에는 부부가 함께 와도 부인에게 ‘당신 샛서방 있지’ 하는 식이었으니...”

그에게 숨겨진 일화 한 토막이다.

 

지난 정초. 한 부인이 찾아왔다.

남편의 한 해 운수를 보니 본인은 좋은데 가족은 좋지 않아 14세된 아들의 사주를 보니 계묘, 무오, 병신, 임진인데 목(木)과 화(火)가 싸우는 사주에 칠살이 강하고 기문법 신수에 쌍오(雙五)가 나와 눈을 다쳐 장님이 되기 쉬운 팔자였다.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부인은 방을 뛰쳐 나갔다. 그러나 맞지 않았으면 좋을 그의 예언은 적중, 그 소년은 몇 달 후 불구가 되었다.

 

역학의 최고수학문 ‘기을림 3수’

 

그의 사주 판단이 필중에 가까운 이유는 이른바 ‘기문’을 구사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그의 말을 들어본다.

 

“역학의 최고수 학문은 ‘기을림 3수’라고 하지요. ‘기문(奇問)’과 ‘태을(太乙)’ 그리고 ‘육임(六壬)’ 이 세가지를 모두 하게 되면 지상신선이 된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제갈량과 장자방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율곡과 화담, 토정 선생이 했다는 것인데 근래에 이 기을림 3수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없지요."

 

국내에서는 20명 미만이 기문을 활용한다고 하는데 유래웅씨는 ‘감히 육임과 기문을 사용할 줄 안다’고 답했다.

기문둔갑의 법은 원래 운명을 점하는 학문이 아니라 주요 부분이 병법이었기 때문에 이를 탐구한 사람은 대체로 군인이거나 왕사였다고 한다. 기문을 통해서 사람은 기후와 진부(眞否), 인사(人事), 국운, 문가의 동향, 농사의 풍흉, 재난과 그 시기 등을 알 수 있다. 유래웅씨는 기문을 다시 좌도기문(左道奇門)과 우도기문(右道奇門)으로 나눈다. 좌도기문은 축지법을 비롯한 도술을 말하고 역술에 사용하는 것은 우도기문으로 자신이 적용하는 부문이라는 것이다.

“저는 60갑자를 상, 중, 하원으로 나누어 180년 단위의 사주를 봅니다. 따라서 똑같은 사주라고 하더라도 60년 전의 사주와 60년 후의 사주는 다른 해석이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그의 말에 의하면 ‘사주는 시간 개념으로 푸는 것이지만 기문은 공간 개념으로 풀 수도 있고 시간 개념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고 한다. 기문은 곧 사주를 갑을병정..., 자축인묘...,의 순으로 숫자화하여 아홉 개의 궁(宮)으로 연역한다는 것이다.

역술의 최고수들만이 구사한다는 기문둔갑. 그 중에서도 우도기문에 자신을 보이는 유래웅씨에게 조금 거창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른바 국운(國運)에 대한 질문이였다. 그는 잡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신이 국가의 운명을 밝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은 아니만 분명 천기(天氣)에 해당하므로 굵은 줄기만을 언급하겠다’며 무겁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통일한국은 한연방 이루는 대국이 된다.

 

“비공식적으로 입수한 김일성의 사주를 보면 94년에 실각하거나 사망할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필자가 유래웅씨를 처음 만난 것은 ‘93년 2월이었음.).

 그렇게 되면 남북통일은 곧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납니다. 등소평이 사망한 다음에 중국의 각주는 대립하여 격변이 일어납니다. 연변 조선족 자치구도 자치국이 되고..”

그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한 나라가 된 통일 한국은 자치국이 된 연변한국과 몽고족 그리고 그밖의 몽고족과 결합, 한연방을 결성한다. 우리 나라는 동북 아시아에 위치해 간이산괘라고 볼 수 있는데 주역 역문에는 이 간이산이 ‘시간이요 종간’으로 되어 있다. 동이족이 역사의 첫장을 열고 인류 역사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국운의 융성기는 얼마 안 있어 화려하게 펼쳐지는데...

그의 말은 막힘이 없다.

이른바 통변(通辯)이라고 해서 학문적인 경지보다 대중을 현혹시키는 유창한 술사들이 많은데 반해 그의 이론체계는 정확했고 박학했다. 많은 공부와 적지 않은 책을 접했음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 이었다.

“더러 이런 말들을 합니다. 일본인은 진흙이고 한국인은 모래라는 지적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시멘트 같은 지도자가 나오면 진흙보다도 강한 민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일본인들이 금수강산에 철주를 박아 훌륭한 지도자의 출현을 막고 있지만 앞으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기문에 대한 답변은 다시 육임으로 이어진다. 육임이라는 것은 이른바 12궁(十二宮)으로 하는데 상당히 복잡한 내용으로 되어 있으므로 상세한 설명은 그만두겠지만 중국의 고서에서‘육임은 점복의 으뜸’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다시, 닥쳐온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용한 괘(卦)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정통적으로 사용하는 대정수괘와 척전(동전을 던짐), 산가지를 사용하되 신효하게 들어맞는다는 자유작괘법, 점괘를 치러 온 사람이 찾아온 시간을 이용하는 시간작괘법, 책을 펼쳐 나타난 숫자를 활용하는 책서법, 등에 대해서 언급했다.

 

신이 준 배역, 바꿀 수는 없어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이는 그가 실전에서도 그와 같은 능력을 보일 수 있는가는 최대의 궁금사. 사주의 확률에 대하서 물어보았다.

“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저는 사주를 맞출 수 있는 이론적 확률을 95퍼센트 이상으로 봅니다. 술객들도 열심히 하면 90퍼센트 까지 갈 수 있다고 보는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평범한 용복(庸卜)은 60퍼센트 내외를 맞히고, 뛰어난 명복(名卜)은 80퍼센트 내외를 맞히며, 신 복(神卜)은 95퍼센트 이상을 맞힌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대가라고 하면 맞는 퍼센트는 명복과 비슷하더라도 학문적인 깊이가 있는 사람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그의 말대로 그렇게 정확히 사람이 운명을 알 수 있다면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후천운이라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이 되지않는가, 그는 ‘애석하게도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들 그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 고 말했다.

인생은 연극, 연극에는 주연과 조연 그리고 숱한 단역들이 있는데 맡은 바 명연가는 할 수 있겠지만 신이 인간에게 준 배역 자체는 바꿀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차를 한 잔 마시게 되었는데 그는 우유를 청했다.

그리고 ‘저는 아직 키가 덜 커서 우유를 마십니다’라고 조크를 던졌다. 그러나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말이었다.

그의 부친은 그가 태어난 지 하루도 못 되어 ‘아들이 크면 장애자가 되겠다.’는 예언을 들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정확히 3년 후 그 예언은 들어맞았다. 소아마비에 걸린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술객 유래웅이라는 사람에 대한 삶의 편린들을 더듬어 본다.

부산 출생인 그는 여섯 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열네 살 되던 해 그는 학업을 쉬고 있었는데 백두노인이라는 기인을 만났다. 생업에는 관심없이 만주벌판에서 기이한 행각을 벌였다는 사람이었다.

그에게서 60갑자와 64괘 그리고 주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들을 배웠는데 배우는대로 외우다시피하는 그에게 노인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스승은 ‘더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연해자평, 명리정종, 적천수, 궁통보감, 삼명통회 등 책을 구해 설립했다.

 

그 다음에 그가 만난 사람은 <천부경과 우주변화>라는 책을 낸 김계홍 선생이었다. 그는 선생과의 서신 왕래를 통해서 이론적 체계도 넓혀갔고 사주와 성명학의 심도를 더해갔다.

이후에는 입산하여 절에서 역술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나름대로 문학공부도 했는데 신춘문예에도 여러번 응모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역술인이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역술은 취미 차원을 벗어나지 않았는데, 틈틈이 익힌 바둑 실력이 강 1급으로 프로 진출까지 생각했을 정도였으므로 나름대로 기원을 차리려는 욕심이 있었다.

그즈음 공무원이었던 부친이 타계하고 나서는 생계에 대한 책임도 져야만 했다.

 

스물 한 살 되던 ‘73년 4월 1일. 새파란 나이에 서울 신림동에 역술원을 차렸다.

백두노인에게서 2년. 독학이 2년. 김재홍 선생에게서 1년 가까이 배웠으므로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 찾아왔다가도 새파랗게 젊은 그를 보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부지기수였고 신체적인 불구를 이유로 되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1주일에 고작 한 두 명이 찾아왔을 뿐, 그 시기에 한 가지 희망적인 일이 있었다면 결혼하여 두 딸을 두게 되었다는 것.

 

그러나 성남으로 자리를 옮기고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1년이 지나니 용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이후 3~4년 동안은 눈코뜰 사이도 없이 바빴다. 그의 사주가 정확하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이제는 나름대로 자리도 잡고 그 이름이 서울을 포함한 근동에 알려지면서 더러 명인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부정기 간행물인 <역학춘추>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이 책은 ‘권위있는 대가들이 글만 싣는다’는 전제로 지난 ‘91년 3월 창간되었는데 전문지 못지 않은 수준 높은 내용과 깔끔한 편집이 돋보인다. 필진만 살펴봐도 청수산방의 홍몽선, 역문관의 유충엽, 조성우 등등 내로라하는 사주학자들... 그는 <사주학의 활용법>과 관상에 대한 책을 내기도 했다.

신체 불구를 딛고 정상인도 하기 힘든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인출한 유래웅, 필자는 이제 그의 육체적인 키는 다 커버렸지만 학문적인 키야 앞으로 얼마든지 더 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보았다.

 

역술에 대한 인식 좋아져 다행

 

“저는 직업의식이 강한 편입니다. 아마추어가 아니가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자부심을 느낄수 없는 것은 왜일까요. 내가 노력한 시간과 정성, 그리고 학문의 비중으로 보았을 때 역학은 상당하지만 역술의 지위는 그렇지 못해서 일까요. 그렇지만 역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높아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동료들이나 후배들의 실력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습니다.”

사주를 보면서 누구는 귀하게 태어나고 누구는 어려운 처지로 태어난다는 것에 회의를 갖게 되고 모든 것은 결국 전생의 입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그는 쌍둥이 딸을 두고 있다. 역술을 하는 그에게 이같은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 딸들은 개복 수술을 해서 2분 차이로 출생했습니다. 쌍둥이의 사주는 공통점도 있지만 틀린 점도 있습니다. 저로서도 정확한 답은 내지 못하고 있는데 과학도 수정보완의 과정을 거치듯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연구의 대상이 될 겁니다.”

 

그의 말은 역학으로 모든 숙제를 다 풀 수는 없다는 말이 된다.

그 부분은 그가 말한 확률 90퍼센트의 나머지 부분일까. 그는 역술을 하는 아버지를 이해해주는 딸들이 고맙고 남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던 자신에게도 감사한다고 했다.

필자의 사주를 앞에 놓는 그는 서서히 용신을 뽑고 격국을 잡았다. 수명과 건강에서 대운과 재운, 친구와 자식의 운까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숱한 명인을 만나온 필자에게 새로은 것은 별로 없었지만 그는 한땀한땀 예리한 분석을 했고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 짐짓 예민한 부분을 피해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가 인생의 의미를 꺠닫기 시작하는 나이에 접어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와 헤어지면서 필자는 잠시라도 외모만 보고 사람을 평가했던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명리뿐만 아니라 인생의 좌표를 설정해 가는 데 있어서도 가히 명인이라 할 만했다.

앞으로도 그는 숱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인생을 듣고, 그는 가야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 피해갈 길과 질러갈 길을 제시하며 참다운 인생의 가치에 대해서도 논할 것이다. 학과 닮은 신선이라고 해서 학선(鶴仙)이라는 아호를 갖고 있는 유래웅. 그는 알 것 같다가도 결코 알 수 없는 명리의 신비함만큼이나 많은 의문을 갖게 하는 멋진 술객이었다.

 

[한국의 역술, 역술인]

지은이 김성률. 도서출판 집사재. <1994. 12.>에서 옮김.

출처 : 고려기문학회(학선의 기문둔갑 학당)
글쓴이 : 동해안선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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