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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야기

윤석열 정부 첫 인사, 굽은 나무가 굽은 나무를 부른다

일산백송 2022. 5. 7. 10:57

윤석열 정부 첫 인사, 굽은 나무가 굽은 나무를 부른다

한겨레 입력 2022. 05. 07. 09:16 수정 2022. 05. 07. 09:26 
첨예한 인사검증 국면..겸손한 태도로 인사참사 막아야
굽은 나무 위 곧은 나무 못깔아..첫 내각 '곧은 나무'로

[한겨레S] 이상수의 철학으로 바라보기

굽은 나무 이야기(曲木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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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들어설 윤석열 정부에서 내각 구성을 위한 인사 검증 정국이다. 내각의 수장인 국무총리부터 국무위원(장관)에 이르기까지 각 부처 장관들의 하마평이 나오고 있다. 각 인사들의 자질과 인사 검증 기준 등에 대한 여야 간의 시각 차이가 벌써 예리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정국에서 윤석열 당선자가 조선시대 조정의 인사 담당자가 들려주는 교훈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는 조선 숙종 때 조정의 문관 인사를 담당하던 이조전랑을 지낸 윤휴가 남인 정권이 서인 정권에 의해서 교체된 경신환국 직후 자신의 후임인 송시열에게 들려준 교훈이다.

굽은 나무를 가리는 법

윤휴는 송시열에게 ‘사문난적’(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이라고 몰리는 곤경을 겪고, 결국 사약을 받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는 송시열에 대해 벗으로서 해주어야 할 말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태도로 임했다. 이런 점은 본받아야 할 빛나는 선비 정신이다. 윤휴의 <연보>(年譜)는 그가 43살이 된 효종 10년 기해년(서기 1659년) 효종이 죽고 현종이 왕위를 계승하던 해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었음을 전한다. 그해 5월 송시열이 전조(문관의 인사권을 가진 기구)의 권력을 잡자, 그에게 청탁하기 위해 몰려오는 이들이 많았다. 송시열이 전임자인 윤휴를 찾아가 이조전랑의 급선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윤휴는 중국 전국시대 최고 명재상으로 손꼽히는 관중이 제환공에게 들려주었던 얘기를 통해, 인사권자가 명심해야 할 교훈을 송시열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왕정 시대 얘기이지만 오늘날의 인사가 왕정 시대만도 못한 원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면 그 또한 한참 국민의 눈높이에 미달인 것이 되지 않겠는가?

“옛날에 제환공이 마구간을 둘러보다가 마구간을 책임지는 벼슬아치에게 ‘마구간 일 가운데 어떤 일이 가장 어려운가?’ 하고 물었다. 마구간 벼슬아치가 대답을 얼른 못하자, 관중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이오(관중의 이름)는 일찍이 말을 기르는 어인(圉人) 노릇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마판(마구간의 바닥에 까는 나무판)을 까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먼저 굽은 나무를 깔면, 굽은 나무 다음에 또 굽은 나무를 대어야 하기 때문에, 굽은 나무를 깐 다음에는 곧은 나무를 깔 수 없습니다. 먼저 곧은 나무를 깔면 곧은 나무 다음에는 또 곧은 나무를 대어야 하기 때문에, 곧은 나무를 깐 다음에는 굽은 나무를 깔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윤휴가 이 얘기를 해주자 , 송시열이 웃고는 가버렸다 . 그러나 그가 가까이하고 신임한 자들은 모두 간사하게 아첨 잘 하고 치우친 이들, 이른바 ‘사녕편피’ (邪佞偏詖 )였기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백호선생문집 > 부록 <행장 >)

윤휴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메시지는 처음에 굽은 나무를 깔기 시작하면 그다음에는 굽은 나무가 또 굽은 나무를 요구하여, 곧은 나무는 깔 수가 없게 된다는 얘기(先傅曲木, 曲木又求曲木, 曲木已傅, 直木無所施矣)다. 또한 역으로 먼저 곧은 나무를 깔면 다음에는 곧은 나무가 또 곧은 나무를 요구하여, 굽은 나무는 깔 수가 없게 된다(先傅直木, 直木又求直木, 直木已傅, 曲木無所施矣)는 이야기다. 이는 섬뜩할 정도로 인간 세상의 인사 원리와도 일치하는, 탁월하고 심각한 비유이다.

윤 당선자가 최근 발표한 국무총리와 각 부처 장관 후보자들은 그야말로 그 분야에 처음 까는 나무에 해당하는 인사들이다. 관중의 비유에 따라서 얘기를 하자면 이 인사가 굽은 나무부터 시작한다면 곧은 나무는 들어설 자리가 아예 없어지는 것이다. 이 원리는 윤 당선자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인사 담당자들이 마음에 새겨둬야 할 인간 세상의 인사 원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어떤 인사가 곧은 나무인지, 굽은 나무인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 문제에 관해서는 조선 중기의 사대 문장가 중 하나로 꼽히는 계곡 장유 선생은 ‘굽은 나무 이야기’(曲木說)라는 글에서 검증 기준과 관련해 꼭 참고하면 좋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는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이 집을 수리하기 위해 나무를 구하러 갔다가 곧은 나무인 줄 알고 베어 왔는데 집에 가져와 보니 굽은 나무였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런 일이 왜 발생하냐면, 나무가 굽었는지 곧은지는 여러 각도에 서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피사의 사탑도 탑이 기울어지려는 방향에서 보면 곧게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위치를 바꿔 보아야 탑이 기울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계곡 선생의 글에 나오는 장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 나무의 경우는 내가 세 번이나 다른 쪽에서 살폈어도 쓸모없는 나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용모를 그럴듯하게 꾸미면서 속마음을 숨기고 있는 사람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然是木也, 余三視之, 不知其不材也; 而況於人之厚貌深情者乎.) 나무의 곡직을 판단하는 일도 이렇게 어려운데 사람을 판단하는 인사야 얼마나 어렵겠냐는 말이다.

계곡 선생이 들려주는 인간 세상의 인사와 목재의 곡직을 판단하는 중요한 방법은, 자기 위치만을 고집해서는 재목의 곡직을 판단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다른 위치에 서보아야 나무가 굽었는지 곧은지가 보인다는 얘기다. 인물에 대한 검증 기준과 시야가 다양해야 하는 필요성은 이런 데서 나온다.

하물며 굽은 사람 가리는 어려움이란

윤 당선자 쪽은 자신의 인사 검증 기준이 옳다고만 고집하기보다, 다른 각도에서는 그 인재의 굽은 모습을 보아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더 겸손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지적 덕분에 인사 참사를 막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하며, 이에 대해 고맙게 여길 줄도 알아야 한다.

윤휴가 들려준 이야기처럼 굽은 나무로 시작된 인사는 속성상 계속 굽은 나무를 요구하기에 곧은 재목은 원천 배제되는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계곡 선생은 앞의 글에서 한나라 때 유행했던 속담을 소개하고 있다.

“활줄처럼 곧으면 길가에서 죽고, 갈고리처럼 굽으면 제후에 봉해진다.”(直如絃, 死道邊; 曲如鉤, 封公侯.)

윤 당선자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에 대한 첫 인사는 우리나라를 이런 속담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로 만들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는 첫 단추를 채우는 일이므로, 윤휴와 계곡 장유 선생의 지혜로운 조언에 귀를 잘 기울이길 희망한다.

연세대에서 주역 연구로 석사, 제자백가 논리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겨레> 기자를 거쳐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등을 지냈다. 제자백가 사상과 철학을 강의하고 글쓰기를 하고 있다. <아큐를 위한 변명> <한비자, 권력의 기술>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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