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점) | 같이 읽기 2005-04-29
오후 5:42:49
양복점을 경영하느라 늘 바쁘셨던 부모님 슬하에서 9 남매의 세째딸로 태어난 나는..
어릴적 아버지가 붙여준 ‘살살이’라는 별명처럼, 엄하시던 아버님의 비유를 잘 맞춰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밥을 짓다가도 음악만 나오면 춤이 절로 나와 부뚜막에서 냄비뚜껑을 마주치며 흥얼거렸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저것이 꼭 무당 흉내를 낸다” 며 꾸지람을 하셨다.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그 말이 현실이 되어 서른 한 살에‘신굿’이란 걸 받게 됐다.
마음 속엔 동네에서 하는 굿을 보며 내심 사람들의 사정을 알아맞추는 것을
흥미롭게 느끼곤 했다.
젊은 처녀가 무당이 된다는 소문에 동네 사람들과 일류급 무당들이 모여 들었는데
급기야 일이 벌어졌다.
무당옷을 입자마자 신기하게도 춤을 추며 사람들의 과거사를 척척 알아맞춰
무당들의 신임을 한몸에 받게 되었다.
그때부터 험난하고 고된 생활이 시작됐다.
극성맞은 어머니는..용하다는 법원리의 ‘신아버지’에게 나를 맡겨
아예 날마다 들락거리며 굿할 때의 춤, 말하는 법, 엄포놓고 돈 강요하는 법 등
무당들이 하는 다양한 기술을 익혀야 했다.
그러던 중...
무당들과 좀더 가까이 살 위해 집을 구하고 중도금을 주고 나오는데
산꼭대기에 교회 하나가 눈에 띄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어머 저기 교회가 있네요”
하며 옆에 있던 무당에게 얘기 했더니 “그런 소리 말아. 싸워봤자 우리들이 이기지”
하며 우쭐댔다.
두 번째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불 덴 것처럼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산을 내려오며 “내 인생이 이게 뭔가. 무당은 눈뜬 도둑이라는데,
30평생 남의 돈이나 뜯어먹고 살아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에 무당의 길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성당에 발을 딛기 시작했는데 밤만 되면 형체도 없는 귀신들이 달려들어
잠을 제대로 이룬 날이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교회 종소리만 들리기 시작하면
귀신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시집가면 잘 살 거라는 아버지의 말과는 반대로 점점 심해지는 가정불화로 인해
결국 첫째 아이 낳고 얼마 못되어 남편과 1년간 별거 생활을 하기로 했다.
친정에 내려가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하루 세 시간씩 혼자 사는 아가씨 집에서 파출부 일을 했다.
어느새 친해진 아가씨는 형편을 듣더니 같이 살자고 했다.
잘됐다 싶어 같은 방을 쓰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알고 보니
아가씨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것이다.
불치병에 걸렸던 자신이 한 노점상 아저씨의 전도로 암을 고침받은 얘기를 해주며
“아주머니는 교회에 나가야 산다”고 밤낮 부추겼다.
하루는 배가 아프다고 꾀를 부리더니 자신이 다니던 교회로 나를 데려갔다.
엉겹결에 따라간 나는 안수기도까지 받게 되었는데
머리에 손을 얹는 순간 진동이 하도 심해 뒤로 넘어지기까지 했다.
목사님은 나를 위해 기도하시더니 마치 점쟁이처럼 나에 대해 잘 알아 맞추셨다.
아가씨의 계속되는 성화로 일주일치 식량을 짊어진 채 한얼산 기도원까지 가게 됐다.
전날밤.. 나를 두고 어딜 가냐는 마귀의 시달림으로 두려움 속에 식은땀을 흘리며 자야 했다.
기도원에 도착하니..
미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내가 여기 있다가 저 사람들처럼 미쳐서 가면 시집 식구들이
얼마나 욕을 할까” 싶어 그냥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신도들이 이구동성으로 마귀들이 방해하는 것이니 이겨야 한다며
절대로 내려가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앉아서 찬양하고 박수를 치는데 내 손이 아픈 곳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집회가 끝난 뒤.. 나는 처녀때부터 시달리던 고질적인 신경통을 완전히 고침 받았다.
맘속엔 평안과 기쁨이 몰려왔다. 게다가 이천석 목사님의 간증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머리속에서는 남편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찼으나
입에서는 남편을 서운하게 했던 죄를 용서해 달라는 말이 나왔다.
함께 살겠다는 고백과 함께 지난날을 회개하며 통곡의 눈물을 흘렸다.
기도원에 온 지 3일째 되던 날 방언이 터졌고
이천석 목사님의 방언통변을 통해 굴 속에 갇혔던 나의 상태를 다시 확인하며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구나”하는 강한 확신과
“내가 너의 아픈 가슴을 쓸어줄 것이니 너는 걱정하지 말아라” 하는 음성이 들렸다.
나는 푸른 풀밭에서 천사들과 함께 찬양하는 환상 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금요일이 되자 아가씨는 그만 내려가자고 했다.
신발까지 없어진 나는 천국에서 떠나기 싫다며 투정을 부리다
결국 어느 분의 슬리퍼를 빌려 신고 하산해야만 했다.
은혜 받은 것을 잊은 채 찾아온 남편을 차갑게 돌려보낸 나는 두 번의 경고 끝에 다시 남편과 함께 합쳤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의 삶 자체가 그 증거이다.
(중략)
- 권금수 권사 간증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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