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안희정, 성폭행 고소 사실관계 묻자 "그 얘기는 하지맙시다"
입력 2018.03.12. 03:01 수정 2018.03.12. 03:
동아일보, 안희정 검찰조사 이후 추적 보도
“저를 고소한 분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제 아내가 더 힘들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후 어떤 일을 당하든 아내와 가족들 곁에 조금 더 있어주고 싶습니다.”
10일 오전 4시 반경 수도권 외곽의 한 휴게소 주차장.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날 오후 서울서부지검에 자진 출석해 9시간 반가량 조사를 받은 뒤 승용차를 타고
수도권의 모처로 향하던 길이었다. 안 전 지사는 기자와 대화를 하다 갑자기 헝클어진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계단에 쪼그려 앉았다. 멍하니 허공을 주시했다.
○ 안희정 “날 내버려둬 달라”
안 전 지사는
“내가 버티는 유일한 이유는 가족들 때문이다.
아내가 얼마나 힘들어하겠는가. 잘못의 책임은 나에게 묻고 가족들은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족이 있는 곳으로 이제 갈 수가 없다. 부모님 댁으로 가고 싶어도 집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칠 테니 나는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며 흐느꼈다.
이날 안 전 지사가 탄 차량을 운전한 안 전 지사의 친구는
“(안 전 지사가) 잘못은 했지만 친구의 초상을 치르기 싫어서 도와주고 있다”며
“이 친구의 아내가 지금도 걱정이 돼 집에서 잠을 못 이루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는 성폭행 피해자 김지은 씨(33)가 고소한 내용의 사실 관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그 얘기는 하지 맙시다”라며 답을 피했다.
안 전 지사는 기자에게 악수를 청하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다가 불안한 듯 휴게소 주차장을 서성이며
연달아 담배를 피웠다. 그는 “지난 월요일(5일) 관사를 나온 후 옷을 한 번도 갈아입지 못했다”며
“어제까지 아내가 있는 곳에 머물렀는데,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날이 5일이다.
휴게소에서 2시간가량 머문 안 전 지사는 오전 6시 반경 다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오전 8시경 수도권 모처의 목조 조립식 건물에 도착한 안 전 지사는 이곳에 머물며
검찰의 소환 통보를 기다리고 있다. 안 전 지사 측은 “안 전 지사의 심리 상태가 불안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라 가족과 함께 머물며 사죄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앞서 안 전 지사는 이날 오전 2시 반경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며 성폭행 피해자 김 씨에 대해
“저를 지지하고 저를 위해 열심히 했던 참모였습니다. 미안합니다. 마음의 상실감, 배신감
여러 가지 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안 전 지사는 전날 오후 5시경 서울서부지검에 자진 출석해 취재진 앞에 섰을 때는
국민과 가족에게 사과하면서 김 씨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안 전 지사는 김 씨가 검찰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고 있던 때 일방적으로 검찰에 출석한 이유를 묻자
“소환을 기다렸습니다만 견딜 수 없게 저도…”라고 말했다.
김 씨 측은 이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사과의 행동이 아니다. 매우 유감이다”고 비판했다.
안 전 지사는 검찰청사를 빠져나간 자신의 차량을 일부 언론사 차량이 따라붙자 차를 세우고 나와
“제발 나를 좀 내버려둬 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 “강압적 성관계 없었다” 혐의 부인
안 전 지사와 피해자 김 씨에 대한 1차 조사를 마친 서울서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오정희)는 두 사람의 진술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김 씨가 지난해 7월과 9월 각각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러시아와 스위스 출장에 동행했던
충남도 관계자 등 참고인 조사도 벌이고 있다.
김 씨는 검찰 조사에서 “안 전 지사의 성관계 요구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수행비서로서
안 전 지사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안 전 지사는 김 씨와의 성관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위력 등 강압을 행사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과 참고인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번 주에 안 전 지사를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또 안 전 지사에게 세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 A 씨는
이번 주초 안 전 지사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및 추행 등의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고소할 예정이다.
이지운 easy@donga.com·신규진·이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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