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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이야기

"잠자듯 편안한 죽음? 그건 다 거짓말"

일산백송 2018. 1. 31. 08:03

중앙일보

[단독] "잠자듯 편안한 죽음? 그건 다 거짓말"

신성식.이에스더.정종훈 입력 2018.01.31. 02:01 수정 2018.01.31. 07:44

 

"가슴이 타는 듯이, 터질 듯이 아팠어요.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드네요." 김정란(56ㆍ가명) 씨는 서럽게 울었다. 지난해 9월 20일 밤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김 씨는 그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몇달 전부터 죽음은 그림자처럼 그를 좇았다. 인터넷에서 찾은 방법대로 시도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니 편안하게 잠자듯 갈 수 있다고 해서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은 전혀 아니었던 거죠. 그리 아플 줄은 정말 몰랐어요."

 

김정란(가명)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에스더 기자

김 씨는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18년 다닌 직장에서 갑자기 업무가 바뀐 게 원인이었다.

상사는 돈이 아귀가 맞지 않는다며 김 씨를 의심했고 이로 인해 증세가 심해졌다. 제대로 치료받지도 않았다. 주변에서 "마음 단단히 먹고 정신 차려라"고 했다. 그 말이 더 힘들게 했다. 김 씨는 “다 내려놓고 평화로워지고 싶다 생각해서 어리석은 행동을 했어요. 살아나서, 살아서 다시 숨 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5.6명(2016년 기준)이다. 2003년 이후 13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2003~2016년 18만 5998명의 생명이 목숨을 끊었다. 같은 기간 저출산 현상 때문에 줄어든 신생아(8만 5868명)의 2.2배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소중한 생명이 사라졌다.

 

서울 마포대교에 세워진 자살 예방 동상.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모습이다. [중앙포토]

저마다 사연이 있겠지만 평화롭고 편안한 죽음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문가와 자살 시도자들은 "아름답고 편안한 자살은 절대 없다"고 말한다. 어떤 방법을 택해도 고통이 다른 어떤 것보다 끔찍하다는 것이다.

김지연(25ㆍ가명) 씨의 '그 날'은 술로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아이돌 가수가 숨진 지 며칠 지난 뒤였다. 친구와 술을 마시고 귀가해서 목숨을 끊으려 했다. 술자리에서 “나 이제 못 살겠다”고 되뇌던 김 씨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친구가 때마침 전화를 걸었다.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 자기도 모르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숨을 쉴 수 없었고 구토가 계속됐다. 의식이 흐릿해진 가운데 토할 게 없는데도 멋질 않았다. 눈을 뜨니 응급실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어지러워 또 구토해야 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인터넷에 검색하면 전부 '잠들면 모른다'고 했는데 다 거짓말이에요. 진짜 해본 사람만 그 고통을 알 거예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끔찍한 그 고통….” 김 씨는 대부업체의 카드빚 독촉에 시달렸다. 일하면서 빚을 갚았지만 이자 때문에 수천만 원으로 불었다. 설상가상으로 일을 그만두게 됐다.

"가족에게 충격을 안겨서 너무나 미안해요. 엄마만 보면 죄책감에 가슴이 울렁거려요. 빚진 거랑 백수 된 게 부끄러운 일이니까 남에게 이야기하기 어려웠죠. 너무 나쁜 생각만 했지 도움받을 생각은 전혀 못 했어요. 후회가 되는 거죠. 상담도 하고 도움을 받았으면 다른 결론을 내렸을 수도 있는데…."

 

경찰이 자살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출입금지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중앙포토]

이영식(69·가명) 씨는 지난해 6월 음독을 시도했다가 20분 동안 토악질을 하다 위액까지 뱉어냈다. 구급차에 실리자마자 의식을 잃었고 보름간 무의식 상태에서 사경을 헤맸다. 다들 "글렀다"고 했다. 친지들이 장례비용을 줬을 정도다.

이 씨는 미각세포가 망가졌다. 단맛을 제외하곤 다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초점이 안 맞아 땅바닥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 씨는 "이제는 그 짓 안 할 겁니다. 함부로 저 같은 행동을 하지 마세요. 끔찍해요"라고 경고했다.

 

2016년 자살 사망자는 1만3092명이다. 자살 시도자는 이의 10~40배, 즉 13만~52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 자살은 편견 덩어리다. 자살 시도자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직원들이 밤 당직을 하며 전화 상담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정부는 자살자 7만여명 전수조사를 비롯해 6개 분야 54개 대책을 최근 발표했다. 이렇게 해서 2022년까지 자살률을 인구 10만명당 25.6명에서 17명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7개 부처와 경찰청·소방청·우정사업본부가 참여한다. 양두석 안전실천시민연합 자살예방센터장은 "올해는 '자살과의 전쟁' 원년이다. 대통령 직속 자살예방위원회를 설치해 학생·주부·독거노인·군인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이고 민관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