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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명 넘어섰다는 무당과 역술인, 10년 새 倍로 늘었다는데…

일산백송 2018. 1. 6. 04:06

조선일보

[Why] 100만명 넘어섰다는 무당과 역술인, 10년 새 倍로 늘었다는데…

기사입력2017.11.25 오전 3:04

 

먹고살기 어려워질 때 '점집'으로 轉業하는 사람들 많아져

 

불황 때 무속·역술인 증가

취업 힘들고 고령화 사회 대비 평생 직업으로 안정성 높아

학원마다 수강생 꾸준히 몰려… 月 수강료 수백만원 내고 신내림 굿 강의 받기도

 

민속 신앙으로서 가치는 충분

미신으로 치부되는 현실 극복하고 신뢰 주는 무속신앙 거듭나려

2012년부터 자격시험 시행

"점을 맹신하는 사람과 악용하는 역술인 모두 자성을"

 

무당과 역술인이 크게 늘고 있다.

업계에서는 경제 침체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먹고 살기 어려워질 때 학위나 자격증을 비롯한 진입장벽이 거의 없다시피 한 무당·역술인으로 전업(轉業)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지난 IMF 외환위기에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고 한다.

 

박상훈 기자

 

회원 수가 가장 많은 두 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무당 단체)와 한국역술인협회(역술인 단체)에 따르면 두 단체 각각 현재 가입회원이 약 30만명, 비회원까지 추산하면 5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11년 전인 2006년 대한경신연합회에 가입한 무당은 약 14만명, 역술인연합회에 가입한 역술인은 20만명으로 회원수만 지난 10년 새 1.5~2배 늘었다. 협회들의 비회원 추산치까지 더하면 무당과 역술인은 100만명가량으로 짐작된다.

 

무당과 역술인의 목적은 비슷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 무당은 '신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그 결과에 따라 예언·치병(治病) 목적의 굿 의식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주로 여성을 의미하고 남성은 박수 또는 박수무당이라 부른다. 이와는 달리 역술인들은 주역, 명리학 등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점을 치고 사주 풀이를 하거나 관상으로 미래를 내다본다.

 

정년퇴직 없는 무당·역술인 100만 시대

 

문화체육관광부 '2011년 한국의 종교현황'에 따르면 국내 대표 종교의 성직자 수는 개신교 14만483명, 불교 4만6905명, 천주교 1만5918명이다. 이들은 '종교 관련 종사자'로 분류되고, 무당과 역술인은 서비스 종사자에 포함된다. 각각 '민속신앙 종사원', '점술가'로 미래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이다.

 

30년간 무속 연구를 한 무천문화연구소 조성제 소장은 "경제가 어려우면 점집도 불황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때마다 직업으로 무당과 역술을 택하는 사람이 늘어 종사자 숫자는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업계에선 '무당처럼 명퇴(명예퇴직)·정퇴(정년퇴직) 없는 직업이 어디 있느냐'고 흔히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줄초상을 당했을 때 신내림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집안이 줄줄이 망하는 사회적 파산도 줄초상으로 볼 수 있다"며 "경제가 어려워 파산하면서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역술인협회 부설학원 한국역학대학철학학원은 '역학자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강의를 열고 있다. '취업이 힘든 현실과 고령화 사회를 대비해 평생 직업으로 안정성이 높다'고 홍보한다. 주·야간 2개 반으로 나눠 사주명리학·관상학·주역 등을 가르친다. 이 학원 관계자는 "강의마다 수강생은 20명 내외로 꾸준한 편이고, 주간에는 취업준비생과 주부, 야간에는 은퇴를 앞둔 회사원과 공무원들이 주로 듣는다"며 "역학 수업을 하는 곳들도 늘고 집에서 사주풀이 애플리케이션과 책으로 독학하는 사람도 많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 한양굿예술연구보존회는 신내림 받은 사람들에게 굿하는 법을 가르친다. 초급·전수생·이수자 반으로 나눠 3~12개월 동안 서울 지역에서 전승되는 '한양굿'의 장구 장단 및 춤 동작과 대사를 전수한다. 무형문화재 104호 '서울새남굿' 이수자인 강영임 선생은 "신내림은 받았지만 굿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강의를 열고 있다"며 "많을 때는 한 수업에 100명 넘는 수강생이 있었고, 지금까지 2000여 명의 제자를 배출했다"고 말했다. 이곳 외에도 무속연구소·무속학원·전수소로 문을 열고 지방마다 내려오는 전통 굿을 가르치는 곳이 있는데 월 수강료가 수백만원인 곳도 있다. 한 무속인은 "굿 한 번에 수백만~수천만원을 받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신내림을 받지 않은 사람도 굿판에 뛰어든다"며 "취업이 잘 안 된 무용 전공 학생들이 굿을 배워 조수로 일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무당은 보통 도제식 교육으로 키워진다. '신(神)아버지, 신어머니'로 불리는 선배 무당이 '애동제자'라 불리는 무당을 가르치는데 무당이 되는 의식으로 내림굿을 받게 한다. 내림굿 한 번 받는 비용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수천만원은 기본이다. 내림굿 후에도 "굿이 잘못됐다", "정성이 부족해서 신이 제대로 내려오지 않았다"라며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잦아 신부모와 신자녀가 갈라서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지난 17일 부산 서부경찰서는 타로 점집에서 합숙하던 동료 서모(27)씨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석모(31)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군 제대 후 알 수 없는 이유로 다리를 절게 된 서씨는 가족의 권유로 지난 10월 부산의 한 타로 점집을 찾아 2000만원을 내고 '(신)내림굿'을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동료 석씨는 "운동을 하지 않고 의지가 부족하다"며 서씨를 상습적으로 폭행해 숨지게 했다. '신어머니'로 불리며 "다리를 낫게 해주겠다"던 타로점 업주 이모(여·47)씨는 방조 혐의로 입건됐다. 조성제 소장은 "'사람이 신을 오게 한다'는 내림굿이라는 의식 자체가 정체 불분명한 것"이라며 "수년에 걸쳐 굿을 비롯한 의식을 전수받아야 진정한 무당이 될 수 있는데 돈 때문에 틀어져 '애동고아'가 되는 초보 무당들이 많다"고 말했다.

 

문제가 반복되다 보니 'DIY(Do It Yourself)'로 무당 되는 방법을 소개한 책도 나왔다. 도교와 무속을 연구한 '내림굿의 배신' 저자 채성훈씨는 "우리 민속에 따르면 신을 모셔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분명히 있고, 그 경우 굿이 필요하지만 멀쩡한 사람에게 내림굿을 강요하고 무당이 되어야 한다고 속이는 일도 있다"며 "이미 내림굿 사기를 당한 사람에게 '제대로 된 굿을 해주겠다'며 거듭 돈을 뜯어내거나 자신이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똑같이 제자를 받아 돈을 갈취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서울 강북구에 신당(神堂)을 열고 점을 봐주기 시작한 김유진(34)씨도 독학으로 무당이 된 경우다. 김씨는 회사원, 미용사 등 평범한 일을 하다가 3년 정도 신병(神病·무당이 될 사람이 걸리는 병)을 앓고 난 뒤 무당의 길을 택했다. 김씨는 "몇천만원을 주고 신굿을 받았지만 병이 낫지 않았고, 그 뒤 스스로 기도와 수행을 하면서 점사(占辭·점괘에 나타난 말)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무속이 전통 민속문화로 계승되지 않고 돈을 좇는 직업으로 변질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무당이자 민속학자인 장순범 안동대 연구교수는 "무당은 하나의 직업이기도 하지만 민속문화를 계승하는 의무도 중요하다"며 "최근 민속신앙에 대한 이해 없이 직업적으로 아무 굿이나 배워서 바로 '무당업'을 시작하는 일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미신 꼬리표 어떻게 떼나

 

무당과 역술인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미신'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여전하다. 작년 11월 국민안전처 장관 후보로 내정됐던 박승주 前 여성가족부 차관은 논란 끝에 자진 사퇴했다. 그는 2013년 저서에 "명상하면서 바닷속이나 다른 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경험을 47차례 했다", "전봉준 장군이 나를 찾아와 책을 건넸다"라고 쓴 게 고위공직자 자격에 문제가 됐다.

 

대한경신연합회는 2012년부터 '무속심리 상담사' 자격시험을 시행하고 있다. 경신연합회 이성재 이사장은 "미신으로 치부되는 현실을 극복하고 신뢰받는 무속 신앙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한국역술인협회도 '역학상담사', '작명사자격증' 등 자격시험을 도입했다. 역술인협회 백운산 회장은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기대하는 사람 심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 없어지지 않을 직업"이라면서도 "점을 맹신하는 사람과 이를 악용하는 역술인 모두 자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민속학회장인 이정재 경희대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세속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며 "권위 있는 교단이 없는 무속 신앙이 상대적으로 더 취약해 사건·사고가 잦지만 민속 신앙으로는 분명히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구 기자 jg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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