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 그것이 알고 싶다.

택일 이야기

택일과 제왕절개 수술

일산백송 2013. 10. 22. 17:29

희끗희끗한 머리에 제법 나이가 지긋한 있어 보이는 어르신이 방문해 왔다.
손자의 출산택일을 하고 싶으시단다.
묻지도 않았는데
아드님이 지금 어디에 근무 중이라며 어깨에 잔뜩 힘을 넣는다.
그러면서
공부도 잘하고 출세도 할 수 있고 돈도 많은 그런 손자 사주를 만들어 달란다.
그러면 제왕 절개라도 해서 그 사주에 맞추어 출산을 하게 만들겠다고 하신다.
신생아 택일은 보통 예정일에 맞추어 병원과 협의해서
그 날짜 안에서 좋은 시간을 택하는 것인데
이 어르신처럼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날짜까지 새로 잡아 새 판을 짜달라 하니….
어르신!
팔자는 팔자입니다.
그것은 어르신의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라고 했지만,
본인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가 있다 라며 막무가내이었다.
택일은 이것저것 따지고 살펴야 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있으니까 며칠 걸립니다 라고 정중하게 말씀을 드렸는데도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당장 해 달란다.
윽박 아닌 윽박이다.
돈은 별도로 더 생각해 줄 테니 다른 생각 말고 빨리 해달란다.
그럼 2시간 후에 오세요.
해서
그분의 아드님 사주와 며느님 사주를 분석해 가면서
그 해 그 달에 있어서의 베스트 옵 베스트의 신생아 사주를 뽑아냈고
그걸 건네드리면서 분명하게 이 사주는 가능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아마 그 시간대에는 출생이 안될 거라고 말씀을 드렸더니만
그 어르신은 당당하게도 이후는 내가 책임질게요. 수고 했어요.
그리고는
여기요 라며 내민 상담료에 황당했다.
벽에 걸어 놓은 상담료 표 (협회 지정 금액)보다도 훨씬 못 미치는 작은 액수였다.
별도로 더 생각해 준다는 금액은 아닐지라도 지정 금액은 주셔야 하는데…
손에 받아 쥐고는 잠시 망서리고 있으니
그것만 받아요. 지금 가진 게 그것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어느새 문을 열고 나가신다.
멀어져만 가는 그 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씁씁했다.

그리고는 잊어버리자 했는데
예상대로 며칠 후에 그 어르신은 또 나타나셨다.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의사가 아직 안 된다네….
다시 지어줘요. 다음에 이름도 지으러 올 거니까요.
A/S를 해주어야 할 것 아닌가라는 말에
다시….
분명 다시 오게 될 겁니다.
아냐.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아요.

그리고는 며칠 후에 역시 또 들리셨다.
이번에는 기가 많이 꺾인 듯, 말투도 누그러지고 공손해졌다.
해서 세 번째 택일 안까지 무료로 만들어 드렸다.
이것 역시
그 아이의 사주는 아니라고 봤는데, 그 이후는 나타나질 않으셨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으로
미안해서일까?
아니면 아예 포기를 하고선, 낳는 날짜를 그냥….

예를 들어
부모 사주에 자식이 속을 썩일 것이다 하면 그 자식에게는 그런 사주가 나온다.
그래서 부모의 사주를 보면 어느 정도 자식의 사주도 알 수가 있다.
또 자식의 사주를 보면 부모를 역시 알 수가 있다.
만약 자식 사주에 부모의 덕이 없다 라면
그 부모는 분명 자식에게 덕을 베풀 만한 처지가 못되게 되지요.

팔자는 팔자여.
자기의 사주는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다는 거죠.
좋은 날짜를 잡았더니만, 제왕절개 시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정전이 발생하는가 하면
더 급한 응급 산모가 들어와서 받아온 그 시간을 도저히 지킬 수가 없었다 네요.

몇 년이 지난 이야기이지만
그때 그분을 생각하면 너무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렇게 귀하게 보는 손자라면
그 어르신은 할아버지로서 손자를 위해 덕을 베풀고
그 좋은 영향력이 그 귀한 손자에게 가게 해야 하는 건데….
결론적으로
그런 할아버지에게서 그런 좋은 사주를 가진 손자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런 인연으로 맺어지기는 쉽지가 않을 것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