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우리 딸, 널 위해 싸울게"... 이태원 참사 희생자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
'10·29 이태원 참사'로 딸을 잃은 두 명의 아버지를 뉴스타파 취재진이 만났다. 아버지들은 "얼마나 긴 싸움이 될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딸을 위해 끝까지 진상규명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꿈 많던 20대 청년의 죽음
'이태원 참사' 희생자 송채림 씨는 2002년 8월에 태어났다. 채림 씨의 꿈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서울의 패션스쿨을 찾아가 공부했다. 졸업 후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했고, 직접 옷을 만들었다. 아버지 송진영 씨는 딸 채림 씨가 세상의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길 원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안 잊어버리는 게 초등학교 다닐 때 저한테 했던 얘기에요. 제가 '공부 좀 해야지, 이놈아. 공부 안 하면 어떻게 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하니까 얘가 한단 소리가 '아빠,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현재가 불행하면 안 되잖아. 미래의 행복보다 현재의 행복이 더 중요한 거 아니야?' 그러는 거예요. 초등학생이 저한테 했던 얘기에요. 그 이후로는 얘한테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주관이 확실히 서 있던 딸이었어요.
- 송진영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송채림 씨 아버지
채림 씨는 삼 남매 중 막내였다. 집에서는 늘 귀여운 존재였고 부모에게 솔직했다. 아버지에게 "난 왜 남자친구가 안 생기지" 같은 칭얼거림도 편하게 하는 딸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때가 되면 다 생겨"라고 말해줬다. 아버지에겐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송채림 씨(왼쪽)와 조예진 씨. 참사 당시 채림 씨는 21살, 예진 씨는 25살이었다.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예진 씨는 올해 25살이었다. 예진 씨는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예진 씨의 아버지 조기동 씨는 "이 세상에 부모가 없어지면 너 혼자다, 강하게 커야 된다는 생각으로 외동딸을 좀 강하게 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독립심이 강했어요. 돈을 많이 벌어서 아빠 엄마 호강시켜주겠다고 장담하던 아이였어요"라고 말했다.
예진 씨는 대학에 들어간 뒤 부모에 의존하지 않고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충당했다. 지난 2월 졸업했다. 예진 씨의 꿈은 '돈 많이 버는 부동산 전문가'였다고 한다. 아버지 조기동 씨는 "감정평가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저는 잘 몰랐는데 참 어려운 시험이라고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예진 씨에겐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제주도에 사는 삶을 꿈꿨다. 두 사람은 내년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모든 것이 사라진 2022년 10월 29일
채림 씨의 아버지 송진영 씨는 10월 30일 새벽 1시경 처음 소식을 들었다. 채림 씨와 이태원에 갔던 친구들이 전화로 "채림이가 길에 누워 있다"고 알려줬다.
송진영 씨는 곧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한남동 주민센터와 경찰서, 병원을 돌며 딸의 행방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송진영 씨가 딸을 만난 건 30일 오후 1시쯤, 경기도 송탄의 한 장례식장이었다.
대전에 사는 예진 씨의 아버지 조기동 씨는 이태원 참사 소식을 뉴스 속보로 알았다. 문뜩 이태원에 간다고 했던 딸이 떠올랐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예진 씨는 이태원에 가기 전 부모님 집에 들렀고, 디즈니 만화 '알라딘'에 나오는 자스민 공주 옷을 입고 아빠에게 "옷이 잘 어울려?"라고 말했었다. 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예진 씨의 어머니가 먼저 서울에 올라갔고, 실종 신고를 했다.
서울로 올라갈 채비를 하던 중 조기동 씨는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아내는 "예진이를 찾았어. 운전하지 말고 택시를 타고 와"라고 말했다. 조 씨는 딸이 살아있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조 씨가 도착한 곳은 일산 동국대병원 영안실이었다. 딸의 몸은 이미 차가웠다.
저희 집사람한테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더군요. 일산 동국대병원인가? 왜 거기 있는지도 모르는데, 우리 딸이 왜 거기 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거기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일산으로 갔어요. 제가 일산에 갔더니 병원 응급실이 아니고 장례식장에 있는 영안실로 저를 안내하더군요. 제 딸이 영안실에 너무 춥게 차갑게 누워 있었어요. 이 아빠가, 딸내미가 그렇게 차갑게 죽어가는데 아무것도 옆에서 보탬이 못되고, 손 한번 잡아보지도 못 하고 그렇게 딸내미를 떠나보냈습니다.
- 조기동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예진 씨 아버지
아버지의 세상도 무너졌다
딸이 떠난 뒤, 아버지들의 세상도 무너졌다.
채림 씨의 아버지 송진영 씨는 "지금도 사실 믿기지 않아요. 긴 영화나 드라마를 한 편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드라마가 끝나면 우리 애가 나올 거 같은, '아빠'하고 쫓아내려 올 것 같은...현실감이 없어요. 시도 때도 없이 눈물만 나고,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면 한 10분씩 서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송채림 씨의 아버지 송진영 씨. 채림 씨 방에서 인터뷰했다.예진 씨의 아버지 조기동 씨는 "(딸 남자친구를) 사위라고 생각하고, 양가 부모님 만나 뵙는 날짜만 정하는 그런 단계까지 왔었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 부모님 상견례를 장례식장에서 했습니다. 좋은 자리에서 했어야 했는데, 서로 '죄송하다'는 말 밖에 더 할 말이 없더라고요. 우리 예진이를 참 많이 예뻐해 주시던 분들이셨는데..."라고 말했다.
우리 아내는 너무 속이 상해서 여기(송채림 씨 방)를 못 올라와요. 유족들 단체대화방 있는데 거기도 못 들어가요. 그런데 아까 집에 (아내가 쓴) 메모지가 있길래 봤더니. '채림이 보고 싶어, 한 번만 한 번만. 저 계단 올라오는 발소리 채림이 인 줄 알고 엄마 깜짝 놀랐어. 채림아, 꿈속에라도 한 번만 나와줘'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사실 저를 더 힘들게 한 거는 그거예요. 애를 잃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잖아요. 그 사람이 내 옆에서 울고 있는 게 너무 불쌍하고요. 이런 유족들 심정을 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송진영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송채림 씨 아버지
정부의 무응답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었다. 하지만 정부는 희생자 유가족들의 절규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지만, 공식적인 사과는 아니었다. 예진 씨의 아버지 조기동 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실에서는 사과를 했다고 하지만, '유감을 표명한다' 그건 어디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거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하는 것처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얘기예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게 사과입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을 용서를 바라는지, 그것을 얘기해야 사과입니다. 그 사과를 하기 싫어, 자기 죄를 인정하기 싫어, 그렇게 지금까지 버티는 거겠죠.
- 조기동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예진 씨 아버지
재난 주무장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유가족 명단과 연락처를 몰라 접촉할 수 없다"는 식의 거짓말로 유가족을 할퀴었다. 유가족들이 사퇴 요구를 했지만 묵묵부답이다. 참사 발생에 책임이 있는 윤희근 경찰청장도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윤희근 청장은 지난달 말 시작된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 "현장체포를 원칙으로 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법의 수호자를 자청하고 있다. 이것 역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할퀴고 있다.
송진영 씨와 조기동 씨는 이상민 장관과 윤희근 청장 모두 자리를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송진영 씨는 "이상민 장관이 경찰국 신설하면서 했던 얘기가 저는 지금도 기억나요. ‘치안의 최고 책임자다, 자기가.’ 그런데 이런 사고가 났는데 왜 책임을 안 집니까. 무한책임을 느낀다면서요. 대통령이 얘기하는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잖아요"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예진 씨의 아버지 조기동 씨. 예진 씨의 봉안함이 있는 납골당에서 인터뷰했다."두렵거나 무서울 게 없다"
지난달 28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유가족 협의회' 준비모임을 결성했다. 65명의 유가족이 함께했다. 송진영 씨와 조기동 씨도 준비모임에 참여했다. 두 아버지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바란다고 했다. 그것이 사랑하는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했다. 두 아버지는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 정부가 하는 행동으로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들고요. 그런데 저희는 세상이 무너졌어요. 저희는 그냥 평범하게 살던 시민이에요. 그런데 10월 29일 이후로 인생이 바뀌었어요. 하늘이 무너졌는데 저희한테 아까운 게 뭐가 있겠습니까.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 송진영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송채림 씨 아버지
지난달 28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송채림 씨의 아버지 송진영 씨가 딸 채림 씨가 있는 봉안당을 찾았다. 채림 씨가 평소 좋아했던 샌드위치를 챙겼다.긴 싸움이 되겠죠. 이 정권이 아직 힘이 있는 한 긴 싸움이 될 겁니다. 예상합니다. 그런데 자식 잃은 부모가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자식 잃은 부모, 더 이상 두렵거나 무서울 게 없습니다.
- 조기동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예진 씨 아버지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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