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 그것이 알고 싶다.

운명 이야기

[펌] "과부 이름이네요"... 아주머니의 눈물

일산백송 2019. 6. 6. 07:28

사는이야기
"과부 이름이네요"... 아주머니의 눈물
얼치기 역술인 노릇 그만둔 이유... 몇 개월 공부로 도통할 수 없는 인생사
13.12.04 14:36l최종 업데이트 13.12.04 15:56l이인성(jega38)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생활정보 신문에서 사주 수강생 모집 광고들을 본다. 줄 광고부터 박스 광고까지 참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그 중 눈에 들어오는 광고 문구 하나.

'처음 사주를 접하시는 분 환영-2개월 책임 완성-속성 가능-1:1 개인지도'

그런데 내 상식으로는 이상하다.
완성이라 함은 타인의 사주를 실제 감정할 수 있는 정도를 뜻할 텐데 그 공부 기간이 불과 몇 달이라니.
또 다른 광고 역시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역학보다는 통변술 위주로 강의합니다"라는 문구도 볼 수 있다.
학문적인 이론이나 소양은 따질 일이 아니고 그저 점사를 뽑는 기술 위주로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른 이의 운명을 들여다 보려는 이 엄중한 공부를 불과 몇 달 만에 뚝딱 속성으로 해치울 수 있는 것인지. 그래도 되는 것인지 나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아줌마 이름 한번 풀어볼까... 과부 이름이네"

스물 몇 살 무렵, 나는 어느 날 한 역술 강좌에 참여했다.
전단지를 보고 찾아간 '성명학 연구원'이라는 명패의 사무실에서였다.
"고급 부업하실 분. 심오한 동양철학을 무료로 배우고 돈도 버실 분"이라고 적힌 광고 내용에
주술처럼 이끌려 찾아온 사람은 나 말고도 꽤 여럿 있었다.

개명 건을 받아오면 건당 얼마씩의 수당이 지급되는 그런 일이었다.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사주나 성명학 지식들을 위해 2주 과정의 강좌가 열리는 것이다.
텍스트는 A4 용지 20장 분량의 공식화된 운명감정 매뉴얼이 전부였다.
나는 그 매뉴얼의 공식들을 모조리 외워 버렸고 얼른 써먹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마치 영업사원처럼.

그러던 중 어느 식당에서였다.
같이 강좌를 듣던 아저씨 한 분과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아간 작은 동네 백반집.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개업한 지 얼마 안 되는 집이었다.
김치찌개를 주문한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장사가 앞으로 어떨지 궁금해하지 않을까.

아저씨가 나섰다. 사장 아주머니에게 이름 한 번 풀어 보겠느냐고. 공짜라고.
붙임성 좋은 아저씨가 멍석을 깔았고 외우기 잘하는 내가 재주를 부렸다.
적은 이름에 음양오행을 붙이고, 수리를 달고, 사주에 들어 있는 오행의 개수를 세고.
될 수 있으면 첫마디는 '세게' 던져 기선을 제압하라고 배운 나는 배운 대로 할 생각이었다.
설령 빗나가도 그때는 또 그것대로 임기응변이 준비되어 있었다.

의자를 내 쪽으로 당겨 앉은 아주머니에게 나는 매뉴얼대로 첫마디를 던졌다.

"과부 이름이네요."

그 순간 아주머니의 글썽이는 두 눈.
엄마를 돕겠다고 식당에 나와 있던 내 또래의 아주머니의 딸은 가만히 엄마 손에 자기 손을 얹었다.
사고로 가장을 잃고 몇 푼 안 되는 보상금으로 밥집을 연 모녀였다.

놀라운 적중률에 감탄해야 했을까. 

그러나 고백하건대 나는 그 때 아주머니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과부'라는 단어가 주는 시린 감정의 결들.
꾹꾹 눌러가며 참아왔을 그 예민한 결을 무례하게 건드린 내가 싫었다.
개명 건을 사무실에 접수하고 받아든 수당으로 나는 술을 마셨다.
운명학에 대한 아무런 소신도 없으면서,
공부한 세월도 없으면서 남의 운명에 혀 들이대 구차하게 연명하려하다니.
나는 그날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 아주머니의 눈물 그렁한 눈동자에 자꾸만 어머니가 비쳤다.
비슷한 사연으로 아무 때 아무 곳에서 혼자 글썽이셨을 내 어머니.

사주공부에 입문하는 초학자들의 동기는 다양하다.
단순 호기심이거나, 학문적인 뜻이 있거나, 직업으로 삼으려는 마음이거나,
자신의 직업에 활용하려는 계획이거나 등.
그런데 호기심으로야 잠깐은 만지작거려 볼 수 있겠지만 정말 그 길을 나선다고 할 때에는
적성이 중요하고 걸맞은 성품도 필요하다고 전문 역술인들은 말한다.
기본적인 소양이 필수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단 배우겠다고만 하면 무조건 환영이란다.
무조건이라니.
배우려는 사람이 공부에 자질이 있는지, 기본 성품은 되는지 한 번 헤아려 보는 과정도 없이
묻지마 식의 교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선생이 실력이 있을 리 없고 그런 사람 밑에서 배운 자가 공부에 성취가 있을 리 없다.

한 사람의 운명은 삶 전체, 몇 개월 공부로 다룰 수 없다

사주란 무엇인가? 

넉 사(四) 기둥 주(柱). 네 개의 기둥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태어난 년월일시를 말하는데 태어난 해가 한 개의 기둥이며 태어난 달과 태어난 날, 태어난 시간이 

각각 한 개씩의 기둥이 된다. 그리고 그 각 기둥에는 두 글자씩 배치된다. 

하늘의 기운을 뜻하는 천간 한 글자, 땅의 기운을 뜻하는 지지 한 글자. 


이렇게 네 개의 기둥에 각각 두 글자씩 배치되면 글자 수는 총 여덟 개가 된다. 

즉 팔자[八字]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사주팔자는 그 사람의 삶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일종의 바코드라 해도 좋고 유전자라 해도 좋겠다.


이 공부는 음양오행에 대한 깊은 이해가 먼저되어야 한다. 

첫 단추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부터가 그리 간단치 않다. 

음양 하나만 가지고도 책 한 권이 써질 만큼 그 내용이 깊이 있는 것인데 

남자는 양, 여자는 음, 뭐, 

이 정도 수준의 언급만 하고 지나가더라는 속성과정 경험자의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사주풀이가 일견 매뉴얼화 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전체적인 조합체계는 의외로 방대한 양이어서 외워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운명이란 곧 그 사람의 삶 전체다. 

그 진중한 운명의 무게를 어찌어찌 익힌 잔재주로 만져 보겠다는 심사는 처음부터 잘못된 출발이다. 

단지 몇 개월 공부했다고 해서 사주를 다룰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라고 

원로 역술인들은 입을 모은다. 오랜 세월 뜻있는 대가들에 의해 명맥을 이어온 사주학.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일부 저급한 역술인들 때문에 그 가치가 점점 빛을 잃어가는 것 같다. 


공자는 자신의 명(命)을 알지 못하는 자는 군자가 아니라고 했다. 

사주 공부는 군자가 되기 위한 공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공부를 잔재주로만 덤벼드니 가소로운 일이다. 

섣불리 배워 써먹는 사주풀이 행위는 타인에게 해가 될 수 있으며,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구업의 허물만 쌓여갈 수 있음을 공부에 뜻을 둔 사람이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