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 그것이 알고 싶다.

운명 이야기

[펌] 정약용도 이름을 바꿨다고?

일산백송 2019. 6. 6. 07:37

중도일보
[오복만땅] 정약용도 이름을 바꿨다고?
입력 2018-06-08 21:25 수정 2018-06-08 21:25

정약용
정약용


1762년 경기도 광주군 마현리, 지금은 경기도 양주군 와부 면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 낳는데
그의 아버지는 진주목사(晉州牧使)를 지낸 정재원(丁載遠)이시다.

아버지인 정재원이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서 굶어죽은 사건 임오화변(壬午禍變)에 연루되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낙향을 하여 귀농(歸農)하였을 때 넷째로 아들이 태어나니 이름을 귀농(歸農)이라 지었다.

처음에는 "귀농"이라 불렀으나
위로 형들의 이름이 정약현이고, 정약전이었으므로 정약용으로 이름을 개명했다.
오른쪽 눈썹위에 큰 흉터가 있어서 삼미(三尾) 라고도 많이 불렸으며 삼미자(三尾子) 라고도 하였다.

정약용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학문이 뛰어나고 특히 문장력이 좋으며 일곱 살 때부터 시를 짓고 읊었다.
열 살 무렵에는 그동안에 시를 짓고 글 쓴 작품을 모아서 "삼미집" 이란 서책을 만들었으니
그의 학문적 재주를 알만하다.

영조임금이 세상을 떠나고 정조임금이 왕위에 오르자 정약용의 아버지 정재원이
호조좌랑으로 관직에 복직되니 정약용도 한성(서울)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형인 정약현과 정약전, 정약용 삼형제가 과거시험을 보니 삼형제가 모두 생원 초시에 합격하였다.

성균관에 입학하고 그 뒤로 문과에 급제하여 "초계문신"으로 발탁 되었으며, 규장각(奎章閣)일을 맡아보고 

정조임금에게 중용(中庸)을 강의 했다.

정조임금의 지극한 총애를 받던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으로 주장하며 

체계적인 연구에 몰두하여 지방 관리자들이 지키고 행하여야할 덕목으로 "목민심서(牧民心書)" 저술하였다. 

종두법(種痘法)을 만들어 백성들의 질병치료와 건강까지 살폈다.

정조임금이 세상을 떠나고 순조임금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나이가 너무 어려서 영조임금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니 노론벽파가 득세하여 

천주교를 탄압하고, 정권을 잡은 벽파정권은 권철신, 이승훈, 정약종 등을 처형하기에 이르렀고, 

정약용은 경상도 장기지역으로 귀양을 보내고, 둘째형인 정약종은 전라도의 신지도로 귀양을 보내고도 

불안하였던지 모두 죽이려고 했지만 정약용은 예전의 공적을 인정받아 정약용은 강진으로 다시 유배를 가고,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갔다.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를 가서 전라도 강진에서 집필한 서책이 목민심서 와 경세유포 등 십여 권에 이른다. 목민심서 등 여러 서책이 완성되던 그해에 이태순의 상소로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1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니 고향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며, 

저술과 시작(詩作)으로 말년을 평화롭게 보내다가 75세에 자택에서 세상을 마쳤다.

정약용은 태어나서 처음이름은 귀농(歸農)이었으나 정약용(丁若鏞)으로 개명하였고, 

성년이 되어서 자(字)를 지으니 자는 미용(美鏞) 으로 쓰다가 송보(頌甫)라고도 하였으며, 

호(號)를 지어 사용하였는데 정약용의 호는 다산(茶山)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삼미(三尾), 삼미자(三尾子), 사암(俟菴), 자하(紫霞), 여유당(與猶堂), 문암일인(門巖逸人), 

철마산초(鐵馬山樵)등등 여러 개의 아호(雅號)를 지녔었다.

아암(兒菴) 혜장(惠藏)이라는 학문이 매우 대단한 학승(學僧)이 있었는데 

자신의 높은 학식만 믿고 사람이 매우 거만하고 뻣뻣하여 도무지 남에게 고개 숙일 줄 모르는 위인이었다. 

친분이 있었던 정약용은 그를 위해 700자에 달하는 5언 140구의 길고 긴 시를 써 주었다. 

그중에서 이름과 관련된 몇 구절만 적어본다.

성명고미이(成名固未易) 명성을 얻기가 쉽지 않으나
/처명우난능(處名尤難能) 명성대로 살기는 더욱 어렵네.

명대진일급(名臺進一級) 명성이 한 계단 더 높아지면
/방옥고십층(謗屋高十層) 헐뜯는 소리는 10층으로 높아지고,

색장필의항(色莊必疑亢) 엄숙한 얼굴하면 거만하다 의심하고
/어회기운릉(語?期云陵) 재미있게 말하면 얕본다고 하네.

안둔불기구(眼鈍不記舊) 눈치가 둔해 빨리 못 알아보면
/개위지교긍(皆謂志驕矜) 다들 교만해서 모른척한다 하네.

문명약태산(聞名若泰山) 들리는 명성은 태산처럼 높아도
/핍시다비진(逼視多非眞) 가까이 보면 진실이 아님이 많고,

문명약도올(聞名若??) 들리는 명성은 흉악한 귀신같아도
/서찰환가친(徐察還可親) 천천히 살펴보면 친할 만도 하다네.

찬송대만구(讚誦待萬口) 칭찬은 만 명의 입을 필요로 하고

/훼방유일순(毁謗由一脣) 상처내고 헐뜯음은 한 입술로 말미암네.



6월 13일은 투표하는 날인데 

다산 정약용 선생이 쓰신 목심심서를 한번이라도 진솔한 마음으로 읽어본 사람에게 투표했으면 싶다. 

상대방 후보를 헐뜯고 비방하는 데만 몰두하지 말고 

좋은 정책을 제시하고 말보다는 실천하는 사람에게 투표하고 싶다.


원종문 명인철학원 원장


원종문 명인철학원 원장은 사단법인 한국작명가협회 부회장 겸 대전지부 지부장, 한국동양운명철학인협회 이사, 한국작명가협회 작명시험 출제위원장, 국제뇌교육대학원 성명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세대 명리학 전문과정과 경희대 성명학 전문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이름 전문가'로 활동하며 '한국성명학 총론', '명학신서', '이름과 성공' 등의 저서를 발표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런데

정약용의 귀양도 개명한 이름때문이라면...

(이름 속에 그런 비밀이,,,,)


이 글에서 등장하는

정약용의 아버지인 정재원이 한때 파직된 것도

권철신, 이승훈, 정약종 등을 처형하기에 이르렀다는 것도

다 이름에서 비롯된 겁니다.


결별이나 이혼 그리고 암같은 불치병

또한 요즘 크게 문제시 되곤 하는 정치인이나 저명인들도 

역시 자신의 이름과 무관하지가 않습니다.


선거당락도 그렇구요.

이번 통영 보궐선거나 창원 보궐선거 예측도 역시..... 

일산 백송방식으로 살펴보면.....

 

이처럼 이름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