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피임 교육은 성관계 유도".. 이언주 토론회서 나온 황당 주장들
유성애 입력 2018.12.24. 18:09
[현장] 21일 '교과서 문제점' 토론회.. 이언주 "섹슈얼리티 표현, 동성애 조장한다"
[오마이뉴스 유성애 기자]
▲ 2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 주최, 생명인권학부모연합 주관으로 열린 교과서의 성적지향·젠더·섹슈얼리티·피임 등 교육 문제점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 유성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어른이 보기에도 낯 뜨거운, 너무도 상세한 피임 열 가지 방법 소개 등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학생들이 성관계를 갖도록 유도하는 식의 교과서 내용은
내 자식에게 정말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교과서였다." - 허은정 생명인권학부모연합 대표
"임상적으로 보면 얼마 전까지 동성애나 성 정체성 장애는 병으로 보았다." - 민성길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교과서의 성적지향·젠더·섹슈얼리티·피임 등 교육 문제점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나온 주장들이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이 주최하고, 생명인권학부모연합(아래 생학연)이 주관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의학에서 트랜스젠더는 정신장애로 간주된다"
"교과서에 있는 젠더 관련 내용 일체를 삭제해야 한다" 등 다소 황당한 주장들이 오갔다.
이날 <오마이뉴스>는 헌정기념관에 방문해 두 차례 취재를 시도했으나, 생명인권학부모연합 측 관계자로부터 "(<오마이뉴스>는) 우리가 초대하지 않은 언론사"라는 이유로 출입을 거절당했다. 아래 내용은 토론회 속 발제문에 담긴 문제적인 주장들이다.
[주장①] "피임법 상세히 가르쳐... 관음적 될 수 있다"
▲ 21일 국회 '교과서의 성적지향·젠더·섹슈얼리티·피임 등 교육 문제점 개선을 위한 토론회' 에서는 "피임법을 상세히 가르칠 필요가 없다. 이건 마치 피임만 하면 문제가 없으니 섹스해도 된다고 암시하는 것과 같다"는 식의 주장이 나왔다. 자료집 109쪽.
ⓒ 생명인권학부모연합
생명인권학부모연합은 이날 토론회를 통해 현행 중학교·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보건> <도덕> 등 교과서의 문제가 심각하다며 이를 폐기하거나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교과서 속에 ▲피임방식이 지나치게 자세히 나와 있고 ▲개념이 불분명한 젠더(Gender: 사회문화적 성을 뜻하는 용어)라는 표현이 실려있어 문제라고 주장했다.
"피임법을 상세히 가르치는 건 자칫 관음적으로 될 수 있다고 본다. 피임만 하면 문제가 없으니 섹스해도 된다고 암시하는 것과 같다"(민성길 명예교수)라거나, "피임 교육을 하더라도 실패 가능성이 높으므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잘못된 성윤리만 가르치는 것"(김종신 고교 보건교사)이라는 식이다. 이들은 "한국의 전통적 성윤리인 '남녀칠세부동석(不同席)'을 숙고하고(중략) 혼전순결의 좋은 점을 가르쳐야 한다"라고도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한 청소년 관련 단체 대표는 "그럼 학생들은 정확한 정보를 어디에서 배우나, 스마트폰만 켜도 온갖 정보가 넘치는데 인터넷에서 보라는 건가"라고 반박했다. "피임법은 학생들이 자기방어를 위해 꼭 배워야 할 정보"란 지적이다.
그는 "단순한 정보 제공일 뿐인데, 그걸 '성관계를 권장한다'는 식으로 독해하는 그분들 논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라면서 "학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는 게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주장②] "교과서 속 '젠더' 표현 삭제해야"
토론회 참가자들은 중·고교 교과서 속 '젠더'라는 표현이 문제라며 이를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언주 의원은 자료집 인사말을 통해 "'젠더'는 남녀로 구분되는 성만 고집하지 말고 마음대로 성을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다원주의적 사고가 깔려있다, '섹슈얼리티'는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포함하는 의미로, 동성애를 옹호·조장한다"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토론회 패널들은 "성별에 여자와 남자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다며 허구의 성을 가르치는 현실이 서글프다"(김지연 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연합 상임대표) "젠더는 남녀라는 이분법을 폐지하고 제3의 성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전윤선 미국변호사)라고 언급했다. 전 변호사는 이날 발제를 통해 "현행 교과서에 들어 있는 젠더 관련 내용 일체를 삭제할 것을 교육부에 촉구한다"라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이런 식의 해석을 우려한다. 이세경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장(서울지부)은 "앞으로 사회는 계속 다양해질 텐데, 남녀를 넘어선 모든 시민에 대해 가르치고 이들을 인정하는 건 필요한 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남녀를 가르고 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건 전근대적인 방식"이라며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려면 다양한 사람들을 더 포용하고 그들과 공존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주장③] "의학에서 동성애·트랜스젠더는 질병으로 봤다"
▲ 21일 국회에서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 주최, 생명인권학부모연합 주관으로 열린 '교과서의 성적지향·젠더·섹슈얼리티·피임 등 교육 문제점 개선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내용.
ⓒ 생명인권학부모연합
한편 "의학에서 트랜스젠더는 정신장애로 간주되고 있다"라거나 "임상적으로 보면 얼마 전까지 동성애나 성 정체성 장애는 병으로 보았다"라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민성길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는 발제를 통해 "(동성애에는) 성병은 물론 우울증, 약물남용, 자살시도 등 정신장애가 많다"라면서 동성애를 문제시하는 듯한 견해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종걸 활동가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미국에선 이미 1970년대 초 동성애를 정실진환 목록(진단명)에서 삭제했고, 올해 6월엔 세계보건기구(WHO)가 트랜스젠더의 성 정체성 관련한 항목을 국제 질병 분류 항목에서 모두 삭제하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의 이 같은 발표는 2016년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WHO 11차 개정판 직접보기). 이는 트랜스젠더의 성 정체성을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국성소수자연구회(준)도 당시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을 통해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APA)에 의해 동성애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제외된 지 40년이 지났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홈페이지 보기).
이종걸 활동가는 "저들은 동성애와 에이즈를 바로 연결시켜 '낙인찍기'를 하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을 선동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시민단체 대표는 이언주 의원실이 연 토론회와 관련해 "이들의 최종 결론이, 목표가 뭔지 궁금하다"라며 "자기 자녀들이 눈 감고 귀 막고, 코 막고 아무것도 모른 채 성장하길 바라는 건지, 그게 가능하긴 한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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