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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된다” … 암호화폐 ‘다단계 폭탄’ 재깍재깍

일산백송 2018. 3. 17. 07:05

중앙SUNDAY

[단독] “1억 된다” … 암호화폐 ‘다단계 폭탄’ 재깍재깍

기사입력2018.03.17 오전 12:20

최종수정2018.03.17 오전 4:05

 

형사정책연 김대근 박사 동행

전국서 몰려든 청중 500여 명

강사 설명에 “와~” 웅성웅성

법인도 없이 모집 금액 수천억

사기·유사수신 혐의 수사 착수

 

[SUNDAY 탐사] 비트코인의 그늘, 채굴기 업체 특강 현장 가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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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눈에선 절망이 흘러내렸다.

30년간 청소 일을 하며 두 아들을 홀로 키워 온 김모(61)씨는 암호화폐 채굴기 사기 사건으로 수천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

암호화폐 열풍의 또 다른 단면이었다. [신인섭 기자]

“2015년 10월 1일 친구 한 명을 회사에 소개해 3500달러짜리 한 개 지분에 투자하게 했더니 수수료로 제게 8%, 1.2비트가 나왔어요. 지금 얼마지요?”

 

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한국과학기술회관 강당. 연단에 오른 60대 남성의 말에 500여 명의 청중은 “와~” 하며 웅성거렸다. 이날 비트코인 1개의 가격은 1020만~1050만원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강사가 “2~3년 뒤에 비트코인이 얼마나 갈 것 같으세요”라고 묻자 청중들은 장단 맞추듯 “1억원요”라고 외쳤다.

 

암호화폐 채굴기 다단계 판매업체 ‘비트클럽네트워크’의 특강이 열린 강당 안은 서울·부산·충남 등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특수범죄연구실 김대근 박사와 함께 맨 뒷줄에 서서 지켜보니 청중들의 절반 이상은 여성이었고, 50~60대가 주류였다. 강사 박천곤씨는 자신을 “17년간 이 업계 에서 일하며 민폐를 많이 끼쳤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그룹을 이끌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인 러스 매들린(Russ Madlin, 이하 러스)이 창업해 2014년부터 한국에서 회원을 모집했다는 이 회사는 아이슬란드 등지에서 채굴장을 운영하는 세계 10위권의 암호화폐 채굴업체라고 스스로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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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코인페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암호화폐결제 플랫폼 시장에 진출했으며, ‘클럽코인’이라는 자체 코인이 이 플랫폼에서 주요한 결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영업은 전형적인 다단계 방식이다. ‘빌더→프로빌더→마스터빌더→몬스터빌더→메가몬스터빌더’라는 5단계의 직급으로 조직이 짜여 있다. 채굴기를 사면서 운용을 위탁하면 채굴에 따른 수익을 분배하는 게 핵심 사업이라지만 사람들을 유혹하는 건 새 회원을 유치할 때 지급되는 후원 수당이다. 투자와 수당 지급은 모두 비트코인·이더리움 등으로 이뤄진다.

 

최근 이 회사는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월 이후 회원들은 자신의 계정에서 암호화폐를 출금하는 데 곤란을 겪고 있다. 직급이 메가몬스터빌더라는 홍모씨는 “보상 수단을 비트코인에서 비트코인캐시로 전환하 면서 생긴 일시적 전산장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유력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렉스(Bittrex)는 “3월23일부터 (비트클럽네트워크의) 클럽코인 거래를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그뿐이 아니다. 이 회사는 매출이나 손익을 공개하지 않는다. “지난해 23명이 아이슬란드 채굴장에 다녀왔다”(홍씨)고 말하지만 하위의 회원들은 회사가 홈페이지에 공지하는 수치 등을 보고 채굴이 이뤄지고 있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 시장에 다단계 업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해 7월 시작된 검경의 집중단속으로 확인된 암호화폐 다단계 사기 피해는 이미 총액 5000억원을 넘어섰다. 러스매들린은 지난해 12월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 6000여 명이 모인 행사에서 “11월 매출 2200억원 중 40%가 한국에서 발생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기로 드러나면 피해 규모가 수천억원에 이를 수 있다.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이 회사에 대한 수를 의뢰받은 인천지방경찰청 지능수사대 관계자는 “국내 상위 사업자들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국내에 법인도 없고 다단계 판매업으로 등록한 흔적도 없다.

 

특강을 지켜본 김대근 박사는 “암호화폐 시세 폭락 등으로 인한 이탈을 막기 위한 단합대회 성격 같다”며 “ 회원 모집하고 원금이나 수익을 보장했다면 유사수신규제법 위반을, 채굴의 실체가 없거나 채굴이 형식적 수준이라면 방문판매법 위반이나 사기죄 적용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대검찰청은 다단계 유사수신행위에 대해 범죄단체 조직 혐의를 적용해 중형을 구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테헤란로 주변 강의·모임 공간들에서는 유사한 다단계 업체들의 암호화폐 관련 세미나와 설명회가 거의 매일 열리고 있다. 시한폭탄이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탐사보도팀=임장혁(팀장)·박민제·이유정 기자 deep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