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이슈+] 뿌리 찾아 고국 땅 밟았건만..어느 입양인의 '쓸쓸한 죽음'
김준영 입력 2017.12.28. 18:17
김해 고시원서 10여일 전 발견 /
해외가족 연락 안돼 장례 못 치러 /
4년간 친부모 못 찾고 실의 빠져 /
알코올 중독·각종 만성질환 앓아 /
고국·본국·관련기관 모두 방관만
8살 때 노르웨이에 입양된 얀(45·한국명 채성우). 그는 뿌리를 찾기 위해 4년 전 고국으로 돌아와 전국을 휩쓸고 다녔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됐다. 숨진 지 10여일 만에 발견된 것. 하지만 외국인 신분인 탓에 아직 시신조차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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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경찰 등에 따르며 얀은 지난 21일 김해의 한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검안 결과 10여일 전에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얀의 입양인 삶은 8살 때인 1980년부터 시작됐다. 그는 노르웨이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양부모 슬하에서 청년기까지 보낸 얀은 마흔 한 살이던 2013년 뿌리를 찾겠다며 자신을 버린 모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입양기관과 중앙입양원 등을 통해 어린 시절 기록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김해 인근의 한 보육원에 있다가 입양됐다는 것 외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답답한 나머지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얀은 서울을 떠나 김해 인근의 한 대학에서 모국어를 배우며 친가족의 행방을 더듬어 나갔다. 하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결국 그는 주저 앉아 알코올 중독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우울증은 물론 각종 만성질환까지 얻었다. 지난 4월 병원에서 담석 등으로 진료를 받기도 했다.
얀은 5년 가까이 고시원에 살면서 소란을 피우거나 방세 한 번 밀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근래에는 의욕을 상실해 거의 밖에 나가지 않고 방 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경찰이 살펴본 얀의 방 곳곳은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한 해외입양인은 “얀이 죽으면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얀이 세상을 떠난 지 보름 이상이 지났지만 장례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는 혈육이 없어 노르웨이의 가족이 절차를 진행해야 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서다.
얀의 사례를 관리했던 중앙입양원과 입양을 진행한 홀트아동복지회는 그저 지켜만 볼 뿐이다. 미국에서 추방당한 해외입양인 필립 클레이(한국명 김상필)가 지난 5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애도성명을 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고국과 본국, 관련 기관 모두가 얀의 죽음을 사실상 방관하고 있는 셈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958년부터 지난해까지 노르웨이에 입양된 입양인은 총 6497명이다. 얀처럼 성인이 돼 뿌리를 찾기 위해 모국으로 돌아오는 입양인은 매년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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