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점집'은 남의 이목 신경쓰이지 않는 탓에 호황 역술 번성은 “기독교 복음이 제구실 못한 탓” ▲ 운명을 점쳐준다는 무속인들의 신문광고가 로스엔젤레스에서 발행되는 교포 신문에 넘쳐나고 있다. © 크리스찬투데이 |
|
신년마다 신년 운세를 보려오는 족집게 역술인과 도사는 예약사태가 일어나고. 전화 점술서비스까지 등장하는 등 하이테크 시대의 숨겨진 깊은 영적 공허를 운명론의 환상이 파고들며 새로운 도전으로 위협해 오고 있습니다. 이런 점술이 크리스천의 의식 저변까지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필자가 김해시에서 부흥전도 집회를 인도하면서 담임목사님 처형께서 모기도원 원장에게. 집을 팔기 위해서 예언기도를 받았는데, 서쪽에서 오는 사람하고 집 계약을 해야 아무 탈이 없다는 예언 기도를 받고, 집이 팔리기를 바랐는데 서쪽에서 오는 사람은 없고, 남쪽 북쪽 사람만 와서 집은 정상 값에 팔지 못하고 몇 천만 원의 재산상 손해를 보고 말았다고 불평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필자가 또한 기도원 집회인도 초청을 받고 설교를 마치자 원장께서 은사 집회인 예언기도를 하는데 필자가 역술인 집에 왔는지 무당집에 왔는지 혼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장님 식당하면 좋겠습니까.”.“ 원장님’ 아들 대학교에 합격하겠습니까.” “원장님! 이 처녀와 우리 아들하고 배필입니까.”
역술인을 찾아가지 않아도 예수 무당들이 교회 주변에 많이 있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행위의 뒤에는 결국 무속신앙의 영향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필자는 하나님의 은사를 부인하는 목회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고 현신애 권사님의 기도로 죽음의 늪에서 헤어난 자입니다. 생사의 죽음의 골짜기를 헤어난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한 목회자 중에 한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신앙에 하나님이 보여준 영적인 신비한 체험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도들이 점 집을 드나든다는 것은 미신을 믿는다는 생각 때문에 남의 이목이 신경 쓰이는 일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곳까지 애써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사이버 점집“에서 얼마든지 점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운세”, ”사주”를 검색하면 수 백 개의 사이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한 무속신문에 “광고 시장의 큰손(?)무당”이란 칼럼에서 언제부터 인기 무당들은 광고계의 큰 고객이 되었다. 각 스포츠 신문에다 월간 여성지, 주간지 등에 자기만이 이 시대의 진정한 무당, 족집게 무당이라는 광고가 난립하고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점술 사이트가 제공하는 것을 보면 토정비결을 비롯해 사주 .관상, 궁합. 해몽, 택일 작명 등. 봐주는 사이트가 많다는 것은 네티즌들의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뜻입니다.
이 같은 무속과 관련된 각종 “기사”, “드라마” 등이 일간신문에 버젓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민정서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크리스천들이 현혹되어 “재미로 보고”, “진짜로 보고” 있는 실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특히 정초나 결혼시즌인 봄∙가을, 선거∙입시철이 되면 예외 없이 점집을 찾는 기독교인들이 많다고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점술에 의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을 하는 자나 무당을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신명기18:10-1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신명기 18장에는 8가지 이방의 점술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70년대 이후 한국교회가 급성 장하면서 신앙과 전통문화생활과 이원화를 미처 막지 못하고, 교회 안의 무속적인 요소를 걸러내지 못한 탓”이라고 필자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유승원 나사렛대 교수는 역술이 번성하는 것은 “기독교 복 음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 했습니다.
성경은 시편 37:5절에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해를 점괘에 의지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27절에 “염려한다고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말씀 했습니다. 유해룡 장신대 교수는 “점(占)을 보는 행위는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것보다 우연히 주어지는 행운을 기대하면서 구하는 사행성 심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점술가들이 점괘를 보기 위해서는 신접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신접을 명백히 금하는데(신18:11) 그것은 신접의 대상이 잡신, 즉 타락한 천사, 귀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 성도들이 점괘를 봐준다는 것은 성경적인 의미에서 귀신의 역사에 순복하는 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서재생목사는... 법명이 계향스님이었던 그는 염주를 던지고 성경을 들었다. 지금은 서울대현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C채널 ‘성경이 답이다’, ‘예수무당’ 등에 출연하고, 많은 집필을 통해 무속신앙에 물든 크리스천들을 바른 신앙으로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