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불륜녀 집단 폭행, '조리돌림'의 추억
임상범 기자 입력 : 2015.10.26 15:12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쉰은 원래 일본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던 의사 지망생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시간에 그는 우연히 일본 정부의 홍보용 슬라이드를 보게 됩니다.
당시는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고 슬라이드의 내용은 러시아군에 협조하다 붙잡힌 중국인을
일본군이 조리돌림 끝에 공개처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끔찍한 광경을 수많은 중국인들이 무표정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루쉰은 동족인 중국인들의 그 표정에서 봉건의 굴레에 사로잡힌 채 이성이 마비된 무기력함을 읽었습니다. “사람의 병든 몸을 치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병든 정신을 치료하는 것이구나!”
그 길로 의사의 길을 접고 아시아병자로 전락한 중국 민족의 계몽과 반봉건 혁명의 길로 투신했고
신문화 운동의 개척자가 됩니다.
우리말로 하면 ‘조리돌림’으로 불리는 ‘유가시중(遊街示衆)’은 중국 사회의 오랜 봉건 악습이었습니다.
죄 지은 사람을 목에 죄목을 적은 나무판을 건 채 거리를 돌리고 여러 사람들이 현장에서
구타와 욕설 등으로 집단 응징을 하는 방식인데 법과 증거에 의한 처벌이 아니다보니
억울한 피해자와 군중심리에 의한 과도한 폭력이 양산되기 마련입니다.
특히나 정치적인 의도나 음모가 개입될 경우엔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1966년부터 10년 간 중국 대륙을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문화혁명은
홍위병들에 의한 조리돌림으로 시종일관 그 무시무시한 동력이 유지됐습니다.
직전까지 국가주석이었던 최고위 정치인은 물론이고 어제까지 자신을 가르치던 스승이며
심지어는 내 부모가 공공의 적으로 몰려 군중 앞에서 집단 폭력의 희생물이 되어도
무리에 섞여 지켜만 봤습니다.
도덕과 이성은 마비됐고 정신은 황폐화됐습니다.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기계적인 폭력에 동참해야 했고
저항은 거대한 침묵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 혼자 때린 것도 아니었으니 그 사람의 불행은 눈을 감아버리면 돼! 나만 아니면 돼!”
모두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문혁이 끝나고 개혁 개방과 함께 세상이 바뀌었지만
조림돌림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적인 차원에서 악용되기 일쑤였습니다.
우리 남편과 불륜을 저질렀다고, 우리 집 창고에서 쌀을 훔쳤다고 목소리 큰 누군가가 한바탕 동을 뜨고
그의 친한 부류들이 동조하면 어느새 누군가는 조림돌림의 먹잇감이 됩니다.
꾸역꾸역 모여든 구경꾼들은 자초지종도 모른 채 수군댈 뿐입니다.
불륜녀로 지목된 마을 처녀는 강제로 옷을 벗기고 고발자와 그의 친구들의 주먹과 발에 흠씬 두들겨 맞고
피를 흘린 채 마을 공터에 버려집니다.
좀 도둑으로 몰린 이웃집 좀 모자란 청년도 영문도 모른 채 강으로 끌려가 물고문을 당해
이승과 저승을 오갑니다. 불안하고 불편하지만 어느새 일상의 일부가 된 집단 폭력의 중독성은 강했습니다.
서방 국가들과 인권단체들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에 중국 당국이 2010년대 들어 마지못해
조리돌림 금지 방안을 내놨습니다.
관련 조례안에는 사형이 확정돼 형 집행을 앞두고 있는 사형수 등을 트럭 등에 태워 거리를 돌며
그 죄목과 판결 내용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조리돌림'은 물론 기타 인격모독 행위, 사체 모욕행위 등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사체 모욕행위'에는 무단 장기적출 행위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 기준엔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적인 인권보장이 14억 인구가 모여 사는 중국 사회에서는
불과 얼마 전에야 이뤄지게 된 겁니다.
하지만 ‘조리돌림의 추억’은 어느새 ‘추억’이 됐는 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조리돌림
며칠 전 영국의 한 언론에 '중국 불륜녀 집단구타'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소개됐습니다.
대낮에 길 한복판에 나체 상태인 한 여성이 축 늘어져 있고 그 주위를 살기등등한 아줌마들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 뒤로 남녀노소 수십 명의 사람들이 물끄러미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보기 안쓰러웠던 지 한 중년 여성이 온몸에 멍이 든 채 실신한 이 여성에게 외투를 덮어주자
그녀에게 발길질이 날아옵니다. 지난달에도 호텔 복도에서 한 여성이 여러 명의 여성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는 모습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중국 중앙 정부는 근절되지 않는 조리돌림에 대해 곤혹스러워하고 있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정부나 공안기관들 조차 범죄 예방의 효과가 적지 않다며 방관하고 있습니다.
조림돌림이 대중에게 던지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불특정 다수의 가해자 그 자신도 언제고 피해자가 될 있다는 묵언의 교훈일 겁니다.
사형수들에 대한 공개처형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까지 계속돼 왔고
여전히 사형수의 집행일 행적이 방송 뉴스에 생중계되는 중국의 현실입니다.
100년 전 루쉰의 외침이 무색할 따름입니다.
출처 :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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