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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판사'로 망가진 사법 신뢰, 대법원은 회복할 의지 있나

일산백송 2015. 2. 21. 08:26

'댓글판사'로 망가진 사법 신뢰, 대법원은 회복할 의지 있나
[서초동살롱<52>]대법원, 댓글판사 사표수리·재발방지 논의無…사법부 전체의 재판 고려했어야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김미애 기자, 이태성 기자, 황재하 기자, 한정수 기자 |입력 : 2015.02.21 05:30


인터넷에 '막말 댓글'을 단 수원지법 A부장판사의 사직서가 제출된지 하루만에 수리됐습니다. 

사표가 수리되기 이틀 전 대법원 관계자는 본지에 

"이번 사안을 면밀히 조사해 징계 등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충분한 진상조사도 진행하지 않은 채 사표 수리로 상황을 그대로 끝내버렸습니다.

◇"댓글 '익명성' 보장돼야" vs "법관윤리강령에 '공정성' 명시돼있어"

법관징계법은 "법관이 그 품위를 손상하거나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린 경우"를 징계 사유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법관윤리강령도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분명히 하고 있고, 공정성을 강조하며 교육이나 학술 또는 정확한 보도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체적 사건에 관해 공개적으로 논평하거나 의견을 표명하지 말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A판사가 작성한 댓글들을 보면 법관의 공정성과 품위는 크게 해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댓글을 통해 전라도 지역, 2008년 촛불집회 참가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한 '친노' 계열 정치인 

등을 비난해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A판사는 최근 명동 '사채왕'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해 징계를 받은 최민호 판사와 관련한 기사에 "전북 부안…"이라는 댓글을 달아 간접적으로 해당 지역을 비하했습니다. 또 삼성 직원의 '삼성 특검' 관련 증언에 관해서는 "너도 김용철 변호사처럼 뒤통수 호남 출신인가?"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후보 매수 혐의로 기소된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이 3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는 기사엔 "(판사가) 전북 정읍 출신답게 눈치 잘 보고 매우 정치적인 판결을 했네요"라고 썼습니다.

이 판사는 노 전대통령에 대해 "투신의 제왕"이라고 언급하는가 하면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도끼로 XXX을 쪼개버려야 한다" "이런 거 보면 박통, 전통 시절에 물고문, 전기고문했던 게 역시 좋았던 듯" "촛불폭도들도 그때 다 때려죽였어야 했는데 안타깝다" 등의 댓글도 남겼습니다.

이런 댓글에도 불구하고 A판사의 행동이 법관윤리강령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판사라는 직업보다 개인으로서의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익명으로 작성된 댓글의 작성자가 드러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해당 판사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시각이 우세했습니다. 

이런 판사가 법대에 서서 판결을 내리는 것은 큰 문제라는 겁니다. 

한 판사는 "법관 윤리강령에 '법관은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며 

"A판사는 이를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 변호사는 "판사라는 직업은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다"며 

"이런 댓글을 달고 싶었다면 판사를 해서는 안됐다"고 꼬집었습니다.

◇훼손된 사법 신뢰, 어떻게 회복할건가

대법원은 "해당 법관이 작성한 편향되고 부적절한 익명의 댓글이 언론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노출돼 법관이 종전에 맡았던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마저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법관의 직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에 더 큰 손상을 가져온다"고 사표수리 배경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A판사의 재판 뿐만이 아니라 전체 사법부가 담당한 전체 재판의 신뢰를 고려했어야 합니다. 이제 재판을 받는 당사자들은 판사의 정치적 성향, 출신 지역 등으로 이익 혹은 불이익을 받았다는 의심을 하게 될 공산이 큽니다.

이번 사건으로 사법부의 신뢰는 바닥까지 추락했습니다. 

이 사건이 터지기 직전까지 법원은 사채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수원지법 최민호 판사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여기에 지난해 9월에는 임용된 지 5개월 된 대구지법 유모 판사가 성추행 혐의로 입건돼 논란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인 것입니다.

대법원의 사표수리는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만을 자초했습니다. 추가로 재발 방지 대책 등에 대한 논의도 없었습니다. A판사와 같은 사람이 없다는, 같은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는 보장을 대법원은 해줄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법원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어디까지 떨어져 있는지 체감하지 못하는 걸까요.

여담으로 댓글판사 사건과 관련해 2011년 한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게시판에 남긴 말이 떠오릅니다. 당시는 이정렬 전 부장판사와 서울북부지법 서기호 전 판사가 페이스북, 트위터에 `꼼수면' `가카새끼 짬뽕' `쫄면 시켰다가는 가카의 빅엿까지' 등 대통령 비하 패러디물 등을 올려 논란이 일어났던 때입니다.

그 판사는 "법관은 재판과정이라는 공적 영역 외에 일반 사적 영역에서도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법관 개인의 표현의 자유도 존중돼야 하지만 사법부 전체의 명예와 신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A판사는 2009년부터 댓글을 달았다고 하죠. 2011년 한 판사의 진심어린 글을 A판사가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