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작
사별,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닌
마인드닥터의원 한 치 호
달리듯 다가온 2014 청마의 해는 어떤 시간들로 채워질까 기대감으로 두근거렸다.
연초의 겨울은 순식간에 봄으로 이어졌다.
화사하게 피어난 매화, 벚꽃 등 봄꽃을 사진기에 담는 일은 생활 속 즐거움이었다.
유난히 더워서인지 꽃들은 순서도 없이 앞 다투어 피워 예년과 다른 풍경이 그려진 봄이었다.
그런 봄날의 4월16일, 470여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세월호가 침몰하였다.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삼백여명의 생명들이 고스란히 배에 갇혀 주검이 되어 버렸다. 선원들이나 해양경찰관들 중 누구 하나 제대로 이들을 구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선사의 무리한 운영과 선원들의 운항미숙으로 인해 발생한 숨이 막히는 비통한 참사였다.
생생하게 전하는 텔레비전 방송을 보며 우리들은 정신적 외상을 입고 우울의 늪에 빠졌다.
어이없는 미숙한 구조와 국민들의 정서와 괴리된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들은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비참한 심정이 되었다.
여린 꽃잎 같은 아이들에게 참으로 미안했다.
나 또한 팽목항의 시퍼런 바다를 보며 살아서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렸지만
아이들은 참혹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도 시신으로나마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부모들은 천진난만하게 수학여행을 간다며 나갔던 내 아이가 왜 이렇게 죽음을 당해야 하는지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부모들이 통곡하는 팽목항은 오랫동안 비탄에 잠겨있다.
출근길에 보이는 봄꽃들이 이제는 애처로워 보였다.
배가 기울어 바다로 처박고 있는데도 선실 안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한마디에 구조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단원고 아이들은 천사가 되었으리라.
그래서 ‘슬퍼하지 마세요. 이미 천 개의 바람이 되어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꽃들에 머무는
밝은 햇살이 되었으니 제발 날 위해 울지 마세요.’ 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아이들만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애통하고 미안하다.
도저히 아물기 힘든 깊은 상처가 될 것이다.
‘아물기 힘들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자식 잃은 어머니를 치료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 호 사고가 일어난 그 즈음의
나에게 우울증으로 치료받기 시작한 40대 여성 A씨가 있었다.
1년 전 아이를 잃은 이후 상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고 있었다.
극심한 우울증의 상태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은둔하며 혼자 살고 있다.
특히 자책감이 심한 것은 자신 때문에 아들이 자살을 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게 된 A씨는 18살 아들과 남게 되었고 남편은 다른 여성과 재혼을 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아들은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우울하고 불안한 모습을 내내 지켜보아야 했다.
형제도 없이 어릴 때부터 잦은 부모의 다툼을 보며 자란 아이였다.
말수가 더욱 줄어들며 감정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던 아이는 자살을 하고 말았다.
‘엄마에게 짐이 되지 않겠으니 행복하게 사세요.’ 쪽지 하나 달랑 남긴 채였다.
“아이를 제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아이 앞에서 너무 힘들어하며 죽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갔어요.” A씨가 말했다.
그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가 했던 말과 모습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고 자꾸 그 기억들을 되짚어보며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이가 간지 육 개월이 넘었지만 단 하루도 쉽게 잠이 든 적이 없었다.
친정식구들의 걱정과 잔소리도 듣기 싫어 피하고 모든 사람들을 보기가 두려워져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아이를 따라 죽고 싶은데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므로 참고 있었다.
“어머니 돌아가시면 홀가분하게 아들을 따라 갈 것 같아요” A씨는 쓸쓸하게 말한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를 치료하는 것은 다른 어떤 환자분들보다 어렵고 힘이 든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마치 어제의 사별처럼 극도의 슬픔으로 우울증이 호전되지 않는다.
생의 낙이 사라지고 허무만이 들어차 초췌한 모습만 남아있다.
너무도 안타까워 중립적인 치료자의 자세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공감보다는 같은 부모로서 동감의 마음이 앞서면서 안타깝고 답답하였다.
‘어찌 삶에 의욕이 있겠어요. 없는 게 당연하죠. 숨 쉬는 그 순간순간이 절망으로 가득 차겠지요.
아이를 먼저 보내고 부모가 삶의 목표나 의욕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제가 뭘 도울 수 있을까요’
나는 속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자식을 죽음의 길로 떠나보낸 어머니는 따라 죽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라도 살아 있어야 한다.
아이의 이름으로 좋은 일을 하고 아이의 못다 한 삶을 부모로서 대신해 열심히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다독이며 약물치료를 병행하여 열심히 치료하였다.
잠은 조금 자게 되었지만 생의 의욕은 전혀 피어오르지 않았고 A씨는 퀭한 얼굴로 매주 나를 방문하였다.
그 모습을 보는 게 힘이 들어 나는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었고
정작 안 오면 걱정이 되어 초조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무기력해져 있을 때 세월 호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서 A씨의 상태는 악화되었다. 울면서 이런 말도 했다.
“그 부모들의 마음은 공감해요. 아이들도 너무 불쌍해요.
그래도 갑자기 당한 사고여서 같이 있던 친구들과 함께 저 세상으로 갔으니
그나마 고통을 나눌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 아이는 혼자 그런 결정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요.”
그 순간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8살 어린 남자아이의 고통이 새삼 더 아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이 엄마에게 화가 났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때까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는지.
그러면서 깨달음 같이 생각 하나 꽂혀왔다.
자식을 잃은 이 엄마에게 나는 처음부터 화가 나고 있었다는 것을.
책망을 절제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날까 조심하고 있었었구나.
그러면 치료적 공감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치료가 잘 될 리가 없었다.
A씨가 진료실을 나간 뒤 자책감이 나를 떠다밀 듯 감쌌다.
마음을 추스르고 그녀가 얼마나 괴로울지 헤아렸다.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소중한 한 아들의 어머니였던 그 여인을.
몹시도 혼란스럽고 잔인한 봄이었다.
A씨로부터 시작된 사별의 고통은 세월호의 충격으로 이어졌다.
부모는 죽으면 앞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다 묻는다고 했던가.
자식을 잃는다는 것은 부모형제의 죽음보다 훨씬 더 지독한 슬픔이어서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엄마들은 자식을 잃기 전의 그 사람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아니,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엄마의 마음에 살아서 삶을 같이 하게 될 것이므로...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A씨는 조금 나아져 자신에게 매일 문자를 보내는 친구를 이제는 피하지 않고 만나며 조금씩 웃기도 한다.
지금도 A씨 안에는 아이의 얼굴과 아이가 했던 말들이 녹화영상처럼 생생하게 되풀이 되고 있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은 여전히 가슴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자주 절에 가서 108배를 하며 아이를 위해 빌고 있다.
나는 죄책감이 짓눌러도 자신을 위해 사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
아이가 원할 것이다, 좀 웃어도 되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된다는 말들을 했던 것 같다.
태양이 수은주를 올리며 태풍이 지나가기도 했던 여름의 팽목항에는
아직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의 간절함 속에 100일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 호 특별법 제정을 놓고 갈등과 진통이 더욱 심해져갔다.
이제 편안하게 산책을 할 정도로 나아지던 그녀는 가을이 오자 얼굴이 굳어지며 어두워져갔다.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먹지 못하며 나락으로 빠졌다.
“아들의 첫 기일이 다가와요. 절에 가기 힘들어지고 납골당의 아들사진을 보는 게 두려워요.
보고 싶은데 다시 돌아오는 발길이 힘들어서 갈 자신이 없어요.
형부가 폐암 말기라고 듣고 제가 대신 암에 걸린다면 얼마나 좋을 까 간절하게 바랬어요.
어머니가 계셔 스스로 죽지는 못하니까요“
처음의 상태로 돌아간 듯 하여 나는 허탈감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치료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기제사를 피하지 않고 다녀온 후 A씨는 다시 안정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그 얼굴이 잊혀질 까 두렵다고 한다.
A씨도 아들이 잊혀질 까 두려웠지만 잊지 못했기에 괴로운 것이다.
이제 하루를 시작할 때 아들의 사진을 보며 힘을 낸다는 A씨를 보며
자식과의 사별은 잊어야 한다고 부탁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깨달았다.
그렇다.
세월호도 우리가 빨리 덮고 가야할 하나의 참사에 불과한 게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그 앞에 머무르며 바다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들어야 한다.
우리 안에서 끓어오르는 회한과 자괴감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제대로 삶을 피워보지 못하고 떠나야했던 아이들을 추모하고 사랑하는 방법은 그들의 죽음이 덧없지 않고
의미가 있었음을 밝혀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 아이들이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는지를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면 남겨진 사람들은 고통스럽더라도
자기를 더욱 사랑해야 한다.
자아Ego가 아닌 자기Self이다.
자아팽창이 아니고 자신의 확장이다.
A씨와 세월호 부모들은 아이의 존재를 마음에 같이 담아야 하기에 이전보다 자기Self는 더욱 커지고
성숙해질 것이다.
애도와 우울의 시간에서 이런 삶으로 건너가려면 엄청난 노력과 성찰이 필요할 테지만
보다 더 넓고 깊은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로고테라피를 창시한 정신의학자인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어떤 최악의 조건이라도 대처하는 능력이 있으며 시련과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자유와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A씨는 아들을 잃고 자학과 애통함을 선택하여 왔다.
이제는 다른 태도를 선택할 것임을 그녀의 밝아지고 단단해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직 돌덩이가 그 가슴에 얹혀 있지만 그녀를 믿는다.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바짝 마른 입술에 부은 얼굴로 찾아오는 이 분이 정말 고맙다.
꿈에 나타난 아들의 이야기를 하며 웃고 우는 그녀를 보며 같이 웃다가 애잔해지기도 한다.
이제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기에 일을 해보려 한다는 조심스런 결심에 박수를 보낸다.
자식을 잃고 매순간 살아있음에 괴로워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부모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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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울산 마인드닥터의원 한치호 원장이 쓴
2015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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