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예배 교인은 25명… 44년 만에 12만명, “제가 한 건 없어, 늘 균형감각 유지했죠”
보수·진보 안 가리고 60년간 목회
영남 출신인데 DJ 전 대통령 지지
국내 유일 민간교도소 문 열게 돼
‘명성은파포럼’서 나눔·섬김 돌아봐
“제가 한 건 없어요. 다 하나님이 시킨 거지요.”
김삼환(79) 명성교회 원로목사가 목회 60주년을 맞았다.
그는 19세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도사의 길을 걸었다. 피어선신학교 등 대학 생활도 동시에 시작했다.
이후 긴 세월 동안 오롯이 목회자의 길만 걸었다.
올해 설립 44주년인 명성교회를 세계적인 교회로 일군 김 목사를 지난 11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명성교회에서 만났다.
설교 때는 청산유수지만 인터뷰 때는 뜻밖에 계면쩍은 모습이다.
사실 자신의 얘기를 한다는 게, 그것도 자랑 섞어 한다는 게, 정치인이 아닌 다음에야 쉽지 않은 일이다.
먼저 소감을 물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란다. 단답형이다. 뭘 물어도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는 법이 없다.
그가 명성교회를 세운 건 1980년이다.
“25명이 37평짜리 건물에서 예배를 드린 게 시초”다.
그 뒤 5년 만에 등록 교인이 1만명으로 늘었고, 지금은 무려 12만명에 달한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규모다.
그의 장점은 뭘까. 본인도, 주변 사람도 균형 감각을 꼽았다.
김 목사는 뜻밖에 이 대목에서 말을 길게 이었다.
이쪽 아니면 저쪽 편을 들어야 하는 세상에서 그는 늘 균형을 주장했다.
그래서 보수에선 진보 편이라 뺨 맞고 진보에선 보수 편이라 욕먹기 일쑤였다. 장학사업이 그 예다. 그는 전남 목포, 전북 군산 등 호남 지역에 줄줄이 장학관을 세웠다.
학비가 부족한 지역 학생들을 무료로 거둬 재워 주고 먹여 줬다. 그는 영남(경북 영양) 출신이다.
당장 쓴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그는 호남과 영남이 같이 발전해야 한다고 믿었고, 믿는 걸 실천했다.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민’ 것도 비슷하다.
당시 영남 사람으로서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그는 옳다고 믿는 걸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
그 결실이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민간교도소인 경기 여주 소망교도소다.
당시 DJ는 죄수들의 재범률이 높은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김 목사와 상의했다고 한다.
김 목사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운영하는 민간교도소라는 의견을 냈고, DJ의 지원에 힘입어 여러 기독교 교단이 참여한 소망교도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명성교회는 12일 ‘명성은파포럼 1회’ 행사를 열었다. 은파(恩波)는 김 목사의 호다.
제목에서 보듯 김 목사의 나눔과 섬김의 뒤안길을 되돌아보는 행사다. 포럼은 교육·교정·보건의료·사회 등 4개 세션으로 나눠 진행됐다. 세션마다 발표자와 평가자를 따로 뒀다. 쏠림을 막고 최대한 공정을 기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날 행사는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됐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현재 하남시장, 김선규 호반그룹 회장,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 등 정재계, 종교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손원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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