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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이야기

일산 신도시 실태.. 겉모습과 달리 안은 주저앉고 물 줄줄

일산백송 2022. 9. 25. 00:19

일산 신도시 실태.. 겉모습과 달리 안은 주저앉고 물 줄줄

신성철입력 2022. 9. 24. 11:01
 
1기 신도시 노후화 실태 전수 조사: 일산 편
깔끔한 외관..실상은 누수 천지에 주차 지옥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교통 대란도 지역 숙제
 
1기 신도시 재정비가 뜨거운 감자입니다.
 
정부는 내실 있는 재정비를 위해 계획을 세우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하루빨리 계획을 잡아 순차적으로라도 재정비에 들어가야 한다고 재촉합니다.
 
혹시 재건축 호재를 어서 누리고 싶은 걸까요?
아니면 노후화된 집에서 더는 살 수 없다는 호소인 걸까요?
 
‘재건축 촉구’ 피켓만으로는 알 수 없는 실태를 전하기 위해
1기 신도시 5곳 전부를 주민과 함께 각각 다녀봤습니다.
 
평일 낮 일산 신도시 아파트 단지의 풍경은 깔끔하고 평화로웠지만, 속은 곪아 있었습니다.

커다란 호수공원을 중심으로 양옆에 발달한 상권과 반듯한 도로는 도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는 인상을 줬습니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백송마을 5단지 아파트는 깔끔하게 페인트칠 된 모습이었고, 출입과 분리수거, 청소 등 관리도 잘 되고 있었습니다. 

일산서구의 후곡마을 4단지 아파트도 외관은 백송 5단지에 비해서는 낡아 보였으나, 전반적으로 잘 관리된 모습이어서 살기 불편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주민과 만나 세대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실상을 전해 들어보니 이는 겉모습에 불과했습니다.

백송 5단지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는 먼저 아파트 건물 1층에 마련한 사무실을 보여줬습니다.

안쪽을 보니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처럼 천장이 내려앉았고 이를 나무 기둥이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주민이 실거주 중이라는 가구에서도 천장이 둥그렇게 내려앉고 창틀이 뒤틀려 문이 닫히지 않는 모습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누수와 주차난으로 삶의 질 “지옥 같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두 아파트 주민들이 공통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는 누수와 주차였습니다.

백송 5단지에서 직접 들어가 본 두 가구에서 누수가 남긴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한 집을 살펴보니 내부는 깔끔하게 재단장된 데 반해 베란다는 누수로 천장 페인트가 흉측하게 벗겨져 있었고 시커먼 곰팡이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노년의 한 여성이 사는 다른 집 역시 정갈하게 관리된 상태였지만, 베란다 천장이 벗겨진 것은 마찬가지였고, 물이 샐 때마다 닦아내느라 시커멓게 찌든 걸레가 눈에 띄었습니다.

신소원 백송 5단지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 감사는 “그나마 상태 좋은 가구를 보여준 것”이라며 “창피하다고 보여주지 않거나 연락이 안 닿아 못 보여준 곳이 많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후곡 4단지도 사정은 비슷했는데, 1개동이 누수 문제로 수천만원을 들여 녹슨 난방 배관을 통째로 떼어내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각각 0.57대(백송 5단지), 0.85대(후곡 4단지)에 불과한 가구당 주차 대수도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저녁 퇴근 시간이 되면 ‘전쟁터’로 변한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입니다.

백송 5단지의 저녁 지상 주차장 모습을 사진으로 확인하니, 이중 주차는 물론이고 인도까지 점령한 상태였습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도 몇몇 차량이 이중 주차 상태 그대로 정차 중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신 감사는 “일산은 도시 인프라가 잘 구축된 곳이지만 단지 내에서는 지옥 같은 생활을 하는 게 사실”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일산 ‘베드타운’ 벗어나는 게 가장 큰 숙제

 

일산 신도시 전체가 품고 있는 문제는 또 있습니다.

관련 연구와 설문에선 ‘지역 내 일자리가 부족’과 ‘교통 불편’이 지목됐습니다.

국토연구원이 2020년 11월 발표한 ‘수도권 신도시 정책의 평가 및 향후 발전 방향’ 연구 보고서는 2016년 기준 일산의 자족지수가 저조한 수준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자족지수가 낮다는 건 지역 안에서 통행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지역민이 외부 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가는 비중이 높다는 걸 나타냅니다.

대다수 주민이 서울 등 지역 바깥으로 출·퇴근을 하다 보니 교통 불편도 큰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실제 경기연구원이 지난 3월∼4월 일산 거주 113세대에게 지역 개선사항을 설문한 결과 ‘시외버스 노선 확대와 간선도로 간 교통흐름 개선을 통한 도시 간 연결성 강화’가 56.6%로 가장 많이 꼽혔습니다.

신 감사는 “아침에 출근할 때 앉아서 가기 위해 출근 반대 방향으로 3∼4정거장 거슬러 올라가 3호선 종점인 대화역으로 가는 이들도 있다”며 “집 근처에서 타면 2시간을 선 채 가야 하는 탓”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아울러 “대중교통 편이 열악해 입주민들끼리 역까지 셔틀버스를 마련해 움직이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진재근 백송 5단지 재건축 추진준비위원장은 “기업 유치가 되고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 주민들이 멀리 출·퇴근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했습니다.

글·영상=신성철 기자 s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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