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과 '단둘이 회식', 만취해 넘어져 사망…'산재' 인정될까?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정희)는 A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장의비를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 지난 6월28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한 지자체의 시설관리공단에 2019년 입사한 청소경비직 말단 직원이었다. 그는 2020년 10월22일 저녁 5시30분쯤 직장상사 B부장과 회식했다. B부장은 직원 56명을 관리하는 책임자였다.
B부장은 당초 자신과 A씨를 비롯해 총 5명이 참석하는 회식을 계획했다. 그런데 다른 직원들은 약속된 날짜가 다가오자 모두 개인 사정을 이유로 '부장님께 죄송하니 혼자라도 대표로 만나라'며 A씨만 술자리로 보냈다.
A씨는 평소 주량이 소주 3병인 B부장과 약 2시간30분 동안 술을 마시고 만취했다. A씨는 회식하는 동안 B부장에게 개인적인 애로사항과 청소장비·청소구역 등 동료들과 느낀 불편사항을 말했다.
B부장은 회식을 마친 뒤 저녁 8시 무렵 A씨를 자택 빌라 1층 현관 앞까지 데려다줬다. 하지만 A씨의 아내는 남편이 자정이 넘도록 귀가하지 않아 집 주변을 찾아나서야 했다.
A씨는 집 밖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며 구토하는 모습으로 발견된 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5달여 뒤 숨졌다. 밝혀진 병명은 외상성 뇌출혈이었다.
대법원은 사업주 주관·지시로 열린 회식에서 과음으로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 대해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사건 당시 회식이 이같은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A씨 아내의 유족급여·장의비 지급신청을 거절했다.
한편 B부장은 사건 당시 A씨와 개인적 친분이 없었고, 다른 직원들의 불참 사실은 A씨를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고 진술했다. 또 평소 직원과 단둘이 회식할 경우 업무추진비 부정사용으로 의심받을 것을 우려해 법인카드를 쓰지 않았고, 사건 당일도 사비를 지출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두 사람의 직급 차이 등을 이유로 "단순히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이뤄진 회식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회식 중 대화에 "업무적인 불편사항에 대한 얘기가 포함돼 있었다"며 "A씨는 직원들을 대표해 회식에 참석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B부장이 사비로 회식비용을 결제했다거나 A씨가 일부 금액을 부담한 사실만으로는 회식이 사적인 모임으로 전환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공단 측의 처분을 취소했다.
공단 측은 지난달 20일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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