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아들, 학폭으로 투신 후..대기업 다니던 아버지가 사표내고 한 일
김소정 기자 입력 2022. 05. 06. 05:52 수정 2022. 05. 06. 05:551995년 6월 8일. 대기업 임원이었던 김종기씨는 베이징 출장 중 아내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여보, 대현이가 죽었어..”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김씨의 아들 대현(당시 고1·17세)군은 이날 방과 후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5층에서 몸을 던졌다. 당시 대현군은 1층에 주차돼 있던 자동차에 떨어져 살았지만, 대현군은 아픈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라 다시 투신했다.
학교폭력으로 1995년 6월 8일 세상을 떠난 고(故) 김대현군.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왜 우리 대현이가 몸을 두 번이나 던져 어린 나이에 삶을 마감했나 영문도 모르고 있었다. 너무 원통하고 내 자신이 한심했다. 아들을 돌보지 못하고 회사에 몰입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2022월 4월 22일 ‘유 퀴즈 온 더 블럭’
김씨는 아들의 학폭 피해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대현군 삐삐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문자가 몇 달 동안 이어졌다고. 김씨는 학폭 가해자들을 찾아가 ‘왜 그랬냐’고 따졌다. 벌벌 떠는 그들 모습에 김씨는 측은함이 느껴져 복수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아들의 죽음은 김씨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대현군의 사연이 신문에 대서특필되면서 엄청난 반향이 일어났다. ‘내 딸, 아들도 당했다’는 전화가 쏟아진 것. 김씨는 학폭 피해 학생 부모 중 분야별로 다섯 명을 모아 시민단체 ‘학원 폭력 예방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을 결성했다.
고(故) 김대현군의 아버지인 김종기 푸른나무재단 이사장/푸른나무재단막상 시민단체는 만들었지만, 어떻게 피해 학생들을 도와주고 상담해줘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그래서 자비로 법인을 만들어 전문가들을 채용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지금의 ‘청소년 폭력 예방 재단’(푸른나무재단)이다. 현재 김씨의 직함은 푸른나무재단 명예이사장이다.
그러나 당시 사회는 ‘학교 폭력’이라는 용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단명도 당초 ‘학교 폭력 예방 재단’이라고 신청했으나, 담당 공무원이 “학교 문제가 아니라 몇몇 불량학생 문제에 불과하다”며 ‘학교’를 ‘청소년’으로 고쳐 신고했다고 한다. 학교도 교육부도 ‘학폭’을 외면했다. 김 이사장이 담당 학폭 문제로 교육청을 찾아가면, 직원들은 만나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김종기 푸른나무재단 명예이사장/tvN '유 퀴즈 온 더 블럭'그럼에도 학폭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학폭 관련 특별법이 필요하다 해서, 1년 동안 서울역 등에서 시민 47만명에게 서명을 받아 국회에 특별법 제정 청원을 했다. 2004년 각고의 노력 끝에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직원 5명으로 시작한 푸른나무재단은 2022년 현재 전국 11개 지부에서 300여명이 일하고 있다. 학폭 피해 학생들을 상담해주고, 이들이 학교를 떠나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 대현군의 이름을 딴 ‘대현장학회’에서 학교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있다.
20년 넘게 ‘학폭 예방 운동’이라는 외길을 걸어온 김 이사장은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그는 “침묵이 없으면 폭력도 없으며, 희망은 도움에서 시작된다”면서 “학교폭력 예방·근절에 국민 모두 동행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 성시경, 22년째 ‘학폭 예방 홍보대사’ 활동하는 이유
푸른나무재단에는 많은 스타들이 ‘홍보대사’로 참여하고 있다. 그 중 21년 넘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가수도 있다. 바로 성시경이다.
성시경은 대현군과 생전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다. 김 이사장은 지난달 6일에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성시경은) 아들과 정말 친했다. 같은 동네 살아 우리 집에 수없이 와서 같이 시험공부도 했다. 명절 때도 모자 푹 쓰고 ‘소주 한잔하시죠’라며 찾아온다”고 말했다.
'푸른나무재단' 홍보대사인 가수 성시경/MBC '라디오 스타', 푸른나무재단 홈페이지김 이사장의 방송을 본 성시경도 지난 4일 연예계 활동 중 처음으로 방송에서 대현군을 언급했다. 그는 “제일 친한 친구였다. 학폭으로 친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친구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고 학교폭력 예방 재단에 뛰어드셨다. 어쩌면 누군가는 해줘야 했던 노력이었는데 아버님이 그걸 해주신 거다. 실제로 친구들이랑 모여서 친구 생일날 아버님을 찾아뵙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랬는데 어느 순간 저는 사실 너무 괴롭더라. 잘 잊고 이겨내고 지내시다가 커가는 자식 친구들이 찾아오면 마음이 힘들지 않냐. 최근에는 못 찾아뵙다가 (김 이사장의 방송을 보고) 친구들과 연락을 했다. 5월 내에 찾아뵐 거다. 어버님의 노력에 죄송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과 대현군, 성시경의 인연이 공개된 후 성시경이 푸른나무재단 20주년 행사 때 읽은 축사가 재조명됐다.
“벌써 20년이 지난 기억이지만, 대현이는 똑똑하고 감성적이고 끼가 많고 운동하다가 다쳐도 멀쩡하고 그랬어요. 내가 사랑하고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 저와 친구들에게는 가장 처음 있는 일이었고 충격이 너무 컸어요. 하지만 제 친구 대현이로 인해 시작된 이 일들로 심각하고 마음 아픈 일이 훨씬 덜 일어났다고 믿기에 이번 재단의 20주년부터는 축하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전국 학교 폭력 상담 전화/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조선일보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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