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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자 학력란, '최고경영자 과정'을 '경영대학원 수료'로 썼다면?

일산백송 2022. 3. 9. 09:11

후보자 학력란, '최고경영자 과정'을 '경영대학원 수료'로 썼다면?

성시호 기자, 유동주 기자 입력 2022. 03. 09. 09:00 
[theL] '1심과 2심 판단 갈렸던 2020년 정선군체육회 첫 민선회장 선거..대법원 "학력 거짓 기재하면 선거무효에 해당"
= 강원도 영월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제53회 강원도민체육대회 개막식에서 정선군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2018.6.15/뉴스1


강원도 정선군의 체육회장 선거에서 후보자가 제출한 허위학력 때문에 벌어진 법정 다툼에서 대법원이 원심 판단을 뒤집고 선거를 무효화해야 한다는 판결을 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정선군체육회를 상대로 제기된 선거무효확인소송에서 '이유가 없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항소심 판결을 2월17일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대법원은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의 학력에 대해 "경력에 속하는 주요사항 중 하나"라며 "후보자의 자질과 적격성을 판단하여 적절한 투표권을 행사하는 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다.

사건의 발단은 2020년 2월18일 치러진 정선군체육회의 첫 민선회장 선거였다. 이날 55명이 투표한 결과 각각 11표, 15표를 얻은 낙선자 나관규, 이재식씨는 최상철씨가 29표를 얻어 당선되자 같은해 3월13일 춘천지법 영월지원에 선거무효확인소송을 냈다.

앞서 최씨는 선거에 출마하며 후보등록신청서의 학력란에 'OO중학교 졸업 / OO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라고 적은 바 있다.

원고 측인 나씨와 이씨는 최씨가 △정규학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OO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는데도 후보자 최종학력란에 '경영대학원 수료'로 기재했고 △설연휴 무렵 선거인들에게 곶감세트를 보낸 점을 들어 선거규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정선군체육회의 선거관리규정은 △후보자 등록서류에서 중대한 거짓이 발견되면 후보자 등록을 취소할 수 있고 △선거 60일 전부터 후보자나 출마의향이 있는 사람의 기부·선물행위를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심 "선거 무효로 할 만한 중대사항"…선거 무효
영월지원의 1심 재판부는 선거를 무효화한다는 판결을 2020년 8월27일 선고했다.

앞서 최씨의 후보자등록신청서와 이력서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대로 선거를 진행한 정선군체육회는 최씨가 'OO중학교 졸업' 바로 옆에 'OO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를 기재했다는 점을 들어 "이를 보는 선거인단이 경영대학원 정규과정이 아닌 최고경영자과정임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나씨·이씨 측에 맞섰다. 정규 고등학교와 대학교 졸업 학력이 기재되지 않았으니 리를 본 선거인단이 '경영대학원 수료'라는 문구를 정규과정이 아닌 것으로 당연히 이해했으리란 주장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군체육회장이 "행정·인사·예산 등 (체육회) 업무 전반에 관여하게 되므로 선거인들에게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전달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장이 겸임해 오는 등 상당한 청렴성·도덕성이 요구되는 직책"이라고 봤다.

한편 재판부는 정선군체육회가 후보자등록신청서를 통해 성명·생년월일·주소·직업·학력·경력을 제출받고 선거 때 이 내용을 공개한 점에 대해서는 "후보자의 능력이나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내용이 한정되어 있어 이 기재가 정확하지 않다면 선거에서의 공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최씨의 최종학력 기재가 거짓에 해당하고, 선거를 무효로 할만한 중대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선거인들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비난가능성이 높은 행위로 봄이 상당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2심 "공직선거 법리 그대로 적용할 수 없어"…원심 파기
반면 서울고등법원의 2심 재판부는 선거를 무효로 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로 1심 판결을 2021년 5월7일 파기한 바 있다.

2심 재판부는 정선군체육회에 대해 "2019년 정선군으로부터 법정운영비로 약 3억3400만원의 보조를 받는 등 공익적 성격이 강한 단체"로 평가하면서도 전국 단위의 대한체육회와 달리 지방체육회는 민법상 '사단법인'인 '사적 자치단체'이므로 공직선거를 전제로 한 법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고 봤다.

또 최씨의 학력이 거짓으로 작성된 사항임을 인정하면서도 △학력을 체육회장 직책수행에서 반드시 중요한 요소로 보기는 어려운 점 △55명에 불과한 선거인들이 후보자들의 능력·성향·활동이력·성품 등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에 비춰 허위로 기재된 학력이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항소심에서는 선거인 49명이 최씨의 학력기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확인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아울러 2심 재판부는 △나씨와 이씨의 득표수를 합해도 최씨의 득표수가 많아 "설령 최씨가 학력을 사실대로 기재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후보자가 당선될 가능성이 있었는지는 상당한 의문"이라고 판시했다.
대법원 "학력 거짓기재 허용하면 공정한 판단 못하게 되는 위험"…다시 선거무효
결국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겨졌고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사건의 쟁점이 된 최씨의 학력에 대해 "경력에 속하는 주요사항 중 하나"라며 선거권자가 후보자의 자질과 적격성을 판단하여 적절한 투표권을 행사하는 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므로, 후보자의 학력에 대하여 선거권자에게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봤다.

또 "'OO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하였다'는 표현은 정규학력으로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이해되는 것이지 대학원이 비정규학력과정으로 개설한 다양한 교육과정 중 하나를 이수하였다는 의미로 사용되거나 이해되지는 않는다"며 "정규과정과 비정규과정은 교육내용은 물론 입학자격이나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못박았다.

아울러 대법원은 "후보자가 후보자등록신청서 등에 최종학력을 거짓으로 기재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선거권자가 후보자의 자질과 적격성을 과대평가함으로써 투표에 대한 공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는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며 서울고법의 2심 판결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전국 총 245곳에 달하는 시·도 및 시군구 지방체육회는 정선군과 마찬가지로 2020년 선거를 치러 민선 체육회장을 선출한 바 있다. 과거 지방자치단체장이 지방체육회장을 겸직했지만 정치와 체육을 분리한다는 취지로 국민체육진흥법이 2019년 개정됐다.

체육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이다. 다만 지방체육회의 예산집행과 사무처장 등의 채용 등에 관여할 권한이 주어지고,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는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성시호 기자 shsung@mt.co.kr,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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