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직후 '반전두환' 역쿠데타 움직임" 제보자·전문 최초 공개
미 5.18 관련 비밀해제 문서에서 드러나... 미국은 한국군 내 분열을 12.12 쿠데타보다 더 우려
21.09.16 10:06l최종 업데이트 21.09.16 12:40l
▲ 미 카터 대통령 기록관이 추가 비밀해제한 5.18관련 문서. "이범준 장군"이란 자가 미 대사관에 역쿠데타 정보를 제보한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 외교부제공
12.12 직후 한국군 내부에서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 반대하는 '역쿠데타'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외교부가 최근 미국 카터대통령 기록관으로부터 전달받은 5.18민주화운동 관련 비밀해제 문서 사본들을 16일 공개함으로써 밝혀졌다.
전두환 신군부가 12.12쿠데타에 성공하고 권력 장악을 진행하고 있던 지난 1980년 2월 1일 주한 미 대사관은 국무부 본부에 한 장의 전문을 타전한다.
'이범준 장군(General Rhee Bomb June)'이라는 자로부터 한국군 내부 반 전두환 음모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이다. 전두환 세력을 반대하는 역쿠데타 움직임을 한국 장성이 미국 측에 제보한 것이다. 미국 측이 역쿠데타를 막아달라는 것인지, 지지해달라는 것인지에 대해선 더 이상의 언급이 없다.
그러나 미 대사관 측은 이 전문에서 한국군 내 분열이 12.12사태보다 더 큰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대사관 측은 "제보자인 '이범준'에게 미 정부는 12.12사태 주모자들의 권력 확장과 민간정부 장악에 반대하는 것과 동일하게 12.12사태를 되돌리려는 군 내부의 움직임 또한 반대한다는 강한 입장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최규하 대통령에게 상기 음모 관련 정보 및 미 측이 양측에 대해 강하게 경고했다는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니 상부 승인을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5.18진상규명위원회 측은 "1980년 초 역쿠데타 음모는 잘 알려져있으나 이와 관련된 전문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범준 장군'의 신분 파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범준 장군은 12.12 당시 국방부 방위산업차관보를 지냈던 이범준 중장으로 보이나 지난 2007년 이미 사망해 직접 확인할 수 없게 됐다. 이 중장은 80년에 전역하고 81년 민정당에 입당해 출신지인 강릉지역에서 11대, 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88년 2월에는 교통부장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광주민주화운동 한창인 5월 21일 미 대사관 전문]
"현 상황에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이 현명함"
공개된 문서들에서는 5.18 당시 긴박했던 군부의 움직임과 전두환의 권력 장악, 그리고 무기력했던 미국 측의 대응을 엿볼 수 있다.
80년 5월 8일 미국 국가안보위원회(NSC)가 작성한 메모랜덤에서는 "15일경 서울에서 학생-정부간 심각한 충돌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전두환은 이미 2~3개의 공수여단을 서울로 이동시켰다"고 기술했다.
5.18진상규명위는 "이 메모랜덤이 공수부대 이동의 실질적 명령권자가 전두환인 것으로 지목하고 있으며, 이는 전두환이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음을 미국이 인정한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미 대사관 측은 광주민주화운동이 한창 진행중인 5월 21일 전문에서는 "본인(당시 글라이스틴 대사로 보임)이 기존 보냈던 평가와 비교해 법질서를 수립,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광주 상황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으며, 이에는 지역갈등 문제 또한 깊게 연관돼있어 수습이 된 후에도 서울 등 타 지방으로 상황이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광주민주화운동이 막바지로 치닫던 5월 26일 NSC 메모랜덤에서는 "전두환이 점차 한국 군사지도자로서의 입지를 굳혀가려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광주에서는 전두환이 문제의 중심이 돼있으며, 광주 유혈사태로 인해 전두환의 권력이 위협받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기술했다.
이 전문은 이어 "전두환 주변의 군 장성들도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기는 하나 (전두환에 반해서) 행동할 용기도 방법도 없다"고 전했다.
또 "전두환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조만간 올 것이며 우리의 결정이 전두환의 입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은 "다만 현 상황에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이 현명함"이라고 적어, 미국 역시 당시 전두환의 권력 장악을 그대로 인정하는 스탠스였음이 드러났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난 7월 1일 NSC 메모랜덤은 전두환 군부의 무자비한 진압과 많은 시민들의 희생을 의식한 듯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우리가 전두환의 권력장악에 대해 진지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두환에게 강조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메모랜덤은 "다만 미국은 전두환의 권력 장악 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실효적 수단이 없으며 전두환도 이를 알고 있다"고 적고 있어 다시 한번 미국 측의 무력함을 드러냈다.
"5.18의 역사적 시대적 배경 이해하는 데 큰 도움"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은 신규로 비밀해제된 206페이지 및 이미 비밀해제 됐으나 디지털화 작업 미완으로 그간 미국 측이 공유하지 못했던 문서 576페이지 등 모두 882페이지다.
이 문서들에 대해 5.18진상규명위원회는 "모두 미 국무부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문서들로서 실질적인 발포책임자나 군사작전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 진상규명과 직접 관련된 내용은 없지만, 5.18의 역사적,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미국 측은 지난 2020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관련 문서 43건을 비밀해제 했다. 이어 올해에도 지난 5월 14건, 6월 21건을 추가 해제했다. 외교부는 이로써 우리 측이 비밀해제 요청한 미 국무부 문서 80건 가운데 78건이 해제됐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번에 비밀해제된 문서들을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16일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 인계하고 기록관 웹사이트에 공개할 예정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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