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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이야기

"딸과 손녀는 상주도 못되고, 영정도 못드나요?"

일산백송 2021. 9. 6. 16:00

"딸과 손녀는 상주도 못되고, 영정도 못드나요?"

민정혜 기자 입력 2021. 09. 06. 11:20 수정 2021. 09. 06. 11:23 

 

■ 서울시 ‘바꿔야할 의례문화 시민 에세이’ 공개…개선 캠페인

아들없어 큰언니가 상주라하니
“조카라도 계시면 데리고 오라”
딸을 사위에 넘겨주는 결혼식 등
남성 중심적 예식문화도 꼬집어

 

“장례식장에서 부고를 작성하러 ‘아드님’이 오라고 했는데 우린 딸만 넷이라 제가 가겠다고 하니

‘사위님’을 보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자매는 모두 결혼을 하지 않아 사위가 없다고 재차 말하니

‘요즘 그런 집들이 생겨서 자신들도 곤란하다’고 하더군요.

상조회사 직원 역시 상주를 찾았는데 아들도, 사위도 없어 큰언니가 상주를 할 거라고 하자

‘조카라도 계시면 그분이 서시는 게 모양이 좋습니다’라고 말했어요.”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김모(40) 씨가 서울시의 ‘이제는 바꿔야 할 의례문화-시민에세이 공모전’에 보낸 사연이다.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는 지난 5~6월 진행한 공모전에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결혼식·장례식 문화와 관련한 시민들의 다양한 경험담이 접수됐다고 6일 밝혔다.

마포구에 사는 김모(72) 씨는 딸의 결혼식을 떠올리며

“아버지로서 딸아이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순간이 벅차기는 했지만,

딸은 ‘내가 신랑 쪽에 물건처럼 넘겨지는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라며

“돌이켜 생각하니 신랑과 신부 모두 성인인데 친정아버지가 사위에게 딸의 손을 건네주는 건

남성 중심 가족 문화에 기반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딸은 자신의 의지로 결혼을 ‘하는’ 것이지 ‘시집을 보내는’ 대상이 아니다”라는 게 김 씨가 내린 결론이었다.

할머니와 누구보다 가까웠던 맏손녀였지만 여성이란 이유로 장례식 내내 배제당한 사연도 소개됐다.

종로구에 사는 양모(33) 씨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삼촌과 아빠가 사진은 손주가 드는 거라며

남동생에게 영정사진을 들라고 하셨어요”라며

“동생은 저를 보며 ‘누나도 있는데…’라고 말했지만, 삼촌과 아빠는 제 쪽을 보지도 않으셨죠”라고 설명했다.

양 씨는 “사실 할머니 영정사진은 제가 들고 싶었어요”라며

“몇 걸음 걷지 않는 별거 아닌 일일 수 있는데, 손주가 들어야 한다면 할머니와 가장 오래 함께했고

가장 많은 추억이 있는 제가 제일 어울리지 않나 생각했어요”라고 밝혔다.

성평등활동지원센터는 이날부터 공모전 수상작을 재구성한 스토리 카드 뉴스를 발행하는 온라인 캠페인을 연다.

시민들이 온라인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도록 댓글 이벤트도 진행한다.

심사를 통해 재치 댓글상, 감동 댓글상, 참가상을 선정해 소정의 상품을 지급할 예정이다.

캠페인은 성평등활동지원센터 홈페이지에서 참여할 수 있다.

공모전 선정작은 9월 말 ‘우수 사례집’으로 발간된다.

민정혜 기자 leaf@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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