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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후 찾아온 정신적 공황, 석달간 집밖에도 못나가"

일산백송 2014. 10. 3. 11:06

"은퇴후 찾아온 정신적 공황, 석달간 집밖에도 못나가"
머니투데이 | 김유진 기자 | 입력 2014.10.03 05:30

[막연한 '치킨집 창업' 극빈층 전락도…정신적·경제적으로 준비된 은퇴해야]

국내 한 대기업에서 38년간 근무하고 꽤 높은 자리에 있다가 올해 초 은퇴한 김호원(가명)씨.
그는 은퇴한 뒤 3개월 동안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내밀지 못했다.
평소 아내에게 "인생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는 순간에는 항상 내리막길을 생각해야 한다"고
설교해 오던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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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걸어가는 노인/ 사진=뉴스1

그러나 정작 은퇴를 하고 나니
아직 일을 할 수 있는 본인을 내친 회사에 대한 분노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후배들에게도 배신감을 느꼈다.
불황의 시기, 불황을 모르도록 회사를 이끌어왔다는 공이 삶의 훈장이었던 지난 세월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벅차오르는데 현실에는 본인의 자리가 없었다.

"한 회사에서 수십년을 보내면서 일이 곧 내 삶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은퇴하고 보니 그게 아닌거지. 이런 생각만 반복하다 딱 죽겠구나 싶었어요."

전문가들은 김씨처럼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 공황상태에 빠진다고 말했다.
이 시기를 잘 견뎌내고 분노가 아닌 건강한 상태로 마음을 바꿔야
인생의 새로운 장막을 멋지게 시작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헌수 시니어노동조합 위원장도
"멀쩡한 직장에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며 살다가 갑자기 퇴직을 하게 되면 공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았든 가질 수 있는 일자리라고는 청소나 경비 등 단순 노동뿐이니
은퇴자들은 냉혹한 현실에 충격에 빠지고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동준 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수석 컨설턴트는
"퇴직자들, 특히 임원으로 가기 직전에 짤린 퇴직자들은 본인이 가장 빛나는 순간에 짤렸다는 생각에
회사에 대한 분노가 가득하다"며
"예를 들어 본인이 젊은 시절 100억짜리 프로젝트를 따냈다든지 하는 생각에
회사에 엄청난 기여를 한 본인이 짤렸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높은 본인에 대한 기대와 그렇지 않은 현실을 수용해야 한다"며
"단순 노동을 하기 싫다는 이유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퇴직금을 다 부어 자영업을 시작했다가
무경험, 노하우 부족 등으로 망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이런 건강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노년 은퇴자들의 무엇보다도 가장 큰 걱정은 단연 경제적인 문제다.
은퇴 후 모아놓은 돈으로는 평생을 살기 힘들다는 판단에 직장을 구해보지만 마땅치 않고,
모아놓은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차렸다가 망해버린다.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높은 노동강도로 일하면서 은퇴 후에는 가장 많은 노인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양금승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 소장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녀에 수입의 절반 이상을 사용할 정도로 너무 많이 투자하고,
또 한창 벌 나이에는 펑펑 쓰는 등 과소비성향이 강한 경향이 있다"며
"공적연금체계가 노후 보장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젊은 시절 저축해 놓은 돈도 없으니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컨설턴트는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공적연금을 확대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재 국가 상황 속에서
경제생활을 유지하려면 '눈높이를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선 현실적으로 회사에서 짤리고 다른 직장에 들어가면 그동안의 경력이 다 무의미해지고
입사 시점의 무경력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그래야 이전 받던 연봉의 절반이 안 되는 돈을 받을 수밖에 없는 노년 퇴직자의 현실을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베이비부머 은퇴자는 넘쳐나지만 대기업에는 이 은퇴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없고,
일반 중소기업에도 토대가 많지 않다"며
"일자리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봉급이나 정규직 여부 등을 가리지 말고
최대한 빨리 재취업을 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취업 기간이 1년이 넘어가면 받을 수 있는 연봉과 취업 가능성이 뚝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노후대비를 할 시간이 아직 남아있는 젊은이들에게는 '저축을 해야 한다'고 간곡하게 조언했다.
김 컨설턴트는 "설문조사를 해 보면 퇴직자의 70% 정도가 '노후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고
답을 한다"며
"사적 연금도 만들어 놓아야 하고 저축도 꾸준히 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회사가 나를 평생 책임질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퇴직 이후의 삶을 계획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김유진기자 yooji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