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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야기

[전자적시점] '원조 TV 왕국' 일본은 어쩌다 망했나

일산백송 2021. 4. 1. 15:17

[전자적시점] '원조 TV 왕국' 일본은 어쩌다 망했나

이한듬 기자 입력 2021. 04. 01. 04:33 

 

브라운관 왕좌에서 LCD 전환 시기 놓쳐 나락으로

일본 도쿄시내에 위치한 파나소닉 매장. / 사진=로이터

 

한때 TV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소니·파나소닉·샤프 등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 기업의 TV가 세계인의 안방을 차지한 풍경은 흔했다.

하지만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TV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한국에 1위 자리를 내준 지 오래이며 중국과 대만의 거센 추격에도 밀려 한 자릿수의 초라한 점유율을 지키는 게 고작이다. 브라운관 TV로 30년 동안 왕좌를 지켰던 일본은 어쩌다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

 

잘 나가던 일본 TV의 몰락


 

일본 가전업체는 아날로그 시대에 전자제품 혁신의 선두주자로 꼽혔다. 대표적인 예가 소니다. 1979년 세계 최초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으로 유명세를 떨친 소니는 이보다 10년 앞선 1969년 ‘트리니트론 TV’로 전 세계 TV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트리니트론 TV는 당시 일반 브라운관 TV보다 6배나 선명해 출시와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소니를 글로벌 TV 시장 1위로 끌어올렸다. 이후 소니는 30여년 동안 전 세계 TV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입지를 지켰다. 일본 TV 제품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도 상승하며 파나소닉과 샤프 등도 덩달아 인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일본 TV의 인기는 2000년대 들어 흔들리게 된다. 브라운관 시대가 저물고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와 LCD(액정표시장치)로 대변되는 평판 TV 시대가 열리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산 TV가 일본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LCD TV의 포문을 연 것은 일본기업 샤프다. 샤프는 브라운관 TV가 보편적이던 1988년 세계 최초의 LCD TV를 선보이며 새로운 전기를 열었다. 하지만 이를 대중화하는 데 실패했다. 당시 기술적인 문제로 대형화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 이 한계를 깨뜨린 것이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2004년 당시 세계 최대 크기인 46인치 LCD TV를 공개하며 LCD TV의 대형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했다.

이후 TV 시장의 판도가 급격하게 변했다. 2005년까지 왕좌를 지켰던 소니는 2006년 삼성전자에 1위 자리를 내줬고 2009년에는 LG전자에 밀리며 순위가 추락했다. 파나소닉·도시바·샤프 등 다른 일본 기업도 덩달아 입지가 축소됐고 결국 글로벌 TV 시장의 주도권은 한국으로 넘어왔다.

당시 한국 기업은 LCD·LED(발광다이오드)·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으로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통해 ‘평생 가전’으로 불리던 TV의 혁신주기를 10년에서 2~3년으로 크게 단축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일본은 미래를 준비하는 대신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미 LCD TV로 TV 시장의 대세가 변했음에도 소니는 기존 브라운관 기술 개선에만 집착하다 전환 시기를 놓쳤다. 파나소닉은 시장의 대세가 LCD로 기울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PDP 투자에만 열을 올리다 실패를 맛봤다.

 

명가 재건 꿈꾸지만 현실은…


 

이에 대해 당시 미·일 관계 전문지 ‘오리엔탈 이코노미스트’의 리처드 카츠 편집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을 통해 “일본 가전 기업은 돈을 잃으면서도 잃은 돈을 만회할 때까지 판을 떠나지 못하는 도박꾼 같다”고 꼬집은 바 있다.

일본인의 취향에만 맞춘 제품 개발 전략도 실패 요인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나 LG전자는 글로벌 각지에 연구거점을 두고 지역별 TV 사용 환경과 선호도 및 디자인 취향 등을 고려해 판매 지역별로 특화된 맞춤형 제품을 개발한다.

반면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은 우선 일본인의 취향과 요구에 맞게 제품을 개발한 후 남는 것을 해외에 판매하는 정책 고수했고 결과적으로 세계화에 실패했다.

일본 TV의 입지는 2010년대 들어 더욱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가별 디스플레이 점유율은 2008년 ▲한국 29% ▲일본 41%에서 2011년 ▲한국 37.6% ▲일본 33.5%로 처음 역전됐다. 지난해에는 한국이 36.8%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한 반면 일본은 겨우 3.8%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오히려 중국이 LCD를 기반으로 빠르게 입지를 확대하며 지난해 기준 33.8%의 점유율로 2위를 차지했다.

일본 기업도 큰 타격을 입었다. 소니는 LCD TV 적기 전환에 실패해 전자 사업 부문의 부진이 심화되면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 동안 5차례 적자를 냈다. 파나소닉도 2011~2012년에만 20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냈고 샤프는 대만으로 팔리는 수모를 겪었다.

일본 기업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꼽히는 OLED 투자를 통해 TV 명가 재건을 꿈꾸고 있다. 2015년 1월 일본 정부 주도로 민·관 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와 재팬디스플레이(JDI)를 비롯해 소니와 파나소닉 등이 합작해 ‘JOLED’를 설립하고 OLED 패널 생산과 제조기술을 라이센싱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기업과 기술격차가 있어 경쟁력을 갖추기까진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전 세계에서 TV용 대형 OLED 패널을 생산하는 업체는 한국의 LG디스플레이가 유일하다. 일본 기업도 OLED TV를 생산하기 위해 LG디스플레이의 패널을 납품받고 있다.

이한듬 기자 mumfor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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