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 그것이 알고 싶다.

여행 이야기

[스크랩] 네덜란드에서 온 이방인의 심플한 대한민국 유랑기

일산백송 2014. 9. 30. 10:56
Live Simply #3 “This is Life”
http://media.daum.net/v/20140929110119754

출처 :  [미디어다음] 여행 
글쓴이 : 바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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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 온 이방인의 심플한 대한민국 유랑기
바퀴 | 바퀴에디터 | 입력 2014.09.29 11:01 | 수정 2014.09.29 11:05
한국에 정착한 이래 다양한 모습을 느끼고 경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일정에 서울이란 도시를 벗어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더 이상 미루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평소 생각에 따라 심플하게 대한민국 방방곡곡으로 떠났다. 
인천과 강원도 양양에 이어 이번에는 오이도와 대부도다.

*욘 스카켄라드(Jorn Schakenraad)는 스스로를 '크리에이티브 큐리어스 트래블러(Creative Curious Traveler)'라 칭하는 네덜란드 태생 디자이너다. 더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새로운 사람과 환경에 도전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에 정착해 느끼는 다양한 삶을 작품으로 옮기고 있다.

누군가가 물었다. 한국에는 좋은 산도 많은데 왜 굳이 바다로만 향하냐고. 내 대답은 심플하다. 
바다가 좋으므로. 어릴 적부터 물과 떨어지지 않았으며, 나이가 들어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에도 
도시나 산보다는 바다가 있는 곳으로 향한 적이 많았다. 
다음 번에도 바다로 갈 거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예스'다.

서울 인근 대부도라면 캠핑은 물론 바다도 볼 수 있을 거란 얘기를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패니어에 짐을 꾸렸다. 며칠째 계속 흐리던 날씨마저 맑았다. 페달을 밟는 다리가 가벼웠다. 한강 자전거도로를 시작으로 안양천, 목감천, 국도를 지났다. 
3시간 반 정도 지났으려나, 멀찌감치 오이도를 알리는 빨간 등대가 보였다.

오이도는 독특한 인상을 주는 곳이다. 
섬이지만 섬 같지 않고(아마 간척공사 때문이리라) 드넓은 갯벌을 가운데 두고 저 멀리 '고스트 시티'로 
명명했던 인천 송도 신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화려한 색감과 대담한 타이포, 다양한 사이즈의 간판이 붙은 음식점들이 몰려있는 거리는 '섬은 휴식'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과는 딴판이었다. 적잖은 실망감이 몰려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 저곳을 둘러봤지만, 실제로 사용됐던 해안경비정이 전시된 곳 외에는 별 소득이 없었다.

내가 한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왔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이 기쁜듯했다. 
개관한 지 얼마 안된 듯 해안경비정 내부는 깨끗했다. 갑판 위 기관총 앞에 서서 먼 바다를 향해 겨눠봤다.

오이도 주변에는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자전거 라이더들이 많았다. 
그들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방파제 길을 따라 시원하게 속도를 냈다. 
방파제 주변으로 낚시를 하거나 한가롭게 산책을 하는 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내려 쬐는 햇빛에 목이 말랐다. 때마침 거짓말처럼 휴게소가 나왔다. 고속도로가 아님에도 내부는 비슷했다. 고소한 호도과자에서부터 오징어, 핫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남미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길거리 
공연단의 모습까지 말이다. 다른 점이라면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멋스럽게 세워졌다는 것 정도. 
그래서인지 주차장은 휴게소를 방문하는 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차 안에서 내내 찌푸려져 있던 사람들의 이맛살이 차에서 내려 자연과 마주하는 순간 활짝 펴졌다. 
차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 약간의 불편함만 감수하면 된다. 
아비규환인 주차장을 자전거로 유유하게 빠져나오니 약간의 쾌감마저 느껴졌다.

드디어 대부도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대부도는 처음이었다. 
단층의 건물들과 노점 그리고 길 양 옆으로 늘어선 과실밭까지. 비로소 섬에 온 것 같았다. 
다만 그럭저럭 이어지던 자전거도로는 없어졌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좁다란 시골길을 달렸다. 
대부도 초입에 짐을 풀어도 됐지만,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바닷길이 열린다는 누에섬을 가기 위해서다.

정신 없이 페달을 밟았다. 이미 많은 이들이 활짝 열린 바닷길을 걷고 있었다. 
이곳의 갈매기들 역시도 새우깡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길 좌우로 펼쳐진 갯벌에서는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 조개를 캐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갯벌로 뛰어들었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때문에 섣불리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장화가 필요했다. 내친김에 호미와 바구니도 빌렸다. 
어찌해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을 때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다. 어린 소녀는 내게 호미로 땅을 뒤집으라 일렀다. 조개가 보이면 주워담으면 된다고.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뙤약볕 아래에서 머리가 핑 돌았다.

열댓 개가 담겼을까, 이 정도면 충분했다. 한 바구니 가득 캔 사람들이 새삼 궁금해졌다. 
과연 다 먹기 위해 가져가는 것일까. 
도구를 빌리는데 일정 금액을 지불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수렵이나 채취는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인간이 무단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공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돈으로 사야 하는 도시인들에게는 달콤한 꿀과 같을 것이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더 갖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이 많다. 
잔뜩 사고 버리는 일의 반복이다. 소비 지향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입장에서 '심플 라이프'가 유행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물질적인 풍요는 몸의 편리함을 가져다 줄지 모르나 마음의 풍요는 가져다 주지 못한다. 
행복은 적게 소유하는 삶 속에도 깃든다.

항구에서 다시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적당한 캠핑 사이트를 찾아 길을 거슬러 올라왔다. 
길 옆의 포도밭과 과일 노점상에 멈춰서 달콤한 맛을 보고 싶었지만 적은 양을 팔지 않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뭉게구름과 햇빛 그리고 시원한 바닷바람까지 자전거를 타기에 최고의 날씨였다.

저 멀리 무언가 익숙한 움직임이 보였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고향을 떠나온 내게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풍차가 보일 줄이야. 
풍차 8개가 놓여진 이 넓은 공간(어쩌면 공원)의 용도가 궁금했다. 
이름이야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이국적인 풍차 아래서 기념 사진도 찍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처음엔 기가 막혔지만, 그래도 풍차 곁을 지나다 보니 어느새 이 순간을 즐기게 됐다. 
아닌 게 아니라 이 곳의 지형은 내 고향을 많이 닮았다. 
넓은 평야와 드문드문 세워진 나무 그리고 높지 않은 구름까지. 
나도 모르게 향수에 젖어들 때쯤 해수욕장과 캠핑 사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맙소사. 조용하고 한적한 풍경을 기대했건만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비치와 소나무 숲을 가득 채운 텐트, 그 속에서 고기를 굽거나 잠을 청하는 사람들. 
말로만 듣던 한국의 휴가 행렬인가보다. 
간신히 내 한 몸 누일 자리를 찾았다. 패니어에서 텐트와 의자, 매트 등을 꺼내자 옆 텐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작은 가방에서 캠핑 용품이 나오는 것이 신기해 보였나 보다.

자연에서도 내 집처럼 편하게 있고 싶다면, 굳이 떠날 필요가 없다. 
캠핑은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다.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끼기도 부족하다. 
도시에서 얻었던 나쁜 기운들을 떨쳐내면 캠핑이 갖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자연에서도 내 집처럼 편하게 있고 싶다면, 굳이 떠날 필요가 없다. 캠핑은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다.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끼기도 부족하다. 도시에서 얻었던 나쁜 기운들을 떨쳐내면 캠핑이 갖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인근 슈퍼마켓에서 간단하지만 최고의 맛과 배부름을 보장하는 음식을 샀다. 
라면과 참치 한 캔 그리고 김치와 물이면 충분하다. 알파인 포트는 휴대하기 좋아 자전거 캠핑에 적합하다. 
맛있게 끓여진 라면을 코펠에 덜어 담고 참치 한 캔을 통째로 쏟아 부으면 완성. 
배가 부르니 이제야 주변을 찬찬히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잘 마른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칼로 나무 조각을 시작했다. 
아버지와 캠핑을 다녔던 예닐곱 무렵, 딱히 놀이 도구가 없던 내게 풀, 나무 그리고 흙은 좋은 친구가 돼줬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칼로 나무를 조각 내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만들 이미지를 나무에 투영하고 작업하다 보면 어느새 근사한 모양이 나왔으니 말이다. 
나중에 내 아이가 태어난다면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연에서 노는 법을 알려줄 계획이다.

어스름한 저녁 나절, 바다 주변을 산책하다 한 무리의 자전거 캠핑족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그리고 순간 망설였다. 그들에게 나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따스한 환대를 받았다. 진심어린 저녁 식사 초대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뉴는 인근에서 샀다는 생선회와 작은 불판에 구운 고기. 
기분 좋은 저녁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좋은 사람들까지. 
일상의 기쁨이란 소박하고 단순한 것에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진짜 인생이라는 것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느끼고 싶다.

글: 욘 스카켄라드(Jorn Schakenraad)  에디터: 김수진   사진: 김대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