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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땅에 무단으로 하수관을.." 제주 공무원 피고소

일산백송 2020. 9. 21. 08:16

"내 땅에 무단으로 하수관을.." 제주 공무원 피고소

제주CBS 고상현 기자 입력 2020.09.21. 05:03 

 

잘못된 허가로 '길이 360m' 풀빌라 하수관 개인배수시설로
국공유지‧사유지 내에 무단으로 '개인 관' 깔린 모양새
도로‧하수 관리 허점에 주변 부동산 개발 제약 우려도
담당자 "공공하수도 인·허가 받은 줄 알았다" 실수 인정
피해자, 직권남용죄로 고소..도 감사위원회 조사 개시

 

지난달 19일 김씨가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 자신의 토지에서 취재진을 만나 얘기하고 있다.(사진=고상현 기자)

 

"남의 땅에 왜 허락도 없이 하수관을 묻어요. 반드시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자기 땅 밑으로 똥오줌 흐른다는데 해주겠어요?"

지난달 19일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 김모(67)씨는 자신의 땅에 무단으로 하수관이 설치된 곳을 가리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수관은 인근 29채 규모의 A 풀빌라(연면적 2609㎡)로부터 장전리 마을 공공하수도까지 폭 4m의 도로를 따라 360m 길이로 이어졌다. 287㎡ 규모의 김씨 땅은 하수관이 묻힌 도로 한가운데 있다.

김씨는 "내 땅과 바로 붙어 있는 친구 부인네 땅에 함께 주택을 지으려고 보니 풀빌라 업체에서 하수관을 묻어놓고 애월읍 공무원이 이를 허가해준 사실을 알게 됐다. 개인 땅이면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자기네끼리 매설했다"라고 가슴을 치며 얘기했다.

제주시와 애월읍사무소에 따르면 A 풀빌라 업체는 2015년 5월 애월읍에 건축 신고를 했다. 이후 연면적 증가 등 건축신고 변경 과정에서 제주도 상하수도본부는 '제주시 상하수도과의 허가를 받아 공공하수도로 설치할 것'을 2차례 안내했다.

제주시 관계자는 "보통 길이 30m 이상 되는 하수관을 설치할 경우 유지 관리의 편의상 개인이라도 허가를 받아 공공하수도로 깔고 기부채납 하도록 한다. 이 사건도 길이가 360m에 달해 공공하수도로 안내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그런데 업체에서는 제주시로부터 공공하수도 준공 확인서를 받지도 않고 길이 360m에 달하는 하수관을 묻었다.

특히 하수도법상 하수관이 사유지를 지나면 토지 소유주에게 동의서를 받게 돼 있는데 김씨 측의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더욱이 업체에서 공공하수도 설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애월읍에 배수설비 준공검사 신청을 했는데도 애월읍에서는 그대로 허가를 내준 것으로 확인됐다. '배수설비'는 건물‧시설 등에서 발생하는 하수를 공공하수도에 유입시키기 위해 설치하는 시설이다. 건축물 준공 전 마지막 단계다.

결과적으로 애월읍 공무원의 잘못된 행정으로 길이 360m의 하수관은 공공하수도가 아닌 개인배수시설이 돼버린 꼴이 됐다. 이 구간에 국‧공유지와 함께 김씨의 땅 등 사유지가 속해 있어 이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애월읍사무소 관계자는 "담당자가 공공하수도 준공 확인서와 토지주 동의서 등을 꼼꼼히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 쪽에서 배수설비만 내줘버려서 전체 길이가 개인 소유의 관이 돼버렸다.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김씨가 하수관이 무단으로 깔린 곳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사진=고상현 기자)

 

문제는 하수관이 이렇게 길게 '개인배수시설'로 깔리면 하수‧도로 관리에 허점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주변 부동산 개발 행위에도 제약이 발생한다.

제주시 상하수도과 관계자는 "주변 필지에서 건축 신고가 들어오면 너도나도 긴 하수관을 깔려고 할 것이다. 허가를 안 내주면 관을 깔 수가 없어 형평성의 문제가 생긴다. 그 좁은 도로에 300m 관이 수십 개 들어온다는 건데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렇게 되면 개인 관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느 집의 문제인지 확인하느라 도로를 다 파내야 하는데 주민들이 통행도 못 하고, 도로도 누더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배수설비 허가를 내준 담당 공무원을 검찰에 직권남용죄로 고소했다. 현재 검찰 수사 지휘를 받으며 제주서부경찰서에서 고의성 여부 등을 수사하고 있다. 수사 통보를 받은 제주도 감사위원회에서도 이번 사건을 조사 중이다.

A 풀빌라 모습(사진=고상현 기자)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담당 공무원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실수를 인정한다. 현장도 확인했는데 관을 묻고 있어서 당연히 공공하수도 인‧허가를 받은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취재진은 업체 측과도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제주CBS 고상현 기자] kossang@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