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단독]검찰 전관예우·상명하복 원인 된 '사건배당지침' 보니..지휘부 입맛대로 검사 배당
윤지원 기자 입력 2019.10.24. 06:02
[경향신문] 각급 검찰청장이 개별 검사에게 사건을 배당하는 검찰 내부 기준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검찰 지휘부가 마음만 먹으면 사건을 특정 검사에게 임의배당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됐다.
수사 착수 이후 담당 검사를 바꾸는 재배당도 뚜렷한 기준이 없었다.
사건 임의배당 시스템은 전관예우, 상명하복 문화 등 검찰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23일 경향신문은 비공개인 대검찰청 ‘사건배당지침’(대검 예규 848호)을 입수했다.
2000년 3월 첫 제정 이후 세 차례 개정된 3쪽짜리 문건이다.
무작위 전자배당을 택하는 법원과 달리 검찰은 비공개 예규인 사건배당지침에 따라 사건을 배당해왔다.
제5조 ‘직접배당’은 “검찰청의 장 등은 다음 각호의 사건을 검사에게 직접 배당할 수 있다”며
13가지 사건 종류를 제시했다.
구속 사건, 검찰보고사무규칙 제3조 보고대상(법무부 소속 공무원·판사·국회의원 등과 관련된 사건),
전담검사 수사가 필요한 사건, 수사지휘검사 수사가 필요한 사건, 검사나 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건,
검찰청에 직접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 그 밖에 검찰청장이 직접 검사에게 배당할 필요가 있는 사건 등이다.
검찰이 맡는 대부분의 사건들이다.
여기에 속하지 않는 사건만 부서별로 일괄 배당된다.
검찰개혁 연구를 진행하는 서초동 ㄱ변호사는 ‘그 밖에 검찰청장이 직접 검사에게 배당할 필요가 있는 사건’을 두고 “검찰청장 맘에 따라 사실상 모든 사건에 대해 검사를 지정해 배당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했다.
제8조 ‘사건의 재배당’에서는 “재배당이 필요한 경우 검찰청의 장 등이 그 사건을 재배당한다”고 설명한다.
검찰 지휘부의 재배당 재량을 폭넓게 인정한다.
이 지침을 따른다면 수사 담당자가 지휘부 의중대로 사건을 처리하지 않으면 검사를 임의로 교체할 수 있다.
대검 관계자는 현 배당 시스템에 대해 “(3심제를 통해) 잘못된 1심 판단을 교정할 기회가 있는 법원과 달리
검찰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최적의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계적 배당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외부 우려를 감안해 개선할 부분을 살펴볼 수 있다”고 했다.
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지난 21일 검찰 배당 시스템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라고 권고했다.
‘검찰청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 기준에 관한 규칙’(법무부령)을 제정하고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 기준위원회’(가칭)를 설치해 배당 기준을 마련하라고 했다.
위원회는 소속 검찰청 검사 비율과 동일한 지휘부와 일선검사로 구성하게 했다.
또 일반검사의 절반을 여성 검사로 채워야 한다는 기준도 넣었다.
여성 검사들이 주요 사건 수사에서 배제됐다는 지적을 반영한 사안이다.
위원회가 만든 기준을 따를 때 배당받을 검사가 다수면 전자배당을 시행해야 한다고도 권고했다.
개혁위 권고는 차기 법무부 장관이 수용하면 시행된다.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7년 모부장이 본인의 친구 사건을 중앙지검 조사부에 배당되도록 손을 써놨다는 말을 들었다”며
“사건배당권은 수뇌부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썼다.
한 현직 검사는 “특수부서가 없어진 검찰청 형사부에 사건배당을 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인지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개혁위에서 배당 관련 개혁의 주무위원을 맡은 이탄희 전 판사는
지난 22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임의배당 문제로 전관예우가 발생한다면서
“특정 검사한테 배당을 하게 하고 수천만원씩 받는다는 얘기들이 널리 퍼져 있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은 “사건의 적정한 처리를 위해 검사의 전담, 전문성 역량, 사건부담, 배당 형평, 난이도,
수사지휘 경찰관서, 기존 사건과의 관련성, 검사실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배당하고 있고,
형사소송법에 따른 구속 필요성을 엄격하게 판단해 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검은 이 전 판사의 발언을 두고 “(수천만원을 받은 사례가 있다면)
이는 검찰에 대한 신뢰를 저해하는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서 수사 등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므로
명확하게 그 근거를 제시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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