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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동 성매매업소 참변..대낮 불났는데 왜 탈출 못했나

일산백송 2018. 12. 24. 06:53

중앙일보
천호동 성매매업소 참변..대낮 불났는데 왜 탈출 못했나
이가영 입력 2018.12.24. 00:06

철거 사흘 앞두고 여성 2명 사망
밤샘 영업한 뒤 잠자는 시간
16분 만에 진화했는데 피해 커
방범창 탓 구조 지연됐나도 조사

“불이야!”

22일 오전 11시4분 천호동의 한 성매매업소. 이곳에서 일하던 A(27)씨는 잠을 자던 중
누군가의 급한 외침을 듣고 창문으로 탈출했다.
경찰은 불이 났다고 알린 사람이 업소 사장 박모(50)씨인 것으로 보고있다.
천호동 상인회장 이모씨는
“사고 직후 박씨가 불이 났다며 계속 나오라고 소리 질렀는데 결국 본인이 못 나왔다”고 전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이 화재 원인을 분석 중이지만 

현재까지는 이 건물 1층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점만 파악되고 있다. 

불은 16분 만에 완전히 꺼졌지만 2층에서 잠을 자던 여성 6명 중 박씨와 B(46)씨 등 2명이 숨졌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인근 상인들은 1층에 있던 연탄 난로가 화재 원인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상인은 “사장이 매일 연탄난로 옆에 수건이나 빨래 등을 널어놨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도 

“전에 이 건물을 수리한 적 있었는데, 난로 여러 개가 있었다. 

수건이나 이불 등이 난로에 닿아 탄 것 아니겠냐”고 추측했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22일 오후 6시33분 숨진 B씨의 사망 원인은 ‘연탄가스 중독’(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지난 22일 서울 천호동의 한 성매매업소 화재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2차 감식은 오늘(24일) 진행된다. [뉴스1]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지난 22일 서울 천호동의 한 성매매업소 화재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2차 감식은 오늘(24일) 진행된다. [뉴스1]


일명 ‘천호동 텍사스촌’으로 불리는 성매매업소 집결지인 이곳은 관내 소방서에서도 화재 취약지역으로 집중 관리하던 곳이다. 인근 성매매업소 주인은 “골목도 좁고 건물도 노후화되다보니 소방 훈련을 자주 했었다. 

소방대원들이 소화기도 다 배치해 놨다”고 말했다. 

박씨가 화재 사실을 알고 즉시 다른 여성들을 깨운 것도 훈련에 따른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데도 왜 피해 여성들은 화마를 피하지 못했을까. 

인근 상인들은 밤에 일하고 낮에 잠을 자던 피해자들의 생활 패턴을 지적했다. 

인근 미용실 사장은 “업소에 커튼이 많이 달려 있어 불이 더 빠르게 번진 것 같다”고 말했다. 

피해 여성들이 자주 이용했다는 네일숍 사장은 

“소화기가 있었지만, 다급할 때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낮에는 주로 잠을 자거나 쉬던 종업원들은 주인만큼 열심히 소방 훈련에 참여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노후한 이 건물은 스프링클러 등 소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강동소방서 관계자는 “건물 자재 등이 화재에 취약한데다가 복도 폭도 좁아 대표적인 화재 취약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건물 1층에서 불이 시작돼 커튼 등에 불이 붙으면서 빠른 속도로 연기가 퍼졌고, 

출구가 불길에 막히면서 뒤늦게 잠을 깬 피해자들이 1층 비상구로 피신하지 못해 피해가 컸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불이 난 건물은 준공 일자가 1968년으로 재건축을 위해 사흘 뒤 철거를 앞두고 있었다.

또 건물 2층 창문에는 모두 방범창이 설치돼 있었다. 

경찰은 방범창 때문에 구조가 지연됐는지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업소 인근 주차장 주인은 “성매매업소가 예전처럼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어차피 (철거로) 나가야 하는데 잠깐 영업하던 것”이라며 

“철거 직전까지도 오갈데가 없어서 돈을 벌려고 일을 하던 불쌍한 여성들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인근 주민은 “갈 곳이 없어 남아있던 사람들이 많다”며 

“사장과 여성들이 재건축 보상금을 나눠 쓰자는 얘기를 하곤 했다”고 전했다.

강동구는 구호 조치에 나섰다. 

구청 관계자는 “이재민을 위해 임시주거시설을 조성하고 식료품·의류·침구 등 생활필수품을 구호 물품으로 

제공했다”며 “장례비용과 의료비 지원을 검토하고, 

피해자 및 유가족의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응을 위한 지원책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24일 관계기관과 함께 합동 감식을 시행할 예정이다. 

또 40명의 수사전담팀을 구성해 건축법 등 관련법 위반도 수사할 방침이다.


이가영·백희연·편광현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