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일자리 늘리고 싶어도, 한국에선 공장 짓기 참 어렵네요"
류정 기자 입력 2018.10.12. 03:09 수정 2018.10.12. 10:28
[제조업이 일자리다] [下]
지역주민은 반대, 지자체는 눈치만.. LG화학 2300억짜리 나주공장 증설 결국 포기
LG화학이 2300억원을 들여 연구센터와 친환경 가소제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던 '나주 공장 증설 계획'을 결국 포기하기로 최종 결정한 사실이 11일 확인됐다. 작년 9월 청사진을 밝힌 지 1년 만이다. 200여 명의 일자리도 함께 날아갔다. LG 측은 "최근 수요가 늘고 있는 친환경 제품 증설을 통해 집중 생산하려던 계획을 일단 접기로 했다"면서 "국내 다른 부지를 물색해 본 뒤 그래도 찾지 못하면 해외로 나가는 방안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G가 나주 프로젝트를 접은 이유는 나주시가 1년 넘게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주민이 "화학 공장의 유해 물질 위험성이 높은 데다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유해 물질은 법정 기준치 이하로 안전하게 배출된다"는 회사 측 설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LG의 투자가 무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LG CNS는 2016년 새만금에 IT 기술을 접목한 농장 '스마트팜'을 조성하려 했으나 농민 단체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 제조업 부활과 일자리 창출에 글로벌 차원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우리나라에선 각종 갈등에 따른 규제와 노조 반발에 막혀 그나마 계획된 투자도 무산되거나 지연되고 있다.
LG화학이 나주 공장에 증설하려던 친환경 가소제 공장과 연구 센터 조감도. 작년 9월부터 추진했으나, 나주시가 주민 반대를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LG화학이미지 크게 보기
LG화학이 나주 공장에 증설하려던 친환경 가소제 공장과 연구 센터 조감도. 작년 9월부터 추진했으나, 나주시가 주민 반대를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LG화학
◇노조와 주민 반발에 막혀
삼성전자는 평택에 30조원을 들인 반도체공장 2라인을 짓고 있다. 평택 반도체 공장의 직간접 일자리 창출 효과는 44만여 개다. 그런데 공장은 2020년 완공 예정인데, 이곳에 전기를 공급할 송전선로는 빨라야 2021년에나 될 예정이다. 한전이 2019년 완공할 계획이었던 고덕~서안성 고압 송전선로 설치가 '고압전선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안성시·주민들의 반대로 지연되면서다. 결국 공장이 예정대로 완공되더라도 1년여간 전기 공급이 안 돼 정상적인 가동은 어렵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송전선이 주거지역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지어질지 등에 대해 정해지지 않았고 유해성을 살필 환경영향평가조차 안 된 상황에서 무조건 반대만을 외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가 추진해온 '반값 연봉'의 자동차 생산 공장은 양대 노총의 반발로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 22년간 국내 공장을 짓지 않았던 현대차는 "우리 자동차 산업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는 바로 1인당 1억원에 육박하는 세계 최고 수준인 생산직 직원들의 연봉인데, 반값 임금이라면 수익성이 있을 것"이라며 지난 5월 시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광주시는 노사정 합의를 전제로 연산 10만대의 경차를 위탁 생산해 1만2000명의 직간접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한국노총은 "정규직 임금의 하향 평준화"라며 반발해 진척되지 않고 있다. '반값 연봉 공장' 모델은 글로벌 금융 위기 때 파산 위기까지 내몰렸던 미국 자동차 기업 GM이 극적으로 회생할 때 도입했던 것인데, 한국에 적용하려던 시도가 좌절되고 있는 것이다.
화장품 업체 한국콜마는 서울 내곡동에 연구개발센터인 통합기술원을 연내에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일부 주민이 "화학연구소 유해 물질을 안심할 수 없다"며 반대해 준공이 7~8개월 지연됐다. 회장이 직접 나서 주민 설명회를 여는 등 적극 설득한 끝에 최근 반대 목소리는 사그라들었지만, 공기(工期)가 늘어나 건설사에 거액의 공사 지연 배상을 해야 했다. 안재욱 경희대 교수는 “지자체나 정치권 등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눈치만 보거나 오히려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며 “사업 지연은 곧 비용 증가인데, 위법이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허가를 내주는 원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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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원치 않는 공장, 억지로 압박하다 무산되기도
삼성은 2011년 새만금 신재생에너지 용지에 그린에너지 종합산업단지를 2021년부터 7조6000억원을 투자해 조성키로 하고 전라북도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러나 2016년 사업을 전면 보류했다. 당시 부지 매립도 완성되지 않았고 인프라도 부족한 새만금에 삼성이 10년 후의 거액 투자를 밝힌 것을 두고 정치권의 압박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결국 정권이 바뀌자 투자가 표류한 것이다. 최근 전북도는 삼성에 투자 약속을 지키라며 지난 5월 한국GM이 폐쇄한 군산 공장에 전장(자동차 전자부품) 사업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은 향후 투자 계획에서 전북도를 우선순위로 고려하겠다고 했지만, 특정 사업에 대한 투자를 요구하는 데 대해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투자는 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투자 여건이나 사업성에 대한 고려 없이 정치적 이유로 투자를 압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팀장은 “중국·베트남이 우리보다 오히려 의사 결정이 빠르고 확실하다는 게 글로벌 기업들의 평가”라며 “한국은 민원이 제기되거나 정치적인 환경이 바뀌면 모든 게 보류되거나 뒤집힐 수 있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다른 나라처럼 일자리 만드는 기업에 특혜를 주지는 못할망정 발목 잡기를 한다는 지적을 받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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