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 그것이 알고 싶다.

웃긴 이야기

카톡으로 분만 지시한 의사, 석달 뒤 숨진 아기…책임은?

일산백송 2018. 6. 3. 15:12

조선일보 PICK 안내

[판결디테일] 카톡으로 분만 지시한 의사, 석달 뒤 숨진 아기…책임은?

기사입력2018.06.03 오전 10:54

 

#1. “아파하세요?”“네 원장님 (산모가) 엄청 아파합니다.” “무통(주사) 스타트하고 옥시(옥시토신·자궁수축 호르몬)도 스타트.”

 

#2. “아기 심박수 괜찮으면 옥시 스타트. 혼자 누워서 힘주는 연습하시도록 해주세요. 지금 누가 근무하세요? 커피 사다 줄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산부인과 의사 A씨와 간호사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다. 산모가 진통을 겪는 동안 의사는 병원에 없었다. 대신 간호사가 산모의 상황을 카톡으로 보고하자 의사는 처치 방안을 지시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아기가 사망했다. 의사의 책임은 어느 정도일까.

 

원본보기

서울의 한 병원 분만실./조선DB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유석동)는 지난달 30일 A씨의 의료과실을 인정하면서도 손해배상 책임은 40%로 제한하는 판결을 내렸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2015년 1월 18일 오전 6시, 양수가 터진 산모 B씨가 서울 강남의 한 산부인과에 긴급 후송됐다. 이 병원은 '책임 분만제'를 강조하며 산모마다 전담 의사가 있다고 광고해 유명세를 얻은 곳이다. 연예인이나 유명인도 많이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B씨의 담당 의사 A씨는 B씨가 병원에 도착한 후 10시간이 넘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진료도, 처방도 모두 카톡을 통해 이뤄졌다. A씨는 담당 간호사로부터 진통의 세기와 자궁문이 열린 정도 등을 보고받았다. A씨는 이날 오전 10시쯤 “오후 1시에 분만하자”고 했다가, 점심시간이 돼서야 A씨는 “일 좀 더 보고 오후 3시 반에서 4시쯤 (병원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분만 시점을 늦춘 것이다. A씨는 또다시 “오후 2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는 전화를 못 받으니 카톡으로 (보고를) 부탁한다”고도 했다.

 

오후 2시쯤. B씨의 자궁문이 완전히 열렸다. 담당 간호사는 A씨에게 “산모분, 아까보다 점점 더 진통 올 때마다 아프다고 합니다”라고 했다. A씨는 이로부터 1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3시 30분쯤이 되어서야 카톡으로 처방을 내렸다. 그는 “아기 심박수 괜찮으면 옥시 스타트. 혼자 누워서 힘주는 연습하시도록 해주세요”라고 했다. 옥시토신은 자궁수축을 돕는 호르몬이다. 그러나 자연진통이 왔을 때 과다 투여하면 태아가 사망하거나 산모의 자궁이 파열될 가능성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간호사와 담당 의사간 주고받은 카카오톡 내용./그래픽=박길우

 

A씨는 이로부터 30분이 지난 오후 4시쯤 다시 간호사에게 카톡을 보낸다. 그는 “제가 15분 내로 병원 갈게요. 옥시 4로 줄여주세요. 내진해 보시고”라고 한 뒤 “휴일에 고생하는데 커피 주문받는다”라며 커피를 사서 병원에 들어갔다. 태아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카페에 들러 커피를 주문한 것이다.

 

오후 4시 51분. B씨는 자연분만으로 출산했다. 하지만 아기는 첫울음도 없이 축 늘어졌다. 아기는 근처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3개월 뒤 심장이 멎어 사망했다. 뇌에 공급되는 산소가 부족해진 것이 원인이었다.

 

B씨 측은 “병원 밖에서 카톡 메시지로 간호사에게 진료와 처치를 지시하는 등 의료법을 위반했고 각종 과실이 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B씨 측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자궁 수축이 잘 됐기 때문에 분만이 빨리 진행될 수 있었고, 옥시토신을 투여할 필요도 없었다”며 “다른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간호사에게만 맡겨놓은 채 산모를 10시간 30분 가량 방치했고, 아기가 출생했을 때 자가호흡을 하지 않았는데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 측은 병원에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장에 있었어도 같은 진단과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A씨의 진료·처치 과정에서 의료과실이 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는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정확하게 진단한 후 옥시토신 투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를 게을리 한 과실이 있다”고 했다. 또 “A씨는 태아의 심박수 변화를 자세히 관찰해 산소 부족 상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고도 했다.

 

재판부는 또 “자연진통 중인 자궁은 분만 전까지 옥시토신에 매우 민감한 상태”라며 “투여량이 적절하지 않을 경우 자궁을 과도하게 수축시켜 태아의 사망이나 자궁 파열로 이어질 수 있어 정맥주사 투여량 조절기 등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산모가 아파한다’는 취지의 카톡 메시지만 받은 상태에서 간호사에게 옥시토신 투여를 지시했고, 구체적인 투여량을 알려주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료 과실이 아기의 사망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산전(産前)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았을 때 특이 소견이 없었고, 아기의 유전자 검사에서도 별다른 질환이 없었다”며 “하지만 대학병원에서 최종적으로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 진단을 받은 점을 더해보면 의료과실과 아기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하지만 A씨와 병원 측의 배상 책임은 40%로 정해졌다. 재판부는 “출산의 경우 모든 기술을 다 동원해도 예상외의 결과가 생기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고도의 행위라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또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은 신생아의 신경 질환 중 가장 흔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은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전효진 기자 oliv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