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MB 영장심사 포기는 패착? "방어기회 내던져"
김태훈 입력 2018.03.20. 13:53 수정 2018.03.20. 14:37
현직 판사 "피의자가 영장심사 포기하면 '범행 자백인가' 의심 드는 게 사실" / 장호중, 정우현, 이영복, 정호성, 진경준 등 영장심사 포기자 예외없이 '구속'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22일로 예정된 법원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함에 따라 판사가 검찰이 낸 수사기록 검토만으로 발부 또는 기각 여부를 결정할 예정인 가운데 과연 MB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앞서 영장심사를 포기한 다른 거물급 피의자들은 예외없이 구속된 만큼 MB의 앞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영장실질심사 제도는 199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처음 도입됐다. 그 전에는 판사가 검찰이 제출한 기록만 보고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했는데 그러다 보니 영장 발부율이 너무 높아져 법원의 인권옹호 기능이 취약해졌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조치다. 영장실질심사 시행 이후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들은 판사 앞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게 됐다. 자연히 영장 발부율도 80% 아래로 떨어져 전보다 인신구속이 어려워졌다.
구속 위기에 직면한 피의자들한테 영장심사는 사실상 유일한 탈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에 피의자가 영장심사에 불출석하는 것은 법률상 보장된 방어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재경지법의 한 법관은 “피의자가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했다고 해서 영장이 100% 발부되는 건 아니다”면서도 “아무래도 법관 입장에선 피의자가 영장심사에 나오지 않으면 ‘범행을 자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형 형사사건에 연루된 거물급 피의자들이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한 경우 법원은 거의 예외없이 구속영장을 발부해왔다. 지난달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확산 속에 부하 여성 검사를 성폭행한 혐의가 불거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김모 부장검사는 검찰 성추행 조사단(단장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에 긴급체포된 뒤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영장심사 포기를 택했다. 그는 ‘사안이 중대하고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는 법원 판단에 따라 구속수감됐다.
지난해 11월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방해했다는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도 법원에 출석해 선처를 호소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법원은 장 전 지검장의 혐의가 중대하고 검찰 수사로 어느 정도 소명이 됐다고 봐 영장을 발부했다.
가맹점 업주들을 상대로 ‘갑질’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불거져 지난해 7월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정우현 전 MP(미스터피자) 회장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영장실질심사에 불출석했다가 결국 검찰에 구속됐다. 지난해 4월 아내에게 약물을 주입해 살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의사 A(46)씨도 영장심사를 포기하고 검찰에 구속됐다.
2016년 11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부산 엘시티(LCT) 비리사건의 주역 이영복 회장, 비슷한 시기 비선실세 국정농단에 관여한 정황이 불거진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도 영장심사 포기 후 구속된 대표적 인물들이다. 2016년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회장을 둘러싼 법조비리에 연루된 홍만표 전 검사장과 김수천·최유정 전 부장판사, 비슷한 시기 김정주 넥슨(NXC) 회장에게 뇌물을 받은 정황이 포착된 진경준 전 검사장 역시 영장심사에 출석해 소명하는 대신 그냥 구속되는 길을 택했다.
MB의 영장실질심사 포기로 22일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부장판사가 검찰이 낸 구속영장 청구서와 관련 수사기록만 검토해 구속 또는 기각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MB의 운명은 22일 밤늦게, 또는 23일 새벽에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지난해 3월30일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판사가 주재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무혐의를 적극 항변했으나 끝내 구속영장이 발부돼 이튿날인 지난해 3월31일 새벽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김태훈·박진영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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