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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야기

이민호군 아버지 "내가 그 업체 권유했는데 너무 후회돼"

일산백송 2017. 11. 22. 09:58

한겨레

이민호군 아버지 "내가 그 업체 권유했는데 너무 후회돼"

입력 2017.11.22. 08:46 수정 2017.11.22. 09:46

 

"일비 보니 하루에 12시간 일해

주 40시간 근로계약서 엉터리"

엄마 "친구들은 수능 보는데.." 눈물

[한겨레]

 

이민호(18)군이 사고를 당한 제품 적재기 프레스. 이민호군 아버지 제공

 

“대학수학능력시험 보는 날인 23일이 열여덟번째 생일인데 지금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친구들은 수능을 보는데….”

 

현장실습을 나갔다 숨진 이민호(18)군의 어머니(50)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맺혔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열흘 동안 사투를 벌이다 떠난 아들의 영정 앞에서 21일 오후 만난 이군 어머니는 눈물을 보였고, 아버지(55)는 분노에 차 있었다. 기자가 제주 시내 한 장례식장의 분향소를 찾았을 때 아버지 이씨는 아들이 다녔던 회사 관계자와 전화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장례식을 끝내고 공장이 가동되면 최대한 보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해요. 이게 말이 되는 얘기입니까.”

 

애초 이씨는 이날 오전 5시30분 장례식장에서 나가기로 했으나, 회사 쪽 태도에 분노해 장례식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이군은 아버지 말을 듣고 지난 6월 말 지게차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이씨는 “민호가 지난 7월 학교에서 실습현장 목록을 가져왔기에 이 회사가 대우나 복리후생 등이 괜찮을 것 같아 갈 수 있으면 가보라고 했다”며 “마침 그곳은 자동차과 학생들만 갈 수 있었는데 인원이 모자라 선생님과 상담한 끝에 원예과에 다니던 민호도 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내가 얘기하지 않았더라면 그곳에 현장실습을 가지도 않았을 텐데 너무 후회스럽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도 믿지 못하겠어요. 어디 가서 손해 보면 손해 봤지 남한테 뭐라고 하지 못하는 아이가 이렇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꿈도 많고 활달한 우리 민호가 지게차 운전면허증만 따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이제 어떻게 해요. 며칠 있으면 민호 생일인데….” 이씨 옆에서 입을 연 민호군의 어머니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근로계약서에는 회사 쪽과 이군의 도장만 찍혀 있을 뿐 계약일은 적혀 있지 않았다. 이씨는 “표준협약서에는 1일 7시간 근무하고, 협의에 따라 1시간 추가해서 8시간 근무할 수 있지만 1주일에 40시간을 넘으면 안 된다고 돼 있다. 그런데 민호의 9월 출퇴근 일지를 확인하니 보통 10~12시간 근무했더라. 숙소에서 일어나 나가는 시간까지 하면 하루 13시간 일할 때도 있었다”며 “근로계약서의 근무 조건은 엉터리”라고 했다.

 

옆에 있던 이군의 이모부 강상봉(59)씨는 “사고 나기 보름 전께 민호가 작업하다가 바닥에 떨어져 옆구리를 다쳐 집에서 쉬었다. 그때 다시 회사에 가지 않았으면 이런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이 사건이 묻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군 어머니는 “성격이 온순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여서인지 민호를 잘 모르는 1학년 후배들도 조문을 왔다. 이번 기회에 현장실습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