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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반째 '명절은 언감생심'…학교 야간당직경비의 추석연휴
기사입력2017.10.05 오전 10:05
최종수정2017.10.05 오전 10:59
한달에 이틀 쉬고 밤새워 근무해도 월급은 '125만원'
권익위 권고도 무용지물…'살인근무'에 목숨 잃기도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고향이 강원도 양양이라 차례는 집에서 지내죠. 고향에 못 가고 밥만 떠 놓고 하는 거예요. 차례는 아들한테 일임하고 나는 여기서 학교나 잘 지키고 있어야지."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에서 2년 5개월째 감시당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김모씨(73)는 이 일을 시작한 뒤로 명절다운 명절은커녕 제대로 된 휴가도 다녀온 적이 없다. 학교 당직실에 20시간 가량 상주하며 각종 학교 기물과 시설을 관리하는 것이 김씨의 일이다. 그에게 주어진 휴식시간은 매일 오전나절 3시간 가량, 그리고 한달에 이틀로 정해진 휴일뿐이다.
김씨는 "오전 8시30분에 퇴근해서 집에 가면 9시 정도인데 좀 자다가 12시가 되면 또 나와야 하니 어디 일을 보러 다닐 수도 없다"며 "당직실에서 눈을 좀 붙이려고 하면 학생들은 농구한다고 들락거리지, CCTV를 잘 관찰해야 누가 드나드는지 알지, 그러다보니 정신적으로 좀 고되다"고 토로했다.
9월30일부터 10월9일까지 장장 열흘에 이르는 올 추석 연휴에도 김씨가 쉴 수 있는 날은 단 이틀뿐이다. 그나마 그 이틀 동안에도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8시간이 채 못 되는 짧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들어와야 한다. 사실상 연휴 기간 내내 학교에 머물러야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씨는 "기술도 없고 배운 것도 없으니 이 일이라도 해야하지만, 1년 365일 휴가가 없다. 대타가 와야 휴가를 가는데 2년 동안 휴가 한 번 못 갔다"며 "아파트 경비는 그나마 휴가를 3~4일씩 주는데 학교 야간당직 근무자에게는 휴가라는 게 없고, 휴가 비용이라도 주면 좋을텐데 그런 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휴게 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신세다 보니 일하는 시간 외에 여가를 즐기거나 개인적인 볼일을 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김씨는 "건강검진도 한 번씩 하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어디 일을 보러 다닐 수도 없다"며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성당에도 가고 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 냉담자(冷淡者)가 되어 버렸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개인 생활도 따로 없이 장시간 근무를 감내하고 있지만 김씨가 받는 급여는 한달에 125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김씨는 "열흘간 주야로 근무해도 따로 나오는 수당은 없다"며 "만약 (연휴 기간에) 아침에 퇴근했다가 그 다음날 아침에 들어오려면 용역회사에서 임금 5만원을 제한다"고 말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를 대신해 생계전선에 다시 뛰어든 김씨로서는 몸을 조금 더 혹사하더라도 임금이 깎이지 않도록 쉬지 않고 근무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다.
김씨가 속한 용역업체에서 수원 시내의 또 다른 15개 고등학교로 파견돼 근무하고 있는 다른 감시당직 노동자들 역시 김씨와 사정은 다르지 않다. 뿐만 아니라 서울지역 일부를 포함한 전국 대부분의 학교에 1명씩만 배치된 야간당직 노동자들은 김씨와 같이 연휴 내내 혼자서 학교를 지켜야 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2013년도부터 개선책 마련을 마련하도록 요구해왔다. 국민권익위원회 또한 지난 2014년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에 학교 당직근무자들의 근무 형태를 격일제로 변경하도록 하는 등의 개선 방안을 권고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령자가 대부분인 감시당직 노동자들이 명절 연휴 내내 학교에서 혼자 근무하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 제때 의료적 처치를 받을 수 없는 등 안전상의 위협에 노출된다는 것도 큰 문제다. 실제로 지난 2015년에는 충북 충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59세 감시당직 노동자가 쓰러져 숨진 채 학생들에게 발견되는 일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 교육공무직본부는 "11박12일간 사실상 사회와 격리된다면 그 자체로 안전상 심각한 위협"이라며 "명절 기간 교대근무자를 배치하고 당직노동자의 온전한 휴무와 휴게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m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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