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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야기

21년 만의 무죄 판결·고개 숙인 판사…"괜찮습니다"

일산백송 2016. 2. 4. 14:22

21년 만의 무죄 판결·고개 숙인 판사…"괜찮습니다"
세계일보 입력 2016-02-03 14:48:27, 수정 2016-02-03 14:54:53

“괜찮습니다.”

첸(53)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기에게 사과한 하이난(海南) 성 최고 판사에게 “괜찮다”고 했다.
그는 죄가 없다.
20여년 전, 자신을 기소한 검사와 종신형을 선고했던 판사가 책임질 일이었다.

첸씨는 지난 1994년 하이난 성에서 한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첸씨는 살인범이 아니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검사의 엉뚱한 기소와 고문을 통한 자백 등이 그를 철창으로 이끌었다.
첸씨는 강압적인 조사를 펼친 사법당국의 희생양이었다.


억울한 옥살이는 21년간 이어졌다. 

그러나 첸씨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철저히 홀로 내버려졌다.
죽이지 않았는데도 철창에 갇힌 첸씨는 아무 도움 없이 인생의 쓸쓸한 마지막날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첸씨에게 빛이 드리웠다.
3년 전부터 그의 판결에 의문을 품고 변호사 왕씨가 조사에 뛰어들면서다.
왕씨는 첸씨의 판결은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으며, 의심가는 부분이 18가지나 있다고 주장했다.

왕씨는 첸씨가 고문 때문에 허위 자백을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난해 베이징 검찰에 탄원서도 제출했다. 최고인민법원 앞에서도 시위했다.
결국 왕씨의 목소리를 들은 최고인민법원이 저장(浙江) 성 법원에 재심을 할당하면서
첸씨의 인생이 바뀌게 됐다.


지난 1일(현지시간), 재판부는 “살인 혐의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첸씨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억울한 옥살이를 시작한 지 21년 만의 일이다.

하이커우(海口) 교도소를 나선 첸씨는 앞에서 기다리던 동생도 만났다.
재회의 기쁨을 나눈 이들은 같은날 쓰촨(四川) 성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러 비행기에 올랐다.
이들에게 올 춘절은 어느 때보다 기쁨이 가득할 것으로 보인다.

첸씨의 사연은 ‘후거지러투(呼格吉勒圖)’ 사건과 맞물린 터라 더욱 관심이 쏠린다.

후거지러투 사건은 1996년 당시 18세였던 청년 후거지러투가 자신이 일하던 공장 근처 화장실에서
여성 시신을 발견하고도 성폭행 가해자로 몰려 억울하게 총살당한 사건을 말한다.
그는 무죄를 주장했으나 시신 발견부터 총살까지 62일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당국은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사건은 2005년 진범이 잡히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동안 아들을 위해 싸워온 가족은 2014년 12월, 우여곡절 끝에 열린 재심에서
네이멍구(內蒙古) 고등법원이 후거지러투의 살인과 성폭행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조금이나마 한을 풀 수 있게 됐다.

홍콩 남화조보(南華早報) 등 외신들은 ‘후거지러투’ 사건을 맡았던 사법 관계자 27명에게
‘엄중경고’와 ‘행정처분’ 등의 처벌이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후거지러투의 가족은 국가로부터 손해배상금으로 206만위안(약 3억7500만원)을 받았다.

네이멍구 당국에 따르면 수사를 지휘했던 펑즈밍(馮志明) 후허하오터(呼和浩特) 시 

신청(新城) 구 공안분국 부국장에 대해서는 별도 처벌이 있을 전망이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