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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범탕·총명 주사.. 강남 휩쓰는 '修能보약' 광풍

일산백송 2015. 10. 3. 12:28

물범탕·총명 주사.. 강남 휩쓰는 '修能보약' 광풍
[수능 D-40.. 학부모들 분주]
캥거루꼬리·철갑상어·산삼 함께 끓여서 한달치 50만원
집중력·기억력 좋아진다는 태반 성분의 주사 맞히고
한 알 5만원 수능丸도 유행
전문가 "보양식이라고 해도 즉각적 효능 있을지는 의문"
조선일보 | 이민석 기자 | 입력 2015.10.03. 03:05 | 수정 2015.10.03. 11:08

지난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건강원엔 검은색 게르마늄 솥과 은색 압력솥 20여개가
걸려 있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양동이에서 80㎝ 크기 철갑상어를 꺼내 압력솥에 집어넣는 직원의 손을
학부모 A(여·53)씨가 유심히 쳐다봤다.
5분 뒤 직원이 얼린 물범 고기를 집어넣자 A씨는 "이게 아까 말했던 그 물범"이라고
같이 온 학부모에게 속삭였다. A씨는 2년 전 큰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때부터 이곳을 찾았다.
한 달 전엔 친언니 부탁으로 미국에서 유학하는 고등학생 조카 두 명에게 물범 중탕액을 보냈다.
그는 "강남 엄마들 사이에선 수험생에게 '물범탕' 안 먹이면 애한테 죄짓는 것이라는 말이 돈다"고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4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수험생 엄마들이 앞다퉈 '수능 대비 보약'을 찾고 있다.
서울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선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물범 중탕액이 불티나게 팔린다.
이 지역 학부모들에게 5~6년 전부터 인기를 끈 물범탕은 캐나다에서 냉동해 수입한 '하프 물범(Harp Seal)' 고기와 함께 캥거루 꼬리, 철갑상어, 미꾸라지, 산삼 등 60종의 재료를 넣어 고아서 만든다.
하프 물범은 캐나다 어부들이 얼음판 위에서 주로 몽둥이로 때려잡는 동물로,
이 사냥 사진이 수시로 인터넷에 올라 "잔인하다"는 세계적 비난을 받곤 한다.
이날 대치동 건강원에선 물범탕을 끓이는 솥에 재료를 다 넣는 데만 20여분이 걸렸다.
닷새 동안 재료를 고아 만든 이 물범 중탕액은 한 달 치 60포가 50만원 정도 한다.
한의원에서 판매하는 총명탕(聰明湯·학습과 기억에 도움 된다는 한약)보다 2배 가까이 비싸다.

물범탕은 구매자들 사이에서 집중력과 기억력을 높여준다고 소문났지만,
효능은 불분명하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하지만 물범을 찾는 엄마들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학부모 정모(여·48)씨는 "수능일이 다가오면서 학부모들이 학원을 어디에 보내는지와
어떤 보약을 먹이는지 서로 물어보느라 바쁘다"고 했다.
자기 자녀가 물범탕 먹는 걸 다른 수험생 부모들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포장에 새겨진 물범 문양을
테이프로 가려달라고 부탁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고 한다.
건강원 관계자는 "캐나다산 물범은 한 업체가 수입하는데 의약품 제조용으로 사용되는 일부를 제외하면
상당 부분을 수험생들이 소비할 것"이라 했다.

수능이 다가오면서 강남 일대 성형외과에서도 '수능 주사'를 놓느라 바쁘다.
일부 성형외과는 "주사를 맞으면 학습 능력이 향상되고 기억력이 좋아진다"며 수험생들을 끌어모은다.
여러 종류의 영양제를 섞은 이 주사는 '총명 주사' '수험생 주사' '집중력 주사' 등 불리는 이름도 다양하다.
강남구 논현동의 H 성형외과는 "수능 한 달 전부터는 수험생들이 몰려 수능 주사가
매출의 20%를 차지할 정도"라고 했다.
은행잎 추출물과 비타민을 섞은 수액 주사나 태반을 주성분으로 한 주사도 인기다.
한 번 맞는 데 5만~10만원 정도 든다.

'수능 응급약'도 유행하고 있다.
불안감을 없애주고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일명 '수능환(丸)'을 판매하는 강남의 한 한의원은
"장기간 복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 '총명탕'과 달리 이 알약을 복용하면
짧은 시간에 효능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수능환'은 녹용·사향·당귀 등 성분에 따라 구슬만 한 한 알이 1만원에서 5만원까지 올라간다.
한 한의원 직원은 "가격이 비쌀수록 고급 재료인 사향(麝香)이 많이 들어가 효과가 더 크다"고 했다.

하지만 물범탕이나 주사, 수능환 등을 파는 건강원이나 병원의 설명과 달리
약의 효능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김경수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보양식이라고 집중력이나 기억력을 즉각적으로 향상시키거나 장기간 유지시키는 것은 어렵다"며
"피로 회복이나 기억력 증진에 도움 된다고 홍보하는 약품 등을 잘못 복용하면
오히려 컨디션 조절에 실패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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