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정년' 눈앞..도입 서두르는 기업들
고임금 장년 근로자 늘어 인건비 부담 '비상', 채용 확대 효과도
한경비즈니스 | 입력 2015.09.21. 10:04 | 수정 2015.09.21. 10:06
국내 산업 현장에 ‘임금피크제’가 처음 도입된 것은 2003년이다.
신용보증기금을 시작으로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임금피크제는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정년을 연장, 또는 보장해 주는 것을 조건으로 임금을 조정하는 제도다.
통상 55~57세 사이에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면 60세 정년까지 매년 정해진 비율만큼
일률적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2013년 4월, 정부는 인구 고령화에 따라 ‘정년 60세 연장법’을 개정했다.
법안에 따라 300인 이상의 사업장은 2016년부터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게 된다.
코앞에 다가온 이 법안은 현재 임금피크제 도입 바람을 불러온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
▷조기 퇴직으로부터 장년층을 보호하고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면서
▷청년 채용도 늘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상우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본부 팀장은
“근속 연수가 오래된 장년층은 연공급(근속 연수에 따른 임금 지급) 중심의 임금체계에 따라
높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기업으로선 (근로자의 생산성과 괴리된) 인건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면서
“이에 따라 기업에서는 장년층에게 조기 퇴직을 요구하고 신규 채용을 줄이는 대신 사내 하청을 맡기거나
비정규직을 늘리고 있어 또 다른 고용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현 정부가 그 해결책으로
임금피크제 카드를 꺼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다수의 기업과 기관들이 발 빠르게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현재 국내 30대 그룹 계열사 378곳 중 212곳(56%)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임금피크제는 기업이나 기관의 특성을 감안해 재고용·근로시간 단축·성과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운영할 수 있다.
30대 그룹 계열사 56%서 시행 중
롯데그룹은 내년 1월 1일부터 그룹 내 81개 모든 계열사에서 임금피크제를 실시한다.
임금은 기존 정년 다음 해부터 전년과 비교해 평균 10%씩 매년 줄어들고 그간 55~58세 기준으로
계열사별로 차이를 보였던 정년 역시 모두 60세로 일괄 연장한다.
롯데 계열사 가운데 롯데제과·롯데건설·롯데푸드 등은 이미 지난해부터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고 있고
롯데홈쇼핑·롯데상사·대홍기획 등은 올해부터 정년 60세와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다.
포스코도 기존 만 58세를 정년 기준으로 한 임금피크제 적용 범위를 확대해
내년부터 정년을 60세로 2년 연장하며 임금피크제를 확대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내년부터 포스코의 56세 직원은 기존 임금의 90%, 57세는 80%, 58세부터는 70%를 받게 된다. 포스코그룹은 이 같은 방식의 임금피크제와 정년제를 다른 계열사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도 각각 내년부터 모든 그룹사 임직원에 대해 임금피크제를 전면 또는 단계적으로
확산, 시행할 예정이다.
이 밖에 LG그룹을 비롯한 한화그룹·GS그룹·SK그룹 등도 주요 계열사가 이미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다.
2011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A 화학 회사의 노경기획팀 과장은
“기존 만 57세에서 만 60세로 정년을 연장했고 만 58세부터 기본급 대비 10%씩 감액하고 있다”며
“임금피크제로 숙련된 고령자의 고용이 증가했고 신규 일자리 창출이 늘었으며 기존 직원들을 위한
고용 안정책을 실시한데 이어 기업 경쟁력이 강화되고 무엇보다 협력적 노사 관계가 구축됐다”고 말했다.
공공 기관의 상황은 어떨까.
정부는 316개에 달하는 공공 기관(2014년 기준 28만 명)이 솔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 성적은 낮은 편이다.
지난 9월 4일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100여 개 공공 기관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도입률은 공기업 70%, 준정부 49%, 기타 공공 기관 18%다.
이미 노사 간 합의를 마친 공공 기관이 나오는가 하면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곳도 있다.
특히 이번 공공 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은 ‘임금피크제로 절감된 인건비를 신규 채용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어 전체 공공 기관 도입 완료 시 2016~2017년간 8000명의 신규 채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기업과 기관이 임금피크제 도입에 적극 나설 수 있는 것은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발표하며 임금피크제 도입을 독려한 결과로 해석된다.
정부는 임금피크제가 대기업에서 더 나아가 중견·중소기업에까지 확산될 수 있도록 재정·세제 지원,
우수 사례 발굴·공유, 현장 밀착 지도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임금피크제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201억 원 증액된 521억 원을 반영하기로 했다.
대기업과 정부가 50%씩 부담해 최대 3년간 3억 원을 지원하는 상생 서포터스 청년 창업 프로그램 예산도
200억 원 신규 반영한다.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기업과 기관에는 임금피크제가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노조의 동의를 얻지 못해서다. 노조 측은 “어차피 ‘60세 정년 의무화’ 법이 통과됐으니
임금 삭감 없이 정년을 연장하고 다른 비용을 줄이되 인건비는 늘리라”는 주장이다.
공공 기관은 경영 평가에 반영 ‘강수’
공무원 사회의 반발은 더욱 심하다.
이미 정년이 60세까지 보장돼 정년을 60세까지 늘리는 대신 임금을 깎는다는 제도의 도입 취지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가스공사를 비롯해 석유공사·강원랜드 등
일부 공기업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놓고 노사 간 진통을 겪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공 기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면 공무원 정년을 65세까지
늘리자는 이야기도 나온다”면서 “기존 공무원 정년에 맞는 제도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에 초강수를 뒀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은 공공 기관 노동자들의 내년 임금 인상률을 50% 깎겠다고 밝힌 것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여부를 경영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직원들의 노동조건을 직접 건드리겠다고
나섰다.
이에 반발하는 노동계를 향해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9월 2일 긴급 기관장 회의에서 “지금 노동 개혁에 노사가 동참하지 않으면 노사는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도 예산안 국회 제출 시한인 9월 10일까지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지만 결국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입법을 자체적으로 추진하겠다고 9월 11일 밝혔다.
일각에서는 ‘임금피크제가 정답은 아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김준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 환경노동팀장은
“임금피크제가 고령자의 고용 연장과 청년 신규 고용 창출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마법의 열쇠는 아니다”
면서 “다만 법정 정년 60세 시대를 맞이해 고령자의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의 계속적 고용 가능성을
다소 늘릴 수 있는 보완적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금피크제의 실시와 고령 근로자의 고용 연장이 고용 시장에 미칠 영향이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으므로 전체 공공 기관과 민간 대기업에 임금피크제를 전면 도입하고
확산하도록 노력한다는 정부의 정책은 다소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상우 팀장 역시 임금피크제가 노동 개혁의 답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은 여전히 인건비 부담과 인사 적체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며
“선진국과 같은 개인의 직무 능력·가치·성과에 따른 직무성과주의 임금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임금체계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까지도 낮출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국내에서는 현재 CJ·오리온·삼양사 등이 직무급제로, 삼성전자는 성과급제로 임금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임금체계 개편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므로
우선적으로 임금과 근로시간 조정 등을 통해 임금피크제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임금피크제란?
일정 연령을 기준으로 임금·근로시간·근로일수 조정 등을 통해 임금을 감액해 나가는 대신
일정 기간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
※ 2003년 7월 신용보증기금이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으로 임금피크제를 첫 도입한 후 점차 확산
정년을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 적용 기간 동안 임금 곡선을 단계적으로 낮추거나
▷도입 시점에 임금을 감축하고 이후에는 감액 없이 임금 수준을 유지하는 방법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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