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이 남긴 엄청난 유산 보니
아시아경제 | 김철현 | 입력 2015.09.02. 10:16
2일은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인 호찌민이 세상을 떠난 지 46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69년 9월 2일 사망했다.
그가 사망했을 때 남긴 유산은 몇 벌의 옷과 지팡이, 타이어로 만든 슬리퍼 등 밖에 없었다고 한다.
베트남 국부로 추앙받던 초대 대통령이 이렇게 초라한 유산만을 남긴 까닭은 무엇일까.
호찌민은 폐결핵으로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예감한 1965년 유서를 작성했고
1968년과 1969년 이를 고쳐 썼다고 한다.
여기에는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거창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을 낭비하지 말고 화장을 하라는 당부도 포함됐다.
하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유해를 방부 처리해 영묘를 만들어 국민 화합의 구심점으로 삼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의 호찌민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검소함과 청렴함,
'호 아저씨'라고 불리는 친근한 이미지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권력을 잡았을 때도 이를 통해 어떤 부귀영화도 누리지 않았다.
평생을 혼자 살며 직접 자동차 타이어로 만든 슬리퍼를 신었고
지방을 다닐 때면 손수 돼지고기 볶음을 밥에 얹어 도시락을 쌌다고 한다.
또 프랑스 총독관저에서 살 수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관리인들이 묵는 오두막에 살았다.
가족들도 독립 전쟁에 참여했지만 대통령이 됐을 때 권력과 거리를 두게 해
친인척 비리를 철저히 차단했다.
이 같은 청렴함 때문에 호찌민이 평소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늘 가지고 다니며
잘 때도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통해 청렴한 관리의 가장 최상은
'봉급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먹고 남는 것 역시 가지고 집에 돌아가지 않으며,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 한 필의 말로 조촐하게 가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호찌민의 유품에 목민심서가 없었다는 것을 근거로
이는 국내에서 잘못 전해진 얘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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