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산다는 것은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비의 양은 내리는 것보다 훨씬 많게 느껴진다.
밤 11시 이은자씨가 운전하는 4.5t 트럭이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여주 부근을 달린다.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여자 트럭운전사.
이씨는 몸이 작아서 트럭운전을 한다기보다 트럭 운전대에 매달려 가는 것 같다.
트럭이 차선을 바꾸자 운전석 뒤편에 링거 팩이 흔들거린다.
무슨 사연일까?
렌터카, 택시, 버스, 안 해본 운전이 없는
경력 35년 베테랑 운전사인 남편 심원섭씨.
1995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뇌졸중이 나아질 무렵 다시 6차례 심장 수술을 받았고,
신장병까지 겹쳤다.
아픈 몸을 이끌고 운전대를 놓지 못하는 남편 옆에서
수발을 들던 이씨는 2004년 아예 운전을 배웠다.
몸이 아픈 남편을 위해 잠시라도 교대를 해주기 위해서였다.
트럭 뒤편에는 남편 심원섭씨가 누워서 복막 투석을 하고 있다.
고속으로 달리는 트럭 속에서 투석은 30분 만에 끝났다.
하루 네 번,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투석을 해야 한다.
투석을 마치자 남편 심씨가 코를 골며 잠든다.
"시끄럽지요? 하지만 저 소리가 나한테는 생명의 소리여요"
가끔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손을 뒤로 뻗어 남편의 손을 만져본다.
온기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남편의 손.
곤하게 잠든 남편이 고마울 뿐이다.
부부는 일주일에 세 번씩 서울과 부산을 왕복한다.
수도권 지역 공단에서 짐을 받아 부산 지역에 내려놓고,
부산에서 짐을 받아 서울로 가져온다.
원래는 남편이 혼자서 하던 일.
트럭이 안산공단에 들어서자 남편이 운전대를 잡았다.
좁고 복잡한 시내 길은 남편 심씨가,
고속도로 같이 쉬운 길은 아내 이씨가 운전을 한다.
낮에는 지방에서 전날 밤 싣고 온 짐을
안산 반월공단 공장을 돌며 내려놓는다.
해 질 녘이 되면 쉬지도 않고 지방으로 가져갈 물건을 싣는다.
저녁 7시쯤 경기도 안양에 있는 집에 눈 붙이러 잠시 들렀다.
남편은 집까지 걸어가기 힘들다며 그냥 차 안에서 쉬겠다고 한다.
아내만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향한다.
이틀 만에 돌아온 집은 온통 빨랫감과 설거짓감으로 발 디딜 틈도 없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막내아들 뒤치다꺼리도 이씨 몫이다.
집 안 청소를 마친 이씨는 무너지듯 쓰러진다.
밤 10시, 정말 짧은 단잠을 자고 돌아온 아내에게
남편은 무뚝뚝하게 한 마디 던진다.
"좀 쉬었어?"
제대로 쉬지 못한 것도 잘 알지만,
미안함에 쑥스러워 한 마디 던진 것이다.
아내는 잘 안다. 남편이 얼마나 미안해하고 있는지..
아내는 별말 없이 트럭에 시동을 건다.
밤 12시, 뒤에 있던 남편이 눈을 뜨며 라면이라도 먹고 가자고 한다.
충북 괴산휴게소에 차를 세워놓고 아내가 라면을 끓인다.
신장병을 앓고 있는 환자 특유의 입맛 때문에
남편은 아내가 끓인 라면이 아니면 먹지 못한다.
부부는 먼 여정을 떠나기 전,
트럭에서 모자란 잠을 보충하고 떠나기로 한다.
남편이 운전석 뒤편 남은 공간에 눕는다.
아내는 운전석에 나무 합판을 깐 뒤 잠을 청한다.
"이렇게라도 함께 잘 수 있어 좋습니다.
꼭 신혼 단칸방 같지 않나요?”
남편 심씨가 애써 웃는다.
새벽 4시 캄캄한 어둠을 가르고 트럭은
다시 목적지를 향해 행복한 여정을 떠난다.
"피곤해도 자동차 타고 여행 다니는 심정으로 일하지 뭐!
일 때문에 고생한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지는 거 아니냐?"
남편과 아내가 손을 꼭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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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먼 미래를 향해 여정을 떠나는 배와 같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등대가 되어주고, 돛도 되어주며 그렇게 의지하며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함께 달려가는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사랑이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똑같은 방향을 내다보는 것이라고
인생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 생텍쥐페리 -
이글은 [따뜻한 하루]에서 보내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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