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100문 100답
우먼센스 | 입력 2015.08.06 09:03
수술용 메스 대신 '전기소작기'를 도입한 새로운 위암 수술법을 선보인 지 25년,
이제는 전 세계 의사들이 한국으로 배우러 온다.
위암 명의 노성훈 교수가 만들어낸 변화다.
위암에 대한 시각은 나라별로 다르다.
대한민국과 일본에서는 예후가 좋으면 완쾌될 확률이 높은 비교적 치료하기 쉬운 암이라고 보는 반면
미국과 유럽, 중국에서는 아직도 사망률이 높은 질병으로 분류된다.
불과 몇십 년 사이 우리나라의 위암 치료가 눈부시게 발전한 데에는 노성훈 교수
(연세암병원장·연세대학교 교수)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주로 정형외과 수술에 이용되던 '전기소작기'를 세계 최초로 위암 수술에 도입한 게 1990년이다.
"위암 수술할 때 배를 열고 간, 대장 등으로부터 위를 분리해야 하는데,
만일 암이 전이되었다면 그 부분도 모두 제거해야 하죠.
혈관을 건드려 피가 나면 시야를 가리게 되니 혈관을 잡아 실로 매고 흐르는 피를 닦아가며 수술해야 했어요.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전기소작기'는 조직을 지지면서 자르기 때문에
저절로 지혈되며 쓸데없는 출혈이 발생하지 않아 위암 수술에 유용할 것 같더군요."
전혀 새로운 시도였기에 많은 걱정을 안고 시작했지만 노 교수의 예상은 적중했다.
쓸데없는 출혈을 막으니 시야가 확보되어 원활하게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고,
과다한 출혈 때문에 추가로 수혈할 일도 없었다.
수술 시간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었고, 자연히 환자의 회복도 빨라졌다.
1995년에는 전기소작기를 사용한 위암 수술 장면을 찍은 비디오를 대한외과학회에서 공개했다.
"외과의사의 상징적인 도구인 메스를 사용하지 않는 것 자체에 대한 선배 교수님들의 반발이 거셌지요.
또 전기에너지를 열로 바꾸어 사용하는 전기소작기가 오히려 환자에게 위험한 것은 아니냐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활용한 다른 의사들의 성공 사례가 더해지며
조금씩 전기소작기를 사용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죠. 이후 국제학회에서 발표하며
위암의 종주국이라 불리던 일본에서도 제 수술을 보고 90년대 말 즈음부터 위암 수술에 전기소작기를
도입했습니다. 이제는 칼과 가위로만 위암 수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지요."
노 교수는 비단 수술 방법뿐 아니라 환자가 겪는 고통 자체에 늘 관심을 가졌다.
그는 300여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위암 수술을 받았을 때 어떤 부분이 가장 불편하고 고통스러운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가장 많이 꼽힌 것은 수술 후 코에서 위까지 줄을 연결해 장에 생긴 가스와 분비물을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콧줄'이었다. 수술 후 체력이 떨어진 상태인 환자의 코에 줄을 넣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인 데다,
몸 안 다른 곳으로 줄이 흘러가거나 줄에 마른 가래가 껴서 잠들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도
빈번했던 것.
"콧줄이 환자들의 회복에 꼭 필요한지 임상 연구를 진행한 결과, 콧줄의 유무가 환자의 회복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가스와 분비물을 주사기로 빼내기 시작했습니다."
환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요소는 또 있었다.
수술 과정에서 세포가 파괴되며 복강에 물이 차는 것을 내보내는 배출구인 '심지'.
심지를 달면 허리가 짓무르는 것은 물론, 나중에 빼낼 때도 큰 고통이 따른다.
노 교수는 연구를 거듭해 심지를 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조직 손상을 최소화한 정교한 수술법을 개발해냈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답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의사 입장에서는 수술할 때 상처가 길면 시야가 넓게 확보되니 수술하기에는 당연히 편하죠.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상처가 길면 공기 중에 노출되는 신체기관의 면적이 넓어지니
물리적·생리적 스트레스를 받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상처 때문에 생기는 합병률과 후유증, 수술한 부위에 장이 들러붙는 유착의 가능성도 높아져
추가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고, 미용 측면에서도 좋지 않고요.
예전에는 늑골 부위에서 배꼽 아래까지 25~30cm까지 상처를 냈지만,
저는 그 절반 정도로만 상처를 내고 수술합니다. 의사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환자에게 맞춰야지요."
인터뷰 내내 노 교수가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은 '환자 입장에서'라는 단어였다.
환자가 없으면 의사도 존재하지 않으니 당연한 것이란다.
의사들이 공부하는 교과서는 의사 입장에서 쓴 것이기에,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받아들이면
자칫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목소리를 놓칠 수 있다고도 했다.
정기적으로 환자들과 후배 의사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을 마련한다는 노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먼 타국에서 심지어 일반인이 아닌 의사들이 자신의 생명을 맡기기 위해 그를 찾아오는지 짐작이 갔다.
"우크라이나 의사 두 분이 제게 치료를 받으셨지요.
의사들은 본인들의 전문 분야다 보니 입소문만 믿는 것이 아니라 국제학회지에 실린 논문 등을
직접 찾아보고 심사숙고한 뒤에 본인의 건강을 맡기시더군요.
한 분은 암이 심하게 진행되지 않아 수술을 잘 마치고 얼마 후 퇴원해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다른 한 분은 이미 4기까지 진행된 상황이었어요.
일반적인 치료 방법과 달리 먼저 항암 치료를 해서 암 크기를 줄인 다음 수술로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그분은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항암 치료를 잘 받고 계신다고 합니다."
매년 중국과 인도, 미국, 브라질, 캐나다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의사들이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몇 년간 한국에 머무르며 노 교수 팀의 위암 치료법을 견학하는 시간을 갖는다.
국제학회지에 논문으로 발표되는 수술 성과를 보고 방문하는 것이다.
명실상부 세계 정상급의 위암 치료 수준을 갖췄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실제로 2000년 이후 연세 세브란스병원의 위암 수술 후 5년 생존율은 78%가 넘는다.
미국 최고의 MD앤더슨 암센터와 비교해도 15~20%를 앞서는 수준이다.
"조기 위암의 발견 빈도가 높아진 것도 생존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2기 환자의 경우 80%, 3기도 60% 이상의 완치율을 보이고 있거든요.
진행성 위암도 완치 가능성이 높아졌고요. 그렇지만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위암에 걸리지 않는 것이겠지요."
노 교수는 위암에 걸리는 가장 큰 이유로 '짠 음식 위주의 식생활 습관'을 꼽았다.
소금이 직접적인 발암의 원인은 아니지만 위 점막에 계속 자극을 주어 염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발암 물질에 위가 노출되는 것이 계속되다 보면 위암으로 발병하는 것이다.
구이 요리를 즐기는 한국인들은 '탄 음식'에 대한 노출도가 높은데, 이도 위암의 발병 요인 중 하나다.
"위암을 예방하려면 비타민 A·C가 풍부한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많이 드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짠 음식은 당연히 피하셔야 하고요.
세계보건기구 권장 1일 소금 섭취량은 5g 이하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평균 13g을 섭취하거든요.
국물 음식 문화와 찌개·면류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식습관 때문이지요.
위암도 가족력이 중요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유전자 문제가 아니라 가족끼리 같은 식생활 습관을 공유하기 때문에 함께 위암에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암에 대해 찬찬히 설명하는 노 교수를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의료계의 3D 업종이라 불리는 외과의사, 그중에서도 고된 위암 분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1980년대 말은 외과의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수술을 다 맡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이후 세분화되고 전문화되기 시작했지요. 당시 위암 환자의 대부분은 병이 상당히 진행된 케이스였어요. 초기 진단으로 발병 사실을 안 환자들은 전체의 10%도 안 되었습니다.
수술하려고 환자의 배를 열었다가, 온통 전이된 바람에 다시 닫은 경우도 많았어요.
당시 제대로 된 항암제도 없어 몇 개월 만에 돌아가시는 환자들을 보며,
실질적으로 그들을 돕고 싶어 위암 분야를 선택했습니다.
위암을 전공한 후에도 야간에 응급실 환자들의 수술을 밤낮 없이 맡아 했고 휴일도 없었지만,
매 순간 흥미롭고 보람 있어 견딜 수 있었어요."
환자의 말에 늘 귀 기울이고, 후배 의사들이 긴장하지 않은 평상시 상태 그대로 수술에 임하도록 하기 위해
수술실의 음악을 선곡하는 노 교수에게서 겸손한 명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숙원 목표가 하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발생하는 위암 환자가 95만 명이랍니다.
아무리 수술을 많이 해봤자 모두를 치료할 수 없지요.
수술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획기적인 치료법을 만들어 널리 알리는 게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위암은 진행 정도에 따라 1·2·3·4기로 나뉘지만 같은 기수의 암 환자들이라도 개개인에 따라
예후가 다르거든요.
우리 병원에서는 1995년부터 수술한 환자들의 조직을 유전자은행에 보관해왔습니다.
그것을 유전자 연구기법으로 분석해,
개인별로 생물학적 지표를 파악해 가장 적합한 치료 방법을 찾아내는 거죠.
환자가 100명이라면 100가지의 치료 방법이 나오는 겁니다.
성공률도 훨씬 높아지고 비용 낭비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30년 가까이 위암 분야에 투신해왔으니, 이제는 정말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로 결실을 맺는 것이
단 하나의 소원이라는 노성훈 교수. 익숙지 않은 사진 촬영에 다소 어색해하던 그의 표정이,
치료받았던 환자들이 다가와 인사하자 순식간에 풀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뼛속까지 의사다.
취재_정지혜 기자 | 사진_신빛
'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육량 감소할수록 대장암 사망률 높아져" (0) | 2015.08.25 |
---|---|
킁킁~ 癌입니다 상상초월 후각왕 개코 (0) | 2015.08.22 |
암은 너무 똑똑해진 인간에 대한 징벌? (0) | 2015.07.27 |
암 예방할 수 있는 생활방식 9가지 (0) | 2015.07.27 |
위암세포 자살 유도하는 새로운 단백질 발견 (0) | 2015.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