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정치인과 역술인
강인선
조선일보 발행일 : 2007.07.10 / 여론/독자 A3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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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던 1980년 미국은 이란 인질사태로 뒤숭숭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 레이건의 부인 낸시는 재선에 도전한 카터보다 남편이 훨씬 낫다고 믿으면서도
승부가 어떻게 날지 궁금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점성술사 조운 퀴글리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과 카터의 운세를 봐 달라고 했다.
퀴글리는 “카터는 절대로 레이건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했다.
이후 퀴글리는 레이건 유세 때와 임기 중 수시로 점괘를 봐줬다.
▶레이건은 1985년 11월 19일 제네바에서 소련의 새 지도자 고르바초프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훗날 비서실장 리건은 이 날짜를 퀴글리가 잡았다고 털어놓았다.
레이건의 별자리 ‘물병자리’와 고르바초프의 ‘물고기자리’를 짚어 길일을 택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일정에도 퀴글리가 개입했다.
낸시가 레이건의 석 달치 일정표를 보내오면 길일, 흉일, 군중 앞에 나가지 말아야 할 날을 짚어
일정을 바꾸게 했다.
▶나카소네 일본 총리가 국회에서 답변하다 잠시 쉬면서 수첩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사진기자가 멀리서 줌렌즈로 당겨 찍은 수첩엔 나카소네의 그날 운세가 적혀 있었다.
처칠과 드골도 점성술사에게 수시로 의견을 구했다.
히틀러는 주변에 둔 점술인이 5명에 이르렀다.
스탈린은 히틀러와 전쟁을 치르면서 점술가의 조언을 받아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결정했다고 한다.
▶우리 선거판엔 늘 믿거나 말거나 식 예언이 떠돌아다닌다.
‘이름에 ○자가 들어간 사람이 당선된다’
‘누구는 올해 후반 운이 기막히게 좋다’는 얘기가 유명 역술인의 극비 예언이라며 입에서 입으로 번진다. 후보들은 이 예언을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대세론’으로 꾸며 퍼뜨리기도 한다.
어느 후보에 줄을 서야 할지 결심하느라 역술인을 찾는 정치인도 많다.
선거철은 역술업계 대목 중의 대목이다.
▶뉴욕타임스가 그제 “한국처럼 첨단기술 좋아하는 나라에서 무속신앙이 부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선을 앞두고 무속인과 점술가를 찾는 정치인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름난 역술인들은 예약이 밀려 만나기도 어렵다고 했다.
정치인들이 무속인에게 “조상 묘를 옮기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도
뉴욕타임스엔 신기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좀 유별나긴 해도 정치인이 점술에 솔깃해하는 건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
정치만큼 예측하기 어려운 도박도 없고, 그래서 정치인은 끝없이 불안하고 흔들린다는 얘기다.
(강인선 논설위원 ins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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