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똥 싸고 당에서 치우라고” 대놓고 말도 못하는 국민의힘
사퇴론 사라진 자리엔 음모론
장제원, ‘웃기고 있네’ 수석 퇴장 비판
MBC 전용기 불허도 사석서 우려만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강경 대응 일변도인 윤석열 대통령을 견인하지 못하고 휩쓸리고 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후 대세를 이뤘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사퇴론은 윤 대통령 거부 의사가 확인된 후 사그라들었다.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대통령실 수석들을 퇴장시킨 주호영 원내대표(국회 운영위원장)의 조치를 두고 이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대통령 의중에 맞춰 주 원내대표를 비판하는 뒷말이 나왔다. 대통령실의 MBC 취재진에 대한 대통령 전용기 탑승불허 방침도 사석에서 우려와 비판을 했지만 공식적인 문제제기로 이어지진 않았다.
외부에서 ‘수혈’된 대통령인데다 정권 초반 전당대회와 총선, 당무감사를 앞두고 있어 당 목소리가 작다는 분석과 함께 여당이 대통령을 더 적극적으로 견제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가 나고 국가애도기간 중엔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이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당내 의견이 많았다. 친윤석열계에서도 “장관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면 안된다” “이 장관이 선제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혔어야 한다” 등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연이어 조문에 이 장관을 대동하고 “막연하게 뭐 다 책임져라, 그건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 장관 신임 의지를 드러낸 후 이런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당 지도부는 대통령실의 입장에 맞춰 먼저 경찰 수사 등으로 진상규명을 한 후 책임자를 문책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7일 ‘각시탈’ 의혹을 제기하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장에 띄운 화면. 왼쪽에 민주노총이 조합원의 사망을 애도하는 메시지를 붙여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게 했다. MBC뉴스 유튜브 캡처사퇴론의 빈자리는 음모론이 채웠다. 당내 ‘이태원 사고조사 특위’ 위원장인 이만희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에서 참사 당일 현장에서 아보카도 오일을 뿌려 사람들을 미끄러지게 했다는 온라인 상의 의혹을 활용해 “각시탈 쓴 사람들이 특정 정당 관계자라고 많이들 얘기하고 있다”며 “이런 내용이 확실하게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9일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일각에 의하면 당시 대통령 탄핵 시위대에 있던 사람들이 오후 8시30분 해산되고 난 다음 대거 이태원 쪽으로 몰려왔단 얘기가 있다”고 참사 원인과 대통령실 앞 시위를 연결지었다.
과반 의석의 야당들이 추진하는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도 어차피 본회의에서 통과될 거라면 여당이 초반부터 개입해 의견을 반영시키자는 협상론도 있지만 대통령실 눈치 보느라 얘기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8일 국회 운영위원회 대통령실 국정감사 도중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의 노트에 적은 “웃기고 있네”라는 문구 /이데일리 제공지난 8일 대통령실 국감에서 김은혜 홍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 ‘웃기고 있네’라고 필담을 나누다 퇴장당한 것을 두고 윤 대통령이 친한 의원들에게 전화해 화를 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퇴장을 지시한 주 원내대표가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장제원 의원은 10일 기자들과 만나 “(두 수석을) 두번 (발언대에) 세워서 사과시켜놓고 퇴장시킨다는 게···”라며 “협치 좋은데 이렇게까지 해서 뭘 얻었냐”고 지적했다. 그는 주 원내대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걱정이 된다”고 했다. 주 원내대표 측 인사는 “퇴장 조치라도 했으니 야당이 이 정도로 그친 것”이라고 항변했다.
대통령실의 MBC 취재진 전용기 탑승 불허 조치에 대해서도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사석에서 “말도 안되는 얘기” “대통령실이 똥을 싸고 당에게 치우라고 한다” 등 걱정과 불만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공개 발언이나 공식적인 문제제기로 이어지진 않았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통령실의 MBC 전용기 탑승 불허 통보와 관련해 “취재를 거부하냐 안 하냐는 취재를 받는 상대방이 결정할 수 있는 것”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윤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여당 분위기를 두고 당내에 여러 분석이 나온다.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든 관철시키려는 윤 대통령의 강골 성향, 외부 수혈로 대통령이 돼 국민의힘에 빚진 것이 별로 없는 상황, 대통령의 힘이 강한 정권 초의 시기적 요인, 전당대회와 총선을 앞두고 ‘윤심’을 등에 업어야 하는 의원들의 처지, ‘이준석 찍어내기’ 후 비상대책위원회의 당무감사·당협위원장 선출로 조성된 당내 사정정국이 요인으로 거론된다.
‘민본21’(18대 국회 당내 초선 모임)처럼 당내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소장파 모임도 없다. 민주당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수도권 지역구 의원들이 민심에 민감하고 당내 견제 세력의 중심을 이루는데, 지난 총선 대패로 서울 강남 3구 외엔 수도권 의원이 손에 꼽을 정도라는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당내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권의 이태원 참사 대응 문제를 지적하면서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끝내 민심을 깨닫지 못하고 역주행한다면 여당이라도 정신차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매가리 있게’ 시시비비를 가려서 대통령이 잘하면 도와주고 못하면 견제해야 한다”며 “국민의힘이라면 국민의 편에 서야지 그깟 공천협박 때문에 권력에 아부해선 안된다”고 했다. 한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는 “예산과 법안 통과 안되면 우리 책임인데, 의석이 적은 상황에서 어쩌려고 계속 강공만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준예산(내년도 예산안이 통과 안돼 최소한의 예산을 올해에 준해 내년 예산으로 편성하는 사태)이 얼마나 큰 사태인데 그걸 불사하고 가려 하는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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