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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야기

“죄송하다”… ‘송파 세 모녀’처럼 ‘수원 세 모녀’ 남긴 메시지

일산백송 2022. 8. 23. 13:29

“죄송하다”… ‘송파 세 모녀’처럼 ‘수원 세 모녀’ 남긴 메시지

암·희귀병 투병에 생활고 겹쳐

입력 : 2022-08-23 06:47/수정 : 2022-08-23 10:14
지난 21일 숨진 세 모녀가 발견된 수원시 권선구 한 연립주택에 '출입금지'라고 적힌 경찰의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붙어 있다. 뉴시스

“병원비 문제로 월세 납부가 조금 늦어질 수 있다. 죄송하다.”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가 집주인에게 남긴 메시지라고 한다. 2014년 서울 송파구 세 모녀가 “죄송하다”는 메모와 함께 마지막 집세인 현금 70만원이 든 봉투를 남기고 사망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두 사건 모두 복지 사각지대에 있던 세 모녀가 생활고 끝에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 안타까운 경우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2시50분쯤 수원구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 1층에서 60대 어머니 A씨와 40대 두 딸 B·C씨 등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암과 난치병, 생활고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빚 독촉 등의 이유로 기초생활수급 같은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집 안에서는 “건강문제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A씨와 C씨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는 노트 9장 분량으로 내용은 띄엄띄엄 적혀 있었다고 한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이 유서에는 암 투병 중이던 어머니의 사정과 경련이 잦은 희귀병을 앓은 40대 큰딸의 건강문제 등 고단했던 삶이 담겼다고 한다.

지난 21일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도 수원시의 한 다세대주택 현관문 옆에 ‘연락주세요’라는 도시가스 검침원의 방문안내 메모지가 붙어 있다. 채널A 캡처

A씨의 남편은 부도로 빚을 남긴 채 사망해 세 모녀는 이 집에서 2년 넘게 전입신고조차 하지 않고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한때 생활능력이 있던 아들은 먼저 희귀병으로 사망했고, 이후 생활고가 심각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세 모녀 모두가 건강이 좋지 않았고 경제적으로 매우 절박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을 두고 “죄송하다”는 메모와 함께 마지막 집세를 남기고 숨진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과 유사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건 이후 공과금을 3개월 이상 체납하면 관할 구청에 관련 정보가 통보되도록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고쳤다. 복지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한 개선 조치였다.

수원 세 모녀의 경우 공과금 체납 사실이 파악됐고, 관할 지자체가 이들을 찾아나서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2020년 2월 경기도 화성에 있는 지인 집에 주소를 옮겨둔 채 수원 다세대주택으로 오면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소재를 파악할 수 없었다. 빚 독촉 때문에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전입신고만 됐어도 상황에 따라 긴급생계지원비 120만원 등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 모녀가 주소를 옮겨뒀던 화성시는 이들의 건강보험료가 16개월분(27만930원) 밀린 사실을 파악하고 사회복지서비스 신청 안내문을 우편으로 보냈고, 지난 3일에는 주민센터 직원이 방문했지만 “A씨 모녀가 실제 살지 않았고 지금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답변만 들었다. 지자체로서는 거소가 확인되지 않거나 연락이 두절되면 현행 복지시스템으로 지원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지난 21일 “문이 잠긴 세입자 집에서 악취가 난다”는 건물주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외부 침입 흔적이나 외상이 없어 경찰은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이 최소 열흘은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 날이 무더워 부패 정도가 심했다”며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 등을 밝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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