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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해선 안 될 말

일산백송 2022. 6. 22. 19:14

대통령이 해선 안 될 말

입력 : 2022.06.16 20:13 수정 : 2022.06.17 08:07
이기수 논설위원

왼쪽부터 윤석열 대통령과 노무현·노태우·이명박 전 대통령.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통령직 못해먹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5월21일 청와대에서 5·18행사 추진위원들에게 한 말이다.                 사흘 전 한총련 시위대가 광주에서 대통령 차량을 막아선 소란을 대신 사과하러 온 자리였다.  “그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넘긴 노 전 대통령의 화두는 화물연대·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집단행동과 정부 인사안·법안이 꽉 막혀 있는 국회로 이어졌다. 그러곤 “전부 힘으로만 하려고 하니 이러다…”라며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격정을 쏟아냈다. 취임 석 달 만에 나온 이 넋두리는 앞뒤 맥락은 잘린 채 숱한 패러디·유머·칼럼의 소재가 됐다. 두고두고 회자된 대통령의 직설이었다.

“참으로 이것이 우리나라 국민인가.” 1989년 10월21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고위당정회의에서 국민감정을 긁었다. 방미 직후였다. 귀국길 전용기에서 미 상·하원 합동연설 기사가 ‘3김’의 5공청산 촉구 회견보다 작게 취급된 신문들을 보고, “솔직히 대통령 하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다”는 비애가 들었다고 했다. 취임사에서 처음으로 ‘나’와 ‘본인’이 아닌 ‘저’라고 하며 몸을 낮췄던 그가 국민 탓·언론 탓 하는 설화를 일으킨 것이다. 대통령의 말은 이렇듯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 강하게 남는다. 그 파장은 최고 국가지도자가 삼가야 할 금기어일수록 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머리는 빌려도…”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도 그런 범주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라고 뜻밖의 말을 했다. 김건희 여사의 ‘봉하마을 지인 대동’과 ‘(개인회사)코바나컨텐츠 직원의 대통령실 근무’가 논란을 빚자 “공식·비공식 행사를 어떻게 나눠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 실언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방법을 좀 알려주시죠”라는 말을 더했다.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은 ‘26년 검사’로 살아온 윤 대통령만이 아니다. 부인의 허위경력·주가조작 의혹이 터졌을 때 ‘영부인’이란 말과 ‘제2부속실’을 없애겠다고 한 윤 대통령이 이제 와서 국민에게 답을 구하는 것도 늦고 무책임했다. 말은 ‘생각의 집’이라고 했다. 출근길 약식회견에서 툭 던진 ‘처음 해봐서…’도 대통령이 해선 안 될 역대급 말로 남을 듯싶다.